상황에 쫓겨 한없이 바쁘게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리고 이럴 때 사람들은 점점 커져가는 압박감에 주위를 둘러보지 못한다. 레온과 펠릭스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해야 할 일을 조용히 마무리하고자 별장으로 왔다. 그러나 별장에는 그들 외에 나디아라는 여자가 있었고 나디아와 함께 있던 다비트 또한 얼떨결에 그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레온을 제외한 세 사람이 함께 지내며 추억을 쌓는 동안 레온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레온을 괴롭히던 압박감은 질투심까지 더해져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이번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님 신작 "어파이어"는 이전작과는 확연히 다르게 다가온다. 이전작들은 2차 대전의 독일상황 그리고 베를린 장벽을 배경으로 사랑이야기를 한 반면 어파이어는 그런 배경을 가지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전작들보다 훨씬 대중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이런 희망적인 이야기를 한 데에는 코로나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고 한다. 감독님은 백신이 아직 나오지 않았던 때 코로나에 걸렸고 그때 본 에릭로메르의 작품 속 따뜻한 세계가 그리워져서 구상하던 디스토피아적인 작품을 접고 보다 희망적인 이야기인 어파이어를 구상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어파이어는 재난을 담고 있어도 인물들이 따뜻하고 분위기 또한 밝게 느껴진다. 아마 이 영화에서 파올라 베어가 가장 많이 웃는 것 같기도 하다. 계속 같은 구절이 반복되는 듯이 느껴지는 In my mind 노래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그에 관한 감독님의 의도를 들을 수 있었다. 이 노래는 느린 춤이 생각나는 노래로 영화를 받아들일 때 마치 느린 춤을 추듯 온전히 받아들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곡을 선정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는 영화가 끝난 후에도 이야기가 계속되길 바라서 상상의 여지를 남겼다던 열린 엔딩 장면을 선택한 이유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했다. 반복되는 음악과 영화가 끝난 후에도 계속되는 그들의 이야기에서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하이네의 시 "아스라"가 나온 장면도 흥미로웠다.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할 때 나온 시인데 이 시가 식사하는 그 장소를 아름답게 채워주는 느낌을 받기도 했고 또한 아스라와 극 중 레온이 같은 입장으로 느껴져 재미있게 다가오기도 했다. 영화는 결국 아픈 고통을 겪고 자신만의 껍질을 깨고 나오는 창작자의 이야기이다. 자기만의 세계에만 갇혀있던 레온은 여러 경험을 하고 아픔을 겪고 많은 사람을 상처 준 후 비로소 성장할 수 있었다. 이야기를 쓰는 사람은 여러 이야기 속 인물들을 다뤄야 하기 때문에 남보다 더 예민하게 주위를 관찰해야 하고 많은 경험 또한 요구될 것이다. 이전에 비닐하우스 gv때 김서형 배우님도 직업특성상 어떤 상황을 겪으면 그 감정을 잊지 않고 기억하려고 노력한다는 말을 했었다. 그러나 비단 이것은 예술가에만 국한된 말은 아닐 것이다.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대다수 사람들 또한 하루하루 더 멋진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을 돌아보고 실수를 통해 성장한다. 감독님의 이전작들이 독일에 대한 역사를 알아야 했다면 이번 작품은 그럴 필요는 없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나온 감독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으로 느껴진다. 이전 작품들이 두렵다면 어파이어로 페촐트 입문을 해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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