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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소위 '관종'이 끼어든 살인사건,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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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숲속의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신고 회원메모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movieli.st 작성일21.07.06 09:51 62,54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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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 '관종'이 끼어든 살인사건,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다큐멘터리에 들어서면] 넷플릭스 <소피: 웨스트코크 살인 미스터리>

21.07.06 09:31최종업데이트21.07.06 09:37


살인사건이 일어났고 속절없이 시간은 흘러가는데 사건수사를 담당한 형사들이 어쩐지 무능해 보인다. 현장보존도 허술하고, 단서추적도 느슨하며, 수사방식이 다소 엉뚱한 듯하다. 예를 들어 사진을 기록해두었어야 할 때 화가를 데려가 그림을 그리게 한다든가, 증거의 경중을 분류하는 기준이 비논리적으로 오락가락해서 종잡을 수가 없는 것이다.

살인사건 현장에는 기자들이 들끓고, 기자들마다 창의적 추측이 가미된 기사들을 쏟아내기 시작한다. 심지어 '아님 말고' 식의 음모론을 막 던지는 기자들도 있다. 그 와중에 사건수사팀은 사건현장과 기자들을 전연 통제하지 못하고, 목격자들과 적합하게 소통하지도 못하며, 뚜렷한 성과조차 내지 못한다. 대중의 기대는 높은데 사건해결은 지지부진한 상황, 그럴 때 어떤 일이 일어나기 쉬울까?
 
그럴 땐 유가족과 일반인들이 나서서 진상조사를 요구하고, 제대로 된 수사를 촉구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기 쉽다. 때로 적극적인 유가족과 일반인들이 의기투합할 경우 그들은 일종의 시민단체를 결성해 자율적으로 사건수사에 뛰어들기도 한다.
 
다큐멘터리 <소피: 웨스트코크 살인 미스터리>는, 살인사건에 대한 의심스럽고 미심쩍은 공식 수사활동에 대한 유가족과 일반인들이 포함된 민간 차원의 자율적 수사활동 전개라는, 적극적 대응사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아일랜드의 웨스트코크에서 프랑스 여성 소피가 잔혹하게 살해된 사건은, 프랑스인(피해자&유가족)과 아일랜드인(수사팀&영국검찰)이 얽혀들어 무려 23년간 질질 끌다가 아쉬운 대로 일단락된 강력사건이다. 일단락되기만 했지, 사실 이 사건은 지금까지도 범인이 확정되지 않아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상영시간 1시간 안팎의 3편이 시리즈로 묶여있는 작품으로, 넷플릭스에 최근 공개되었다(2021년작).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아일랜드 웨스트코크의 별장에 와서 홀로 머물던 소피라는 프랑스 여성이 1996년 12월 24일 별장 근처에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사건신고를 접수한 그 지역 '평화수호대'는 신속히 수사를 개시했다. '코크의 콜롬보'로 불리우는 더멋 드와이어 평화수호대 대장이 사건수사를 총괄했다. 근 100여 년간 살인이란 일어난 적이 없는 웨스트코크에서, '코크의 콜롬보'는 평화수호대의 인력을 총동원해, 최선을 다해 수사를 진행해나갔다.

그런데 강력사건 수사경험이 부족한 탓인지, 때로 무리한 수사가 전개되기도 했다. 수사관들이 소피의 생전 사진을 보여주며 "어떤 느낌이 드냐?"고 물어서 탐문수사에 임하는 지역주민들이 뭐라고 답변해야 할지 당황하기도 했다. 수사 초기, 무려 54명의 용의자를 지목한 것도 평화수호대의 수사가 '아마추어'스럽다는 냄새를 풍기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드와이어 대장은 용의자를 과감히 줄여나갔고, 마침내 한 명으로 좁히는 데 성공했다. 그 한 명은, 그 동네사람 이언 베일리(Eoin Bailey)라는 프리랜서 기자였다.

소피가 시신으로 발견된 작은 동네 '스컬'은 오래 전부터 외국인들이 많이 드나드는 곳으로 유명했다. 이른바 '뜨내기'들이 수시로 들락거렸지만 지역주민들이 개방적 생각을 갖고 있어, 지역주민들과 외지인들은 물론 외지인들끼리도 서로서로 잘 어울리며 지내는 곳이었다. 그리고 스컬은 바람이 몹시 부는 해안과 유령출몰 전설을 '쓰리캐슬헤드' 같은 산악지대도 동시에 포함하고 있어, 암흑의 분위기를 좋아하는 유럽의 예술가들에게 오묘하고 다크한 매력을 풍겼다.

그 매력에 반한 괴짜 예술가들은 1회 방문에 그치지 않고 그 지역에 아예 눌러앉기도 했다. 소피는 그런 예술가들 중 한 명이었다. 병적인 면, 죽음, 괴물 등 어두운 면에 좀 더 끌리는 다크 낭만주의자로 다큐멘터리 제작자였던 소피는 그곳에 집을 샀고, 프랑스 파리의 화려함에 질릴 때면 아일랜드 스컬로 날아가곤 했다. 그녀의 다음 작품 주제는 다크 낭만주의자의 관점에서 본 눈물, 타액, 정액 등 인간의 '체액'이었단다.

소피의 사망과 목격자의 진술
 

스크린샷:  사건 당시 소피가 살던 집(아일랜드 스컬)

▲ 스크린샷: 사건 당시 소피가 살던 집(아일랜드 스컬) ⓒ 넷플릭스

 
소피가 시신으로 발견된 날 새벽, 인근에서 서성이던 이언 베일리를 본 목격자가 있었다. 마리 패럴이라는 여성이었는데, 목격 당시 그녀와 함께 있던 남성은 남편이 아니어서, 그녀는 사건수사 초기엔 증언을 주저했고, 심지어 가명으로 수사팀에 전화를 걸어 수사팀의 마음을 초조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래도 결국 마리 패럴은 사건해결을 위하여 적극적 증언자로 나서게 됐다. 그녀는 시종일관 확고한 어조로 베일리를 지명했는데, 마침 베일리는 자신의 동거녀 줄스를 심하게 때린 경력이 있는 데다 '관종' 기질까지 갖추었고, 형편없는 시를 쓰면서도 아무한테나 자칭 시인임을 강조해서 주위 사람들을 질리게 했던, 괴짜 남자였다.                                       
 

스크린샷 사건 당시의 베일리(위)와 최근의 베일리(아래)

▲ 스크린샷 사건 당시의 베일리(위)와 최근의 베일리(아래) ⓒ 넷플릭스

 
이 괴짜 남자는 사건 관련 기사를 써서 온갖 언론사에 전송해 원고료를 받아 챙겼는데, 그의 기사들은 수사팀을 혼선에 빠뜨리기도 했다. 프랑스 파리에 살고 있는 소피의 남편(저명한 영화제작자)이 청부살해를 했다는 음모론도 베일리의 기사에서 처음 나왔고, 그 외 여러 추측성 내용(아니 소설)이 베일리의 기사에 가득했다. 소피 살인사건으로 인하여 베일리는 그토록 원하던 유명세를 탈 수 있었다. 그게 그가 원하는 만큼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한편 마리 패럴이 사건현장 인근에서 베일리를 목격했다는 결정적 증언이 나오자 수사는 급물살을 타며 진전됐다. 그 결과로 베일리가 체포되었고, 동네사람들 중 대다수는 베일리를 진범으로 확신해 마지않았다. 심지어 베일리가 술김에 동네방네 여러 사람들에게 자신이 소피를 죽였다는 말을 흘리고 다녔기에 누가 보더라도 그는 진범 같았다. 물론, 개중엔 베일리가 위압적으로 덩치가 크고 힘이 센 가정폭력범이고, 관종기질을 아무 데서나 표출하는 바람에 괴상해 보이는 사람이긴 하나, 그렇다 하여 그를 살인범으로 단정지어선 안 된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가진 지역주민들도 간혹 있었다.
 

스크린샷:  더멋 드와이어 <평화수호대> 대장

▲ 스크린샷: 더멋 드와이어 <평화수호대> 대장 ⓒ 넷플릭스

 
아닌 게 아니라, 베일리는 두 번 체포되었으나 두 번 다 혐의없음으로 석방되었다. 그의 동거녀는 베일리에 대해 긍정적 진술과 부정적 진술을 번갈아 말하는 바람에 평화수호대를 갈팡질팡하게 만들었다.

실제로 베일리를 범인으로 지목한 평화수호대의 수사기록은 치밀하지 못했다. 검찰이 정식으로 기소하기에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결정적 증거는 마리 패럴의 증언 정도였으며, 대부분의 증거는 정황증거뿐이었다. 그래서, 두 번 다 혐의없음으로 석방된 베일리는 이후 명예훼손으로 수사팀을 고소하기도 하고, 몇 년 뒤엔 정부당국을 고소하기도 했다. 그렇게 고소를 할 때마다 베일리는 반짝 유명해지는 효과를 보았지만, 승소하지는 못했다. 법정다툼 과정에서 오히려 베일리의 진범'설'이 합리성과 타당성을 확보하기까지 했다.

무엇이 진실인가?
 

스크린샷:  소피 살인사건을 보도하는 방송 화면.

▲ 스크린샷: 소피 살인사건을 보도하는 방송 화면. ⓒ 넷플릭스

 
베일리 진범설이 파다해졌지만 증거는 여전히 없어 그를 진범으로 체포할 수 없는 상황에서 대략 사건이 유야무야되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마리 패럴이 나타나 자기 증언을 뒤집었다. 사건발생 10년쯤 지난 뒤였다. 그녀는 자신이 사건현장 근처에서 베일리를 본 적이 없으며, 평화수호대가 강요해서 그리 증언했노라고 폭로했다. 베일리는 의기양양해졌다. 그렇지만, 마리 패럴 이외 다른 증인들은 아무도 자신의 증언을 철회하지 않고 유지했다. 베일리 진범설은 여전히 유효했다.  
 
그런 데다, 그 즈음 소피의 고향 프랑스에는 '소피 살인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모임(아래 소진모)'이 결성되어 활동을 시작한다. 소피의 아들(삐에르-루이)과 삼촌이 주도하는 이 모임은 자체조사를 통해 베일리를 재판에 넘겼다. 프랑스 사법부는'궐석재판'을 활용해 사건발생 23년 뒤인 2019년 베일리에게 유죄를 선고하고 25년형을 확정한 후, 아일랜드 정부측에 범인인도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아일랜드 정부는 프랑스의 궐석재판을 인정하지 않아, 베일리는 2021년 현재 자유인으로 아일랜드에 살고 있다.  
 

스크린샷:  소피의 아들, 삐에르-루이

▲ 스크린샷: 소피의 아들, 삐에르-루이 ⓒ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피>는 처음부터 진범설의 주인공-이언 베일리를 등장시켰다. 그는 자기자신을 힘써 변호한다. 반면 베일리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증인들도 잔뜩 등장한다. 그중 평화수호대 대장 드와이어는 베일리의 진술이 매번 달라지고 혼란스러웠으며, 자신과의 대화내용도 번번이 사실과 다르게 거짓말로 전달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아닌 게 아니라 <소피>를 보다 보면 누구 말이 진실인지 아리송해진다. 혼란에 빠지게 된다. 여기에 마리 패럴이 확고한 표정으로 증언을 해놓고, 그 확고한 증언을 스스로 뒤집는 장면까지 순차적으로 나오니, 인간들이 각각 주장하는 진실은 정말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어진다.
 
부실한 수사로 인해 주홍글씨 같은 오명을 뒤집어쓰고 사반세기를 살아올 수밖에 없었던 베일리 편에 감정이입을 하면, 이 사건의 25년 역사는 '베일리 핍박의 역사'로 부를 수 있으며 프랑스 궐석재판 이후로도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부실한 수사 때문에 베일리가 사건이 재론될 때마다 체포도 되지 않고 자기 이름을 알리기만 했다는 점을 비판하는 '소진모' 편에 감정이입을 하면, 이 사건의 25년 역사는 '베일리 인기의 역사'가 될 수 있다. 그러다가, 다큐멘터리 <소피>의 충실한 관람객 입장으로 다시 돌아오면 '같은 인간의 말을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는 것일까?'라는 탄식 섞인 의문을 읊조리게 되면서, 마음이 꽤 무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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