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 꼭 먹어야 할까? 궁금하다면 꼭 봐야 할 이 장면
[환경 다큐 보따리] 넷플릭스 <우유 전쟁(the Milk System)>
<우유 전쟁(2017)>은 현재 유럽사회의 우유 유통구조가 지닌 '불의(injustice)'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으며 상영시간은 1시간 30분이다. 다큐멘터리 감독이 독일사람이어서 그런지, 독일 사례가 주로 소개된다. 다큐멘터리가 독일 사례를 보여주는 방식은, 세 명의 낙농업자(페테르, 알렉산더, 가이거)를 번갈아 인터뷰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동종업계에 속한 이 세 명은 동일 주제에 대하여 완전히 다른 경험과 의견을 발표한다. 참고로, 페테르는 750마리 이상의 젖소를 공장식으로 사육하는 대농장주고, 알렉산더는 소규모 유기농 방식으로 소를 기르는 농부다. 그리고, 가이거는 마치 반반(half & half) 피자처럼 유기농 방식에 공장식을 섞어 약 200여 마리 젖소를 키우는 중이다.
소는 누가 키우나?
세 사람의 '같은 물음, 다른 답변'의 사례들 중 대표적인 것을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무엇입니까?"에 대해 페테르의 답변은 소똥 처리다. 소 한 마리에서 나오는 원유가 1이라면, 소똥은 3이다. 원유 1을 얻기 위해 분뇨 3을 처리해야 하기에 그는 늘 걱정이 태산이다. 분뇨처리장을 큼직한 것으로 장만해뒀지만 분뇨 처리는 언제나 만만치가 않다. 그는 거대한 분뇨처리장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힘들다며, 손을 내젓는다.
중간 규모의 농장을 운영하는 가이거의 큰 걱정거리는 일손 부족이다. 가이거는 젖소들을 데리고 나가 자유롭게 풀을 뜯어먹게 하고 싶지만, 인력이 없어 포기했다. 목초지까지 소떼를 몰고 다녀오려면 적당한 수의 목자(관리인)가 필요하고, 소떼가 지나며 배설하는 소똥을 치울 청소부도 필요하다. 그러나 가이거에겐 목자&청소부를 고용할 자금이 없다. 마음은 원이로되 현실이 따르지 않는달까(위의 대농장주 페테르는 소에게 풀 뜯어먹게 해줄 의향이 전혀 없음). 그래서 현재 가이거는 온 가족을 농장 노동자로 총동원하며, '디스커버리(청소 로봇)' 같은 기계를 부분으로 활용하면서 농장을 운영한다.
마지막으로 알렉산더의 경우, 정작 본인은 태평한데 그의 아버지에게 걱정근심이 많다. 알렉산더는 적은 수의 젖소를 키우기 때문에 일정 물량 납품을 요구하는 유제품 대기업과의 거래는 어차피 체념한 지 오래됐다.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농장의 번창을 기대하는 아버지의 표정은 대체로 어둡다. 가내수공업 형태로 치즈 같은 유제품을 매번 손수 제작하고, 판매망을 스스로 개척해 직접 배달하며, 마치 '제자리걸음'하는 듯한 아들의 농장운영 방식이 아버지는 못내 안쓰럽다. 아들이 안심시켜주는 말을 건네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자신이 키우는 소에 대한 마음도 세 농부가 확연히 다르다. 알렉산더는 가축이 주인을 닮는 게 맞다면서, "제가 키우는 소들은 꼭 저처럼 느긋해요"라고 덧붙이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하지만, 가이거와 페테르는 이 대목에서 이구동성으로 '쓸모없는 소' 이야기를 꺼낸다. 가이거와 페테르는 원유를 생산하지 못하는 수컷 송아지를 일정 간격(출생 2주 안팎)으로 '처리'하고 있는 중이다.
단, 그 처리 방식에서 약간의 차이가 있다. 가이거는 먹여 살리자니 사료만 축낼 게 뻔한 천덕꾸러기 수컷 송아지들을 헐값에 '처분한다'고 한탄하듯 털어놓는다. 그는 "죽일 순 없잖아요?"라고 반문한다.
그에 비해 대농장주 페테르는 단호하다. 노력 대비 수익이 없고 다른 농장에 넘기는 것도 여의치 않으면, "여기서 처리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순간 페테르는 손을 들어 목을 치는 듯한 제스쳐를 보여준다. 자기가 사육(!)하는 소들을 생명체라기보다는 숫자로만 헤아리며, 자신을 자선사업가가 아닌 그냥 사업가로 강조하는 페테르는, 젖소 한 마리 한 마리에게 애정을 일일이 줄 수도 없고 그렇게 애정을 준 적도 없는 모양이다.
▲ 스크린샷 가이거(위, 공장식+유기농식으로 젖소를 키우는 농민)와 페테르(아래, 공장식으로 젖소를 키우는 농민) ⓒ 넷플릭스
우리가 잘 알다시피 우유는 원래 어미소가 자기 자식(송아지)에게 주려고 만들어내는 물질로서, 어린 소에게 필요한 영양분이 가득 들어있는 액체다. 그러나, 지금 대부분의 농장에서 자라는 젖소들은 정작 자기 자식에겐 차례도 가지 않는 우유를 내기 위해 쉴새없이 임신과 출산을 반복한다.
그러느라, 평균수명(20년 안팎)에 훨씬 못 미치는 '5년'만 살고 세상을 뜬다. 그 짧은 5년 동안도 내내 억류되어 지낸다. 들판에 나가 풀을 뜯어먹지도 못하고, 질소 함량이 높은 단백질 사료를 섭취하고, 토양에 스며들어 기후에 악영향을 주게 될 질소화합물을 배설하며, 수시로 강제로 임신당하면서 평생을 산다. 소가 강제임신 당하는 장면을 나는 이 영화에서 처음 봤다. 농부가 임신시술(?)을 해주는데,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복잡해진다.
▲ 스크린샷 알렉산더(유기농 방식으로 젖소를 키우는 농민) ⓒ 넷플릭스
소는 왜 키우나?
<우유 전쟁>에 따르면 인간은 무려 8천 년 전부터 우유의 장점을 알고 마셔왔다. 우리 선조들은 우유를 '불로장생의 약'인 양 귀하게 간주했단다. 아닌 게 아니라 우유의 귀한 영양분에 대해서는, 덧붙일 말이 없을 정도다. 이렇게 좋은 우유를 인간이 즐겨 마시게 된 것은 '몸에 좋은 건 골라 먹어야지'라는 식의, 그야말로 인지상정(人之常情)일 수 있겠다.
세월이 흐르며 우유 섭취인구는 점점 더 많아졌다. 많아지는 수요에 부응하고자 우유의 원료가 되는 원유 공급도 덩달아 증가했다. 그러면, 우유에 관한 한 그러한 다다익선(多多益善, the more, the better)이 정답일까? 다큐멘터리는 바로 그 점을 질문한다. "왜 (원유 생산량을) 지금과 같은 수준으로 유지해야만 하는 걸까요?" 이 질문에 대하여 다큐멘터리는 '아니다'라는 입장을 견지한다. 지금의 생산량 수준을 꼭 유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 근거는 세 가지다. 첫째, 실제로 현재 유럽에 원유가 매우 풍부, 아니, 과잉 상태다. 우유&유제품이 '풍요롭다'를 넘어 남아돈다. 그러다 보니 (유럽의 경우) 원유를 여러 방식으로 가공해 다른 대륙으로 수출한다. 수출 상대국은 주로 아프리카 대륙에 위치하는데, 그 때문에 그 나라들에서 이미 문제가 파생되기 시작했다. 그곳 나라들의 우유 가격은 낮아질 대로 낮아졌고, 생산자들은 더 가난해졌다. 그걸 알면서도 유럽의 유제품 대기업들은 원유 생산량을 여전히 유지하려 하고, 수출되는 유제품의 매출량도 유지한다. 따라서 유럽의 원유 생산자들은 납품 분량을 맞추기 위해 단백질 사료를 계속 사들이고, 분뇨 처리로 계속 골치가 아프며, 쓸데없는 수소들을 효율적으로(?!) 처분한다. 원유 생산량을 줄이면 될 텐데, 그 간단한 해법은 아무도 선택하지 않는다.
현재의 원유 생산량을 유지하지 않아도 되는 두 번째 근거는 온 인류가 연령에 상관없이 반드시 우유를 먹어야 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우유 전쟁>은 성장기 어린이가 우유를 먹는 것은 송아지가 우유를 먹는 이치와 동일하여, 분명히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 큰 어른이 어린이처럼 빨리 성장할 필요가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관련하여, 유럽 사람들이 뼈를 튼튼하게 하고자 우유의 칼슘성분을 섭취하는데도 골절발생률이 웬일인지 낮아지지 않는 현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칼슘성분의 흡수과정에서 유해한 점이 있다는 연구들이 이미 나와있음). 한편 우유는 세포증식을 돕는다. 문제는 우유가 무차별적으로 모든 세포의 증식을 돕는 바람에, 암세포의 증식도 돕는다는 것(특히 전립선암).
마지막으로 원유 생산량을 지금 수준보다 낮춰도 되는 근거 세 번째는, 품질 좋은 원유 생산을 위해 젖소에게 제공하는 단백질 사료가 지구 생태계를 위협하기 때문이다. 소에게 주는 단백질 사료는 질소화합물인데, 이것이 소똥 형태로 토양에 들어가 지하수로 흘러 들어갔다가 우리 몸에 들어오면 아질산염으로 변형된다. 아질산염은 발암물질이다. 또 토양의 질소화합물이 아산화질소가 되어 대기중으로 올라가면 지구온난화를 부추긴다. 단백질 사료의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사료의 재료(콩)가 대부분 남아메리카의 나무들(원시림)을 밀어내고 평지로 만든 밭에서 나온 콩이기 때문이다. 젖소를 한 마리 더 키우려면 그만큼 콩을 더 재배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원시림은 더 없어져야 한다. 지구온난화를 예방할 원시림을 줄여, 지구온난화를 악화시키는 소똥을 늘리는 셈이다.
결국 <우유 전쟁>은 원유 생산량을 지금보다 더 줄이는 편이 인간과 지구에 더 건강한 해결방안임을 생각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이를 위해 우유 소비자 측에서 할 일은 비교적 간단하다. 모든 좋은 영양분을 우유로만 섭취하겠다는 생각을 수정하면 된다. 우유 못지않게 좋은 식품들이 많다(시금치, 브로콜리, 아몬드 등). 다음으로, 원유 생산자 측에서 할 일은 젖소를 환경친화적으로 키우는 일일 것이다. 사실 가이거 같은 농부는 지금이라도 유기농 방식의 낙농업자로 충분히 변신 가능한 분이다.
그러니, 다큐멘터리가 제시한 것처럼 이런 분들에게 정부가 원유 가격을 보전해주는 등 혜택을 쥐어주면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유제품 기업들&로비스트들은 현재 남아도는 원유 현황을 양심적으로 솔직하게 공개하고, 원유 과잉생산을 더는 유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이 같은 일련의 해결방안들은 비단 유럽 대륙에만 해당되는 일도 아니다. 우유 유통구조는 전세계에서 비슷비슷하게 운영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유 전쟁>을 보면서 우유 유통구조의 세 축(소비자-생산자-가공자)을 각각 짚어보며 변화가 필요한 부분을 하나하나 정리해보니, 가공자(유제품 대기업&로비스트) 집단의 변화가 가장 까다롭고 힘들 것 같은 인상이 있다. 유럽의 유제품 대기업들만 그럴까? 우리나라 유제품 대기업들과 로비스트들도 둘째 가라면 서러울 것이다. 그런저런 정황을 둘러보며 다시금 생각을 검토해보니, 이 다큐멘터리에는 덤덤한 듯 객관적인 영어 제목 "the Milk System"보다 한국어 제목 <우유 전쟁>이 훨씬 더 적합하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마치 전쟁에 임하듯, 결사항전의 자세로 치열하게 우유를 대해야 할 때가 도래하였기 때문이다.
▲ 영화 포스터 <우유 전쟁> ⓒ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