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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다 버려라" 할 줄 알았는데... 미니멀리즘 전도사의 반전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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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숲속의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신고 회원메모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movieli.st 작성일21.06.12 08:35 12,955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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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버려라" 할 줄 알았는데... 미니멀리즘 전도사의 반전

[환경 다큐 보따리] 넷플릭스 <미니멀리즘: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

21.06.11 14:12최종업데이트21.06.11 14:12

 

지난 4월 초, 나는 그때까지 수년간 소장해 온 책들 중 2/3를 폐기했다. 가히 칠팔백 권을 버린 것 같다. 폐기목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삿짐을 줄이자 였고, 다른 하나는 이참에 미니멀리즘을 실천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반전이 일어났다. 지난 주말 "그 책이 내게 있었지" 하면서 책꽂이를 살펴보는데, 어느새 규모가 작아진 나의 책꽂이에 그 책은 없었다. 나름 엄격한 기준을 두어 차근차근 구분해서 버렸건만(혹은 헐값에 중고매장으로 보냄), 불과 두 달 만에 콕 집어 그 책이 다시 필요하게 될 줄이야. 나는 "아! 괜히 버렸어"라고 중얼거리며 장장 24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후회를 했다. 동시에 애먼 미니멀리즘까지 원망을 했다. 하필이면 4월 초 그때 내가 미니멀리즘에 꽂힐 게 뭐람.
 
언제부턴가 넷플릭스에 접속할 때면 다큐멘터리 <미니멀리즘: 오늘도 버리는 사람들>이 추천목록에 뜨곤 했다. 하지만 나는 <미니멀리즘>을 굳이 보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미니멀리즘에 대해 내가 이미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버려라, 비워라, 그거 아니겠어?" 하는 마음이었다. 심지어 지난 4월 초 책을 정리할 즈음엔 내심 '난 미니멀리스트로 거듭나고 있어'라고 자부하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하필이면 미니멀리즘 차원에서 버린 책에 대해 엄청 후회를 곱씨ㅂ으며 '참고문헌으로 필요하니 내일 대학(모교) 도서관에 가자'라고 작정한 바로 그 날, 나는 이 다큐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버린 책이 못내 아쉬웠던 터라 솔직히 미니멀리즘 비판(!)이 영화관람의 목표였다. '못 버리는 것에 대해 뭐라고 지적하기만 해봐라' 하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상영시간에서도 미니멀리즘을 실천했는가 싶게 <미니멀리즘>이 정말 순식간에 끝나버린 뒤(53분), 나는 한동안 다소 멍한 상태로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미니멀리즘>이 '버림이나 비움'이라기보다는 '존재(being)와 정신(mind)'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요컨대 <미니멀리즘>은 물건이 아니라 인간, 눈에 보이는 물질이 아니라 눈에 안 보이는 정신에 대한 이야기로 구성돼있다. 추억의 물건들을 모아서 상자에 보관하지만 정작 추억은 '상자 안'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있다는 것, 어떤 희귀한 물건을 소장해서 흐뭇한 줄 알지만 정작 흐뭇함과 뿌듯함은 나 자신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건 없지?" 하며 결핍을 꼬집는 광고방송보다 소장품에 대한 나의 자율적 평가를 우선할 것 등 <미니멀리즘>은 상영시간 내내, 물질이 아니라 정신에 집중할 것을 정중히 부탁한다.

뭘 버리고 뭘 버리지 않을지, 잘 버리려면 무슨 기준을 세우면 좋을지에 대한 이런저런 팁이 영화 안에 물론 들어있다. 그렇지만, 그것을 다루는 분량은 비교적 짧으며 뒷부분에 몰려있다. 영화의 진짜 중요한 핵심내용은 그게 아니다. 영화는 시종일관 인간의 존재와 정신에 집중할 것을 주문한다. 사회심리학자 에리히 프롬(Erich Fromm)의 명저 <소유냐 존재냐(To Have or To Be)>의 다큐멘터리 버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스크린샷 물건중독에 관하여 생각하기

▲ 스크린샷 물건중독에 관하여 생각하기 ⓒ 넷플릭스

 
<미니멀리즘>이 강조하는 것은 소유와 애착&집착에 대한 경계, 다시 말해 '물건중독(stuffitis)'에 대한 경계다. <미니멀리즘>은 이 물건중독을 알코올중독, 마약중독, 게임중독과 거의 같은 급으로 다룬다. 
 

스크린샷 물건중독에 대하여 생각하기

▲ 스크린샷 물건중독에 대하여 생각하기 ⓒ 넷플릭스

 
우리가 몸붙여 살고 있는 자본주의는 우리의 물건중독을 치료해줄 의도도 동기도 없다. 오히려 물건중독을 부추긴다. 우리에게 물건중독이 유지되어야만 물건을 사고 파는 가운데 유지되는 자본주의체제가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으며, 경제성장도 무리없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각종 광고물들은 "이걸 가져, 이게 없어서 불행한 거야, 이걸 가지면 행복해질 거야, 이미 갖고 있어? 그러면 더 가져!"라고 홍보한다.

매일 매순간 이런 식으로 말 걸어오는 광고물들에 대하여 나몰라라 하기가 참 어렵다. 사람들은 돈을 더 벌고 돈을 더 모아 그 물건을 산다. 그 물건을 확보한 이후엔 또 다른 물건의 결핍을 경험한다. 친구와 비교하고 이웃과 비교하고, 심지어는 부유한 할리우드 배우의 살림살이와 비교해서 현재 나의 결핍을 확인하기도 한다.
 

스크린샷 광고가 물건중독을 부추긴다는 설명

▲ 스크린샷 광고가 물건중독을 부추긴다는 설명 ⓒ 넷플릭스

 
만일 의식주에 직접 관련된 필수적 항목이 결핍되어 있다면 그 결핍은 채워야 하고 채우는 게 바람직하다. 밥솥이 없는 사람에게 밥솥 없는 결핍감을 느끼지 말라고 조언할 수는 없다. 하지만 화장실 둘 있는 집에 4인 가족이 살면서 화장실 숫자에 대해 결핍을 느끼는 건 위장된 결핍이다. 더 큰 집에 사는 가족과 비교하지 않았다면 생기지 않았을 결핍감이다.

그리고, 축구를 하지 않으면서 한정판 축구화를 사서 모은다든지, 식구들마다 침실을 하나씩 차지한 뒤에 왜 방이 추가로 하나 남지 않는지(옷방이 따로 없다!)에 대해 결핍감을 느낀다면 그 또한 실질적 결핍이라 하기 어렵다. <미니멀리즘>은 물건중독의 기저에 바로 그 같은 '비교하기'와 '남 따라하기'가 깔려있음을 지적한다. 정말 가슴에 손을 얹고 따져보자. 나의 결핍감은 순전한 결핍감인가. 혹 위장된 결핍감, 물건중독이 자아낸 결핍감은 아닌가.
 
<미니멀리즘>의 내레이션은 초등학교 동창이자 미니멀리스트인 조슈아(Joshua Fields Millburn)와 라이언(Ryan Nicodemus)이 번갈아 맡았는데, 이들도 과거엔 대단한 물건중독자였다. 물건을 사들이고 또 사들이면 행복해질 수 있을 거라 철석같이 믿었던 사람들이었다. 물건을 사들일 만큼 경제력을 갖춰야 했기에 그들은 돈을 열심히 벌었다. 열심히 일하면 많이 벌 수 있었기에 그들은 눈코 뜰 새 없이 열심히 일했다. 고속승진도 해봤고, 고가연봉도 받아봤다. 고급 주택에 고급 가구를 들여놓고 살았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은 웬일인지 계속 공허했다.
 
마침내 둘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미니멀리스트가 됐는데, 조슈아가 한 발 먼저였다. 그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집에 가서 어머니가 남긴 짐을 정리(간직&폐기&기부)하면서 물질이 아닌 정신의 중요성을 퍼뜩 깨달았다. 라이언은 조슈아가 요며칠 이상스럽게(?) 행복해 보인다며 그 계기를 꼬치꼬치 캐묻다가 미니멀리스트가 되기로 결심했다. 미니멀리스트가 된 조슈아와 라이언은 각자 하던 일(잘 나가던 전문직)을 때려치우고, 둘이 함께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홍보하는 일에 뛰어들었다. 이 영화에 출연한 것도 그들이 하는 일의 일환이다.
 

영화 포스터 <미니멀리스트: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

▲ 영화 포스터 <미니멀리스트: 오늘도 비우는 사람들> ⓒ 넷플릭스

 
라이언은 단순한 삶, 즉 미니멀리즘의 삶은 절대 쉬운 삶이 아니며 그것을 위해서는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따라서 내가 한 번쯤 큰 결심을 한 후 물건들을 싹 정리해서 내다버렸다고 해서 미니멀리즘을 실천했다고 자랑하면 안 될 것 같다. 지난 4월 초 이삿짐을 줄이는 반짝효과를 보았고, 대량폐기 직후 후련함을 느끼긴 했지만, 내가 진정으로 '존재 대 소유'의 항목에서 존재 쪽으로 충분히 이동했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는 게 사실이다.
 
영화 관람 이튿날 내가 졸업한 학교 도서관에 가서 그 책을 다시 읽고 메모할 때에야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책을 괜히 버렸다고 불평할 게 아니었다. 그것 때문에 불행한 기분에 휩싸일 일도 전연 아니었다. 그냥 이렇게 도서관을 찾아 책을 읽으면 되는 일이었다. 도서관에 한 번 더 오는 게 어째서 그렇게 불평거리였던가!
 
그제서야 나는 도서관이 선사하는 행복, 내게 없는 책을 보기 위해 도서관에 들어왔다가 다른 책들을 추가로 더 읽는 행동이 부여하는 행복을 감지할 수 있었다. 물건을 많이 내다버린 뒤에야 '그것'의 정체와 위치와 소중함이 확실해졌던 것이다. '그것'이란 별다른 게 아니었다. '그것'은 행복을 인식할 주체('나'라는 '존재-자아')였다.

그날 해 질 무렵 도서관을 나오며, 이젠 내게 행복이 다가오면 빠짐없이 인식할 수 있겠다는 갸륵한 기분마저 들었다. 느낄 주체가 있으니 행복이든 만족이든 맘껏 느껴주겠노라는 호연지기가 생겼다. 그득했던 물건들과 그 물건들에 대한 애착(집착)이 나가버린 빈 마음 공간에서 나의 자아-행복의 인식주체가 여유있게 숨쉬고 있음을 확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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