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경제구조 개조하려던 인물의 사망... 과연 범인은?
[다큐멘터리에 들어서면] 넷플릭스 <퍼펙트 크라임: 로베더 암살사건>
1991년 4월 1일, 베를린 신탁청장 데틀레프 로베더(Detlev Rohwedder)가 집안에서 살해당했다. 그는 길 건너 창밖에서 날아온 총알에 맞았다. 길 건너의 수상한 행동을 포착할 현관 경호원은 애초 없었고, 또 공교롭게도 2층 창이 방탄유리가 아니어서 총알은 가볍게 유리창을 뚫고 그의 몸으로 직행했다. 웬일인지 방탄유리는 그 집 1층에만 장착돼 있었고, 그는 일반유리가 설치된 2층 서재에 머무르던 중이었다.
방탄유리를 설치하다 만 것 같은 수상쩍은 상황에서 '마침 방탄유리 없는 2층에서' 로베더가 암살된 이 사건은 지난 30년간 미제사건으로 분류되어왔다. 범죄자 입장에선 완전범죄요, 수사팀 입장에선 미제사건인 바로 그 '로베더 암살사건'을 상세히 다룬 다큐멘터리가 있다. 당대 독일의 상황(정치, 경제, 외교 등)과 결코 떼어서 생각해서는 안 되는 로베더 암살사건을 파헤치는 이 작품의 제목은 <퍼펙트 크라임: 로베더 암살사건(아래, 로베더 암살사건)>이다. 총 4편으로 구성되어있으며, 편당 상영시간은 40분 안팎이다.
참고로, 이 영화의 다른 리뷰들에서는 로베더가 1층에 있을 때 총을 맞았고 1층이 일반유리였다는 문장을 발견할 수 있을 텐데, 이는 잘못된 기록이다. 영화는 일관되게 1층 방탄유리, 2층 일반유리를 강조한다(영어 자막에서는 실수가 없으나, 한국어 자막에서는 딱 한 번 1층과 2층을 뒤집어 언급하는 실수를 했다). 물론 영화를 보다 보면 총알 구멍이 생긴 창을 보여줄 때마다 카메라 각도가 앙각(law angle)임을 파악할 수 있으므로, 혼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다만 영화를 관람하지 않은 상태에서 로베더 암살사건의 정보를 얻으려는 이들에겐 사실관계(팩트체크) 면에서 혼란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
▲ 스크린샷: 로베더의 집 2층 전경 ⓒ 넷플릭스
방탄유리냐 일반유리냐, 로베더가 사망한 지점이 1층이냐 2층이냐,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로베더가 당시 방탄유리로 보호받아야만 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머무는 곳이 1층이든 2층이든 그 어디든 방탄유리가 설치되어, 적어도 그가 저격범에게 당하지 않도록 그를 안전하게 지켜주었어야 했던, 누구나 인지하고 있던 위기상황에서 그가 암살되었다는 이야기다. 그때 당시 로베더는 동서로 나뉘어있다 얼마 전 통일된 국가, 독일의 경제구조 안정화를 위해 욕을 먹어가며 밤낮없이 일하고 있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동독은 유럽의 공산권국가들 중에서 비교적 경제적 안정도가 높은 나라였다. 물론 안으로 경제적 위험요인이 작동하고 있어, 이를 간파한 사람들은 머지않아 동독의 경제구조가 붕괴될지 모른다는 예측을 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직 그 문제가 드러나지 않은 상태였고, 무엇보다 동독의 국민들은 그것에 대해 알지 못했다. 그래서 베를린장벽이 무너졌을 때 동독인들은 서독인들과 마찬가지로 진심으로 기뻐했다. 동쪽과 서쪽의 체제가 동등하게 통합되리라 기대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렇지만 통일은 (과거 누구의 말처럼) '대박'으로만 이해될 수 없는 것 같다. 사실 감정적으로 감격하며 눈물 흘릴 일만은 아니다. 통일독일의 사례를 보더라도, 통일은 냉정한, 아니 냉혹한 현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그 현실이란 것이, 사실 온갖 위험한 문제들을 품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동독과 서독이 통일되고 얼마 되지 않아 동독사회에 광범위한 거부감이 발생했다. 사회구조에 관하여 동독과 서독이 표면적으로는 동등하게 협의하는 듯 보였으나 결국은 서독이 주도하는 양상을 띠었기에 동독 쪽 반발이 심했다. 그때까지 여러 면에서 평등사회였던 동독은 평등을 잃었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나치 잔당을 철저히 응징하며 반파시스트 국가로서 자부심을 갖고 있던 동독은, 나치 잔당에 비교적 허용적이었던 서독 주도의 통합에 대하여 큰 아쉬움을 느끼게 되었다.
동독과 서독이 통일을 위해 합의하는 과정에서 제일 관건이 되었던 것은, 민생문제 곧 '먹고사는 활동'을 다루는 경제구조 문제였다. 동독의 공산주의와 서독의 자본주의가 아닌 제3의 길을 선택하여 타협과 조정을 통해 독일통합을 차곡차곡 이뤄갈 줄 기대했던 동독인들은 서독의 계획을 알고 나서 크게 실망하게 된다. 서독의 계획은 동독의 경제구조를 하루 속히 뜯어고쳐 서독의 자본주의에 편입시키는 것이었다. 동독인들은 바로 그 지점에서 허탈감&배신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무렵 로베더가 동독 경제 구조개혁의 선봉장, 베를린 신탁청의 대표를 맡는다. 로베더는 동독 경제 구조개혁의 명분을 내세우며 조심스럽게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구조조정의 여파로 실업률이 50%를 호가했다. 대공황 때도, 히틀러 나치 시대에서도 실업률이 그 정도였던 적은 없었다. 동독인들은 통일 후 자기네들만 겪는 고통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로베더는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했다. 그러면서, 지금 터널을 지나는 중이니 조금만 더 참고 견뎌줄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동독사회는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매주 월요시위가 열렸다. 서독 경찰력이 동독인들의 시위를 진압하러 출몰하는 풍경은 동독인들에게 결코 좋은 경험이 아니었음에도 그런 일들이 잦아졌다.
▲ 스크린샷: 데틀레프 로베더 신탁청장의 모습 ⓒ 넷플릭스
동독사회의 반발이 극심해질 무렵, 강심장이었던 로베더는 마침내 사임을 선택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서독의 재무장관과 총리는 로베더의 사임을 수락하지 않았다.서독 정부관료들은 서방 자본주의국가들과의 경쟁구도에 비추어볼 때 동독 공산주의 경제구조의 취약성을 뜯어고치려면 시작된 구조조정을 멈추어선 안 된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다. 로베더는 사임의사를 철회하였다. 그때로부터 불과 석 달 뒤, 그는 살해되었다.
로베더 암살사건의 범인으로, 당대에 세 개의 조직이 언급되었다. 적군파3세대, 해체된 구동독 비밀경찰 슈타지, 혹은 서독의 막강 정치세력 등이 그것이다. 이중에서 앞의 두 가지는 사건 당시 수사팀의 수사방향으로 채택되었으며 둘 다 동독인들을 용의선상에 올렸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두 조직 중 어느 쪽도 확실히 진범으로 확정할 수 없었다. 심증도 있고 물증도 적당히 들어맞는 것 같아 보였지만, 결정적인 게 나오지 않았다.
첫 번째 용의자인 적군파3세대의 경우, 현장에서 적군파3세대의 범행 자백서가 온전한 형태로 발견되었지만 적군파의 논조가 아니라는 점이 합리적 의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비교적 느슨한 조직체인 적군파 치고는 암살 자체가 너무나 주도면밀한 점도 수상쩍었다. 또 현장에서 발견된 적군파 조직원의 머리카락 DNA를 추적해 범인을 밝혀냈으나 체포과정에서 그가 자살해버린 데다, 웬일인지 그 여파로 열 명 남짓한 고위관료들이 사임하거나 해임되는 기현상이 일어나면서 적군파3세대가 범인이라는 주장은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가설'이다.
두 번째 용의자는 슈타지인데, 슈타지가 조직 차원에서 계획적으로 로베더를 암살했을 경우 그들 조직에 이익이 전혀 생기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물론 과거 슈타지였던 한 남성은, 슈타지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통일 후 실직자가 되어 여타의 동독인들처럼 개인적으로 큰 분노를 느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슈타지가 조직 차원에서(이익은커녕 테러조직으로 지탄받게 될 게 뻔한 상황에서) 로베더를 암살한다? 그것은 간단치 않은 일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이 또한 또하나의 '가설'로 취급되었다.
그리하여, 누가 실제로 총을 발사했든지간에 범행을 주도한 배후가 서독의 막강 정치세력일 수 있다는 가설과 의심만 남는다. 사건 당시 수사팀이 그쪽으로 수사방향을 설정하지 않았다는 점이 의심을 더욱 증폭시킨다. 그뿐 아니다. 어쩐 일인지 그쪽으로 수사방향이 진전될 만할 때쯤에는 뜻하지 않게 돌발사건이 일어나, 수사 자체가 좌절되곤 했다.
로베더 암살에 대한 수사 진행은 몹시 더뎠지만 베를린 신탁청의 새 청장 임명은 매우 빨랐다. 신임 신탁청장은 협의 및 구조조정에 치중하며 동독사회와 타협하려 했던 로베더와 달랐다. 아예 노골적으로 시장경제체제로의 강력한 이행을 진행하였다. 동독의 회사 94%가 삽시간에 서독이나 다른 나라에게 헐값에 팔려나갔다. 그럼으로써 동독의 기업은 대부분 민영화되었다. 로베더 암살사건으로 이득을 본 건 적군파도 아니었고, 슈타지도 아니었다. 오직 서독 정부만이 이득(동독의 자본주의화에 속도를 냄)을 보았다.
동독인들은 울분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자기네들이 또다시 서독 식의 개혁을 반대하면 누가 또 죽을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불안감을 느꼈던 듯하다. 월요시위도 중단되었다. 하여, 서독 정부는 방해 없이 경제개혁에 박차를 가할 수 있었다.
<로베더 암살사건>은 범인을 단정하지 않는다. 모두 가설인 채로 놓아둔다. 어쩌면, 적군파든 슈타지든 동독의 누군가가 로베더를 죽였을 수 있다. 그게 뜻밖의 '나비효과'를 일으켜 가만히 있던 서독 정부가 이득을 얻게 된 거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득을 보기 위해 서독 정부가 처음부터 나섰을 가능성은 없을까? '동독 경제붕괴 직전에 통일이 된 것'이라는 판단 하에 동독 공산주의 경제체제의 해체를 관철하고자 했던 서독 정부가 내내 팔짱끼고 가만히 있다가 그저 부대이익을 손에 넣은 것뿐일까?
▲ 스크린샷: 지금은 통일국가! ⓒ 넷플릭스
<로베더 암살사건>은 관객들 스스로 그런저런 질문들을 떠올려보도록 이끈다. 그런데, 20세기말 동독과 서독이 통일되는 바람에, 21세기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버린 대한민국 국민이자, 이 다큐멘터리의 진지한 관객이었던 나는 그런 질문을 하는 동안 조금 고통스러웠다. 왜냐고? '남의 일' 같지 않아서다.
우리의 통일 이후엔 어떤 냉혹하고 비정한 현실이 펼쳐질까? 혹 누군가가 로베더처럼 암살당하면 어떡하지? 남쪽이든 북쪽이든 국민들의 분노와 한탄이 위험스럽게 폭발하면 어떡하나? 마음이 무거워진다. 하지만 한편으론, 우리가 독일 사례를 진지하게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고 지금이라도 마음을 다잡고 통일을 준비한다면, 우리는 어쩌면 좀 더 지혜롭게 해나갈 수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가느다랗고 희미할망정 소망을 가져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