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현실에 솔직하게 맞서는 것이 아플지라도] 이 영화의 광고를 처음 봤을 때 광고 안에 있는 거구의 남자에 바로 눈길이 갔다. 그리고 그가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매우 궁금했다. 사실 매체상에서는 예쁘고 잘생긴 모습에 익숙해져 있는지라 그 모습이 상당히 낯설어 그 궁금함이 더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영화 상영 전에 거구의 남자를 연기한 브렌든 프레이저의 영상을 먼저 만나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이 영화를 위해 몸을 좀 키운듯한데 이 역할을 맡으며 느꼈던 여러 감정들, 그리고 그가 가지고 있는 생각들을 전달해 주는 모습에서 내가 이 영화를 통해 또 삶에 대한 다른 무언가를 느껴볼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를 가지고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찰리는 272kg의 거구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어린 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주었다는 죄책감으로 건강을 조절할 수 없었기에 생겨난 결과이다. 그 몸은 찰리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갔고 찰리는 그대로 외부와 단절된 상태로 카메라를 꺼둔 채 비대면으로 강의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서 그래서는 안될 걸 알지만 다시 딸을 보고 싶어졌다. 딸이 본인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채 엇나가는 것이 마치 자신의 탓인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인지 찰리는 딸에게서 자꾸만 무언가를 보고 싶어 했다. 사실 찰리의 모습은 당황스럽게 다가온다. 당장 병원에 가야 하는 몸임에도 병원만은 가지 않을 거라고 고집을 피우고 그 상황을 개선할 의지도 없어 보인다. 그리고 영화는 그런 찰리의 태도를 통해 구원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찰리에게는 여러 손길이 다가왔다. 옆에서 묵묵히 지켜주지만 병원을 가지 않는 찰리가 원망스러운 친구 리우, 찰리가 위급할 때 우연히 전도하러 왔다가 찰리에게 육체에서 벗어나 영적인 구원을 해주고 싶은 어린 전도사, 매일 피자를 시키면서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찰리를 걱정해 주는 피자 배달원. 그러나 찰리는 엉뚱하게도 딸에게 집중한다. 자신에게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제멋대로인 딸을 위해 사용한다. 딸과 전도사의 태도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찰리에게 한없이 사람 좋은 미소로 찰리를 조금이나마 더 편안하게 해 주려는 전도사와는 달리 딸은 찰리에게 끊임없이 원망을 내뱉고 상처를 주었다. 이는 찰리에게 딸을 책임지지 못했다는 죄를 씻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며 찰리도 그렇게 느끼는지 딸의 독한 말들을 듣고서 화를 내기는커녕 솔직함을 마음에 들어 했다. 그리고 찰리는 영적인 구원이 아닌 딸을 선택했다. 모비딕에 등장하는 고래를 찰리의 모습으로 표현한 딸 엘리의 에세이는 마치 찰리의 죄책감 같기도 또 딸에 대한 사랑으로 느껴지기도 했고 찰리에게 구원을 줄 유일한 매개체로 느껴지기도 했다. 영화가 말하는 것은 결국 인간을 구원하는 것은 신도 뭣도 아닌 솔직함, 그리고 그 안에 사랑이라는 것으로 보였다. 표면적으로 보면 구원받아야 할 사람은 찰리일지 모르나 사실 구원받아야 할 사람은 찰리를 비롯한 그 주위의 상처받은 모든 사람들이었고 결국 이들은 신이 아닌 서로가 서로의 솔직한 마음을 터놓으며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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