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이 주연·인간은 조연... 25분이 준 뜻밖의 감동
▲ 스크린샷: <펭귄 타운> 인트로 화면. ⓒ 넷플릭스
25분 안팎의 짤막한 에피소드 여덟 편으로 이루어진 다큐멘터리 <펭귄 타운>은 여러 펭귄들이 등장해 자기들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들려주는, 일명 펭귄 드라마다. 다행스럽게도 막장 드라마가 아니며 무척 재미있다.
얼핏 보기엔 똑같이 생겼지만 남아공의 펭귄들은 다큐멘터리 안에서 저마다 고유한 이름과 성격을 부여받았다. 주요 등장인물들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은데, 인간은 조연 중의 조연, 아니 거의 엑스트라 급으로 보면 된다(행인1, 2, 3 등).
▲ 스크린샷: 수많은 인간들 사이, 펭귄들 ⓒ 넷플릭스
천생연분 성실부모 미스터 부겐빌리아와 미세스 부겐빌리아(Mr. & Mrs. Bougainvillea)
위풍당당 코트야드 경과 코트야드 귀부인(Lord & Lady Courtyard)
다둥이 가정 윌배로우 가족(family Wheelbarrow)
갓 결혼한 새 가정 컬버르트 커플(Culvert couple)
고아 펭귄 주니어(junior)
비뚤어질 대로 비뚤어져 몰려다니며 행패부리는 주차장 펭귄 깡패들(the car park gang)
SANCCOB(The Southern African Foundation for the Conservation of Coastal Bird, 바닷가 새 지킴이 남아공 재단)
그외 남아공 관광객들
이들 외에도 갈매기, 물개, 강아지 등이 악당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펭귄의 천적 역할을 맡았지만, 뼛속 깊이 악의를 갖고 있는 악당들은 아니다. 먹이사슬 자연법칙에 순종하며 열심히 살다 보니 악당 역할을 맡았네, 하는 분위기다. 펭귄들, 그리고 인간을 포함해 주변의 다채로운 동물들이 등장하는 이 다큐멘터리에서 내레이터의 역할은 매우 중요한데, 내레이터 패튼 오스왈트(Patton Oswalt)의 목소리 연기는 매우 훌륭하다. 그가 펭귄을 비롯한 여타 동물들의 행동에서 합리적으로 추론가능한 생각과 대사를 어찌나 실감나게 들려주는지, 화면과 해설이 꼭 맞아 떨어져서, 지루할 틈이 전혀 없다.
부겐빌리아 커플은 부부 사이가 꽤 좋다. 별칭도 '영혼의 커플'이니 오죽하랴. 교대로 알을 품고 교대로 사냥하며 건전한 가정을 일군다. 그런데, 폭풍이 심하게 불던 어느 날 바다로 사냥 나갔던 미세스 부겐빌리아가 실종됐다. 돌아오지 않는 아내를 기다리던 미스터 부겐빌리아는 결국 싱글 대디라는 자기 현실을 인정하고, 홀로 남매를 키우기 시작한다.
그의 아이들은 다른 집 아이들보다 성장이 좀 늦긴 했지만, 아빠의 헌신적 노력에 힘입어 마침내 홀로서기에 성공한다. 싱글 대디 미스터 부겐빌리아의 고군분투는 사뭇 감동적이다. 한편으로 주차장 펭귄 깡패들을 상대하고 다른 한편으로 아이들을 위한 식량사냥까지 1인2역을 감당한다. 매순간 뚜벅뚜벅 걸음을 재촉하는 그의 모습은 상당히 믿음직스럽다.
▲ 스크린샷: 미스터 부겐빌리아가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 ⓒ 넷플릭스
코트야드 경 부부에겐 자잘한 위기가 여러 번 찾아왔다. 고르고 고른 끝에 고급저택에 입주하게 되었지만, 해안가에서 너무 먼 까닭에 사냥을 다녀올 때면 늘 밤이 깊어 귀가하게 되었다. 바닷물 속에서는 빠르게 헤엄치지만 땅 위에서는 짧은 다리로 타박타박 걸으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러던 어느 날, 코트야드 경은 밤늦은 퇴근길에 암컷 스토커 펭귄을 만났다. 차마 그녀를 뿌리치지 못한 코트야드 경은 그녀와 함께 집에 도착했다. 그때 레이디 코트야드가 분연히 나서서 그녀를 내쫓아버렸다. 이렇게 이 가정은 한 번의 위기는 넘겼지만, 그 다음 위기는 넘기지 못했다. 잠깐 바깥바람 쐬러 나갔던 딸 로즈메리가 사라진 것이다. 두 펭귄 부부가 대로변에 서서 두리번거리다 딸 찾기를 포기하고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되돌아서는 모습은 안타깝기 짝이 없다. 다행히 로즈메리는 사고를 당하지 않았고, 우여곡절 끝에 스스로 바닷가를 찾아, 수영을 배우는 청소년 그룹에 합류할 수 있었다.
다둥이 가정 윌배로우 씨네는 늦둥이를 계획중이라, 이미 청소년이 된 아이들을 얼른 내쫓을 필요가 생겼다. 이 집에서 나가라는 의미로 이삿짐을 싸서 다른 곳으로 이사했는데도 눈치없는 청소년기 아이들이 독립을 하려 하지 않고 따라오자 부모는 바닷가 가는 길을 자상하게 알려주면서, 등을 떠민다.
윌배로우 씨네 아이들을 포함해 (털이 방수인 데다 수영과 잠수에 최적화된 몸으로 성장했음에도) 각자의 집을 떠나온 펭귄 청소년들은 물이 무섭다고 엄살을 피우며, 바닷물이 발에 닿을까 봐 도망다닌다. 그러자, 보다 못한 어른 펭귄들이 어떤 자세로 바닷물에 뛰어들어야 할지 모범을 보여준다. 그제서야 청소년들은 슬그머니 용기를 낸다. 그런데, 해보지도 않고 물에 빠질세라 옹기종기 모여있는 겁쟁이 청소년들이 참 귀엽다. 물론 언제 겁을 냈냐는 듯, 어른들의 도움으로 펭귄다운 태도를 곧 갖추게 되지만.
한편 고아로 자란 펭귄 주니어는 인간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살도 빠지고 털도 빠지고, 자칫하면 생명이 위험한 때 'SANCOOB'의 인간들이 나서서 주니어를 납치(?)해 시설에 강제입소시켰다. 건강상태를 따라 인간에 의해 이곳저곳으로 옮겨질 때마다 주니어는 "여긴 어디? 나는 누구?"를 되뇌었지만, 인간들의 도움으로 주니어는 몰라보게 건강해졌다. 인간집단이 전체 자연 생태계에서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 스크린샷: 돌봄 전과 후 주니어의 모습 ⓒ 넷플릭스
이 다큐멘터리에서 인간들은 누구도 주연급으로 출연하지 않는다. 하나같이 영락없는 조연이다. 펭귄 주니어를 돌보는 손과 발로 주로 등장하는 숱한 인간들의 모습을 보면, 실제로 자연 생태계에서 인간이 주연이라고 제멋대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착각인가, 새삼 돌아보게 된다.
▲ 스크린샷: 코로나19로 인하여 사람들이 찾지 않는 남아공 관광지(2020년 여름). ⓒ 넷플릭스
기후위기로 인하여 날이 너무 뜨거워도, 비가 많이 오거나 바람이 몹시 불어도, 자기네들이 자초한 이상기후가 아님에도 펭귄들은 기특하게 견뎌낸다. 펭귄들은 자기들의 존엄성을 스스로 깎아내리지 않으며, 호들갑도 떨지 않으며, 기후위기 시대가 불러오는 여러 생태환경적 어려움을 갸륵하게 꿋꿋이 뚫고 나간다.
물론 짝짓기에 실패하고 떼 지어 몰려다니며 자기들의 존엄성을 지키기는커녕 열심히 사는 이웃 펭귄들을 괴롭히고 행패를 부리는 데에 집중하는 주차장 펭귄 깡패들도 있긴 하다. 틈만 나면 한부모 가족의 아이들을 괴롭히러 뭉치는 그들이 꽤 한심해 보인다.
▲ 스크린샷: 주차장 펭귄 깡패들 ⓒ 넷플릭스
"펭귄답게 살아라 좀! 무엇을 위하여 성실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하여 노력해야 하는지, 배워라 좀!"
뚜렷이 하는 일도 없이 몰려다니며 다른 펭귄들을 괴롭히고자 호시탐탐 때를 노리는 깡패 녀석들을 보면 그들을 향해 쓴소리를 퍼붓고 싶어진다. 그러나, 문득 입을 다물게 된다. 그 쓴소리가 사실은 '기후깡패(climate villain) 노릇'에 열중하는 인간집단을 향해야 한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0.1초도 채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2021년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탄소배출량 증가율 1위에다, 재생에너지 발전비중은 하위 2위를 기록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먼저 솔선해서 <펭귄 타운>을 관람해 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