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판 조민’ 사건, 美 사상 최악의 입시 비리가 드러났다 [왓칭]
최근 5년 간 권력형 입시비리 스캔들로 가장 많이 회자된 이름은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정유라 모녀’와 ‘조국-조민 부녀’다. 전자는 ‘체육특기자 전형’ 악용과 ‘대리시험’, 후자는 ‘허위스펙’을 불법적으로 입시에 활용한 혐의를 받았다. 부모의 권력과 높은 지위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점에서 대중은 분노했다.
미국에서도 두 사건을 합쳐놓은 듯한 입시 비리 사건이 벌어져 공분을 자아냈다. 넷플릭스 ‘작전명 바시티 블루스 – 부정 입학 스캔들’은 ‘미국판 조민’ 사건을 낱낱이 파헤친 다큐멘터리다.
◇미국 최악의 입시 비리가 발각된 사연
이 다큐의 뼈대가 된 사건은 사실 입시 비리와 전혀 상관 없어보였던 2019년 한 증권가 불법거래행위 수사로부터 시작됐다. 당시 피의자들이 자신들의 형량을 낮추기 위해 연방정부에 정보교환을 요청했고, 이들의 입에서 뜻밖에도 “예일대 코치 ‘루디 메러디스’가 뇌물을 요구했다”는 말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루디는 부유한 자들의 자녀 수백여명을 불법과 편법으로 명문대에 입학시켜주던 입시 브로커 ‘릭 싱어’로부터 돈을 받고 그런 일을 했다고 실토한다.
그리고 얼마 뒤 FBI와 매사추세츠 연방지방검찰청은 수사 결과 릭의 고객이었던 학부모, 입시 브로커, 대학 체육코치, 대입시험 관리 직원 등 50명을 사기공모·돈세탁·업무방해 등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힌다. 역대 최다 규모의 입시 비리 기소 사건이었고, 피의자로 헐리우드 배우, 유명 기업가 등 각종 부유층과 권력층 이름이 줄줄이 나오면서 세간에 큰 충격을 준다.
◇포토샵에 장애아 흉내까지 ‘허위 스펙’에 활용
이 다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입시 비리에 연루된 이들의 범죄행각을 FBI가 도청한 음성파일 속 대화내용과 상황을 대역배우들을 통해 재연한다. 그만큼 많은 것을 가졌으면서도 불법을 저질러서라도 명문대 졸업장까지 더 가지려 했던 권력자들의 탐욕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다큐는 특히 릭이 권력층과 부유층의 자녀를 한 해에만 700여명씩 ‘체육특기생’으로 둔갑시켜 스탠포드대, 남가주대 등 여러 명문대에 입학시켰다고 말한다. 이 다큐의 제목 ‘바시티 블루스’도 FBI가 릭 싱어 수사에 사용했던 실제 작전명이자 ‘대학 스포츠팀’을 지칭하는 용어 ‘바시티(Varstiy)’에서 따온 것이다.
릭은 특히 물에 들어가본 적 없고, 공 한 번 찬 적도 없는 학생들을 수구선수, 축구선수로 둔갑시켰다. 그저 이들이 그런 운동을 ‘하는 척’ 하는 사진을 포토샵으로 그럴싸하게 꾸며 선수생활한 경력으로 꾸며냈을 뿐이다. 소위 ‘허위 스펙’ 제조의 달인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릭이 제조해준 허위 스펙을 지원서에 장착한 부유층 자제들은 역시 릭이 여기저기 돈을 뿌려 구축해놨던 명문대 체육팀 관계자들을 통해 손쉽게 대학에 합격했다.
여기에 릭은 미국의 대학입학 자격시험에 해당하는 ‘SAT’나 ‘ACT’를 보는 과정에서 고객들의 자녀들에게 미리 학교를 방문해 ‘어눌한 척’을 하며 ‘학습 장애 테스트’를 받을 것도 주문했다. 일정한 테스트와 의료기관 서류만 제출만 거치면 학습 장애 판명을 받을 수 있고, 이 경우 혼자서만 감독관과 일대일로 시험을 보며 좀 더 많은 시험시간을 받는 건 물론 시험지 또한 바꿔치기 할 수 있음을 노린 것이다.
◇시민들 공분케 한 ‘뒷문’ 말고 ‘옆문’
다큐 속 입시전문가들은 릭과 그의 부유층 고객들이 ‘기만적인 행태’로 공분을 샀다고 진단한다. 릭의 고객 자녀 대부분은 부모의 배경을 뒤에 업고 소위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거액의 돈을 벌거나 증여받은 돈으로 대학 졸업장 없어도 충분히 호화로운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다른 학생의 입학 자리를 편법으로 빼앗은 것은 기만 행위란 것이다.
다큐 속 입시전문가들은 역대 미국의 SAT와 ACT 고득점자 중 부유층의 비율이 항상 높았다고도 지적한다. 다큐에 따르면 미국 학생의 85%가 개인 입시 컨설턴트를 못 쓰고, 아무리 싼 입시 컨설턴트도 시간당 200~300달러(한화 약 22만~33만원), 많게는 1500달러(약167만원) 이상 든다고 한다. 출발선부터 부자들이 돈으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미국은 특히 우리와 달리 ‘기부 입학’으로 불리는 ‘기여 입학제(Legacy Admission)’제도가 오래 전부터 합법화되어 왔었다. 대부분 대학이 동문 자녀를 대상으로 거액의 기부금을 내면 SAT 기준으로 만점의 10% 정도를 가점으로 준다.
그런데도 다큐 속 수많은 부유층들이 과정을 건너 뛰고 릭으로부터 결과만 돈으로 사려 한다. 이들은 특히 “나를 통해 옆문(Side door)으로 들어가면 하버드는 120만 달러(약 13억). 뒷문을 이용하면 4500만 달러(약 502억). 스탠퍼드는 5000만 달러(약 558억)다. 올해 옆문을 이용하는 사람이 730명이 넘는다”는 릭의 말에 넘어간다.
여기서 옆문이란 각종 편법과 불법으로 하는 입학, 뒷문은 기여입학, 앞문은 성적으로 정정당당히 들어가는 방법이다. 자신의 자리가 아닌 다른 학생의 입학 자리를 불법으로 돈 주고 사면서 심지어 ‘할인’까지 원한 부유층의 추악한 탐욕이 훤히 드러난 대목이다.
◇다큐 속 허탈한 결말, 그리고 우리의 현재
“릭이 만든 옆문은 닫혔지만, 돈 낼 용의가 있는 이들을 위한 많은 ‘뒷문’은 아직 열려 있다.”
다큐는 전례없이 다수의 부유층들이 릭과 연관된 입시비리 혐의로 법정 재판을 받았지만 대부분 낮은 형량과 벌금이 주어졌고, 주모자인 릭은 이들을 잡아들이는 수사에 협조하면서 아직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특히 다큐 속 “(미국의 입시) 시스템이 무너졌다고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만 일관하는 릭의 모습에 평범한 대학 입시생들과 시민들은 “반성을 하는지나 모르겠다”며 크게 허탈해한다.
우리의 현실이라고 크게 다를까. 결국 정유라씨는 고등학교와 대학 입학 자격이 취소되 중졸이 됐고, 그의 모친 최서원씨는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조민씨는 여전히 의전원 과정을 밟고 있고, 기소도 당하지 않았다.
얼마 전 조국 전 법무장관은 ‘조국의 시간’이란 회고록도 냈다. 자신의 자녀 입시 비리와 사모펀드 의혹 등으로 기소된 아내 정경심 씨 1심 재판에서는 증인 진술을 300번 넘게 거부한 끝에 나온 책이다. 정씨가 항소하긴 했지만, 이 재판에서 재판부는 정씨가 딸 조민씨 입시 과정에 ‘7대 허위 스펙’을 제출했다는 검찰의 기소 내용이 사실이라고 판단했다. 그런데도 조 전 장관은 자신과 자신의 일가의 혐의를 언론과 검찰이 부풀렸다는 주장만을 책에 담았다. 그리고 최근 여당은 그런 조 전 장관 대신 청년들에게 허탈감을 어긴 ‘조국 사태'를 사과한다면서도 ‘스펙 품앗이’가 “불법은 아니다”라고 했다.
물론 책 내용과는 다르게 조 전 장관의 본심에 반성의 마음이 눈꼽 만큼이라도 있었다 해도 크게 달라질 건 없어 보인다. ‘조국 사태’가 우리 사회와 청년들에게 안겨 준 ‘살아있는 권력’에 의해 공정이 좌우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허탈감은 쉽게 치유되긴 어려울 것이다.
개요 다큐 l 미국 l 2021 l 1시간 40분
등급 12세 관람가
특징 입시 결과를 ‘할인된 가격'으로 사려는 부유층의 탐욕과 치졸함
평점 로튼토마토🍅88% IMDb⭐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