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천만한 잠입수사도 불사... '상아전쟁'의 전말
[환경다큐 보따리] 넷플릭스 <아이보리 게임: 상아 전쟁(The Ivory Game)>
▲ 상아 예술품 Oglivy & Mather Bangkok, Tailand (상아로 예술작품을 만들지 말자는 광고 이미지) ⓒ Kulvadee Doksroy
상아(ivory)에 섬세한 예술혼을 불어넣는 조각 예술가들이 있다. 그들은 자연 상아를 조각하고 가공해 아름다운 조형예술 작품을 탄생시킨다. 수채화가에게 물이 필요하듯, 도예가에게 흙이 필요하듯, 다이아몬드 세공사에게 다이아몬드가 필요하듯, 동판화가에게 구리가 필요하듯, 석조 예술가에게 돌이 필요하듯, 상아 조각가들에게는 상아가 필요하다.
상아를 예술의 재료로 사용하는 전문 조각가들에게는 상아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한다. 예술작품의 수요를 맞추려면 그것의 안정적 공급만큼 중요한 건 없을 것이다. 다행히(?!) 홍콩과 중국에는 미술재료로 상아를 사고파는 대규모 상아 시장이 합법적으로 상설되어 있다. 중국의 경우 합법적으로 정부가 분배하는 상아의 거래량은 연간 5톤 정도다. 그런데, 합법 상아 시장에서 실제로 거래되는 상아의 양은 수백 톤이 넘는다고 한다. 어째서 그럴까? 상아의 입수 경로가 합법적으로 밝혀지지 않은, 세탁 상아가 거기 끼어 있기 때문이다. 아니, 끼어 있다기보다는 불법 세탁 상아가 오히려 주된 거래물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이보리 게임: 상아 전쟁>은 막대한 상아 수요 물량을 맞추기 위해 밀렵으로 죽어나가는 코끼리를 둘러싼 이야기들을 보여준다. 주로 세 이야기를 직소 퍼즐처럼 짜맞추며 진행된다. 상영시간은 1시간 52분인데, 긴장감과 몰입도가 적절히 높아, 언제 그 시간이 다 흘러갔는지 미처 감지하기 어려울 정도다. 실제 전쟁영화처럼 긴장도가 높지만 사실 딱히 끔찍한 장면은 없으니, 관람을 계획한 이들은 너무 겁내지 마시기를!
위험천만한 잠입수사
▲ <아이보리 게임: 상아 전쟁> 포스터 ⓒ 넷플릭스
첫 번째 이야기는, 불법 세탁 상아를 취급하는 시스템 안에 실제로 잠입해서 증거를 잡아 범죄자들을 체포하는 이야기다. 상아 시장 관련자들은 서로서로 조심하기 때문에 적시에 증거를 잡기 어렵다. 증거가 없으면 체포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그 때문에 잠입수사가 불가피하다.
이 잠입수사에서는 밀렵꾼이나 밀매자에게 접근해 신뢰를 얻는 과정이 절대적으로 중요한데, 홍샹황(Hongxiang Huang, 탐사보도기자, 중국인)이 참여한 작전에서는 범죄자들을 체포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다큐멘터리는 홍샹황이 몰래카메라로 찍어온 장면들 중 "여기 전시한 건 일부고, 창고에 가면 상아가 더 많아요"라고 버젓이 이야기하는 상아 시장 판매자들의 설명을 그대로 방출한다. 물론 그들이 범죄당사자는 아니지만 범죄의 한 자락에 위치하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른바 윗선과 연결되어 있어 확실한 물증 없이는 체포되지 않는다. 그 윗선이라는 작자들이 실제 그들을 보호해주고 있는 까닭이다. 그 윗선에는 경찰, 군인, 정치가 등 다양한 권력자들이 골고루 포진돼 있다고 한다.
이 같은 위험천만한 잠입수사에 홍샹황 말고 '오메가(가명)'라는 여인도 참여했다. 그 여인은 현재 불법 세탁 상아 시스템의 내부자로 활동하고 있으나, 코끼리의 상아를 보호하고자 세워진 NGO <와일드리스크>에 불법 세탁 상아의 거래장면을 촬영해 익명으로 여러 번 제보하더니, 나아가 몰래카메라를 달고 범죄현장 안으로 들어가 증거영상을 촬영해오는 위험을 감당하기로 결단하였다.
다큐멘터리 안에서 그녀는 '오메가'라는 별명으로 불렸으며, 화면에 나올 때는 신변보호를 위해 얼굴과 목소리를 완전히 변조했다. 그런데 증거수집을 위한 상아 거래 현장 촬영 중 카메라가 발각되어 아주 큰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간신히 먼저 빠져나온 <와일드리스크> 조사팀장은 그녀가 잘못될까 봐 노심초사했다. 하지만, 그녀는 다행히 무사했다. 나중에 알려진 바, 그녀가 그런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NGO를 도운 이유는 하나였다.
"불법이 자행되는데도 모르는 체하는 중국 당국이 이제라도 옳은 결정을 내리기를 소망하기 때문."
▲ 코끼리 보호를 위한 잠입수사중 잠입수사에 참여했던 오메가(왼쪽)와 와일드리스크 조사팀장(오른쪽) ⓒ 넷플릭스
탄자니아 수사팀의 활약
두 번째 이야기는 코끼리 밀렵꾼 중 대왕 격에 해당하는 '쉐타니'를 검거하기 위해 오래도록 태스크포스를 운영해온 탄자니아 수사팀의 활약을 그린다. 쉐타니의 본명은 보니페이스 마리앙고, 그는 오랜 세월 코끼리 밀렵꾼 조직을 운영해왔다. 쉐타니는 한 나라에서만 밀렵을 자행하는 게 아니었다. 그는 아프리카 대륙의 여러 나라들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며 코끼리 밀렵을 광범위하게 주도했다.
쉐타니의 조직원들은 쉐타니와 직접 연결고리 없이 코끼리를 사냥했으며, 쉐타니에게 수익의 상당 부분을 상납했다. 수년 동안 쉐타니의 이동경로를 추적하면서 쉐타니의 끄나풀들을 주로 검거하던 끝에, 마침내 이웃나라 잠비아 수사팀과의 공조를 통해 쉐타니를 검거했을 때 탄자니아 수사팀은 뛸 듯이 기뻐한다.
그렇게 쉐타니를 검거한 팀원 중 한 사람은 "쉐타니를 자비 없이 감옥에 집어넣겠다. 그가 자비 없이 코끼리를 죽였으니까!"라고 주장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떠올라, 범죄자도 인도적으로 대해야 하지 않은가 잠시 생각해보았지만, 쉐타니의 행각을 돌아보니 내 입에서도 그 똑같은 말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이야기는 위의 두 이야기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위의 두 이야기는 코끼리를 사냥하는 사람들이 범죄자인 데다 선악의 면에서 볼 때 '악'의 쪽이므로, 좀 더 분명한 점이 있다. 그러나, 세 번째 이야기에서는 코끼리도 안타깝고, 사람도 안타깝다. 지켜보는 마음이 한껏 복잡해지는 사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연인즉 다음과 같다. 기껏 농사를 지어놓았는데 코끼리가 들어와 신나게 포식하며 돌아다니는 바람에 애써 가꾼 농사를 번번이 망치게 되자, 코끼리라면 치를 떠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코끼리들이 죽지 않으면 사람이 죽게 생겼다며, 농민들은 매우 분노하거나 크게 상심해 있다. 농사를 지어 가족들을 먹여 살리고, 농산물을 팔아 아이들을 공부시켜야 하는데, 코끼리가 농토에 나타나 분탕질을 해놓으면 모든 것이 허사로 돌아가는데 그걸 어떻게 그냥 두고보느냐는 절절한 하소연이다.
<빅라이프재단>은 이 일에 의미있게 개입하고자 애를 쓴다. 농민들의 현실을 나몰라라 하지 않으며, 동시에 코끼리도 살릴 수 있는 방안으로 '전자 울타리'를 생각해냈고, 그 프로젝트를 실질적으로 진행한다. 전자 울타리는 코끼리의 난입을 효과적으로 막아줄 수 있다. 코끼리가 난입하지 않으면 농민들이 코끼리를 쳐부숴야 할 적으로 생각할 리 없다. 코끼리와 인간의 활동영역을 구분해주어 겹치지 않게 하여 평화를 유지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이를 위해 <빅라이프재단>은 노력을 경주한다. 코끼리의 공간을 철저히 탐색하고, 농민들을 만나 간곡히 설득하는 등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진행하는 것이다.
"사타오를 기리며..."
다큐멘터리는 위와 같은 세 가지 이야기를 번갈아 진행하는 사이사이에, 밀렵꾼들에게 당한 코끼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아울러 상아 가격을 올리기 위해(환언하면 상아의 희소가치를 올리기 위해) 밀렵꾼들이 코끼리 개체수 감소를 실제로 소망한다는 점까지 짚어준다. 상아가 10개일 때보다 1개일 때 가격이 상대적으로 높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결국 해결책은 한 가지다. 인간들이 상아 예술품을 원하지 않게 되는 것! 다시 말하면, 상아 예술품을 거부하는 일이다. 상아 예술품을 사는 사람들이 줄어들면 상아 조각가들이 줄 것이고, 상아 조각가들이 줄어들면 상아 밀렵꾼들도 줄 것이다. 그런 날이 속히 오면 좋겠다, 코끼리들이 다 멸종되기 전에.
다큐멘터리를 찍는 중에 정말 크고 멋진 상아를 지닌 우람한 코끼리 '사타오'가 밀렵꾼들에게 당했다. 그 사실을 전해들은 등장인물들 모두가 진심으로 슬퍼하며, 그를 애도하였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는 엔딩 크레디트로 '사타오를 기리며'라는 메시지를 띄웠다. 화면에 뜬 '사타오'의 생전 사진이 가슴 아프다.
늠름한 '사타오'의 생전 사진을 보며 나는 상아 예술품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접고자 노력하기로 했다. 그런데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사타오'의 생전 사진을 바라보니, 상아로 만든 예술품은 결코 아름다운 게 아니라, 핏물 씻어낸 코끼리 시체의 일부라는 생각이 (크게 애쓰지도 않았는데) 뜻밖에도 쉽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 다큐멘터리 시청자들도 어쩌면 그럴 것 같다.
▲ 다큐멘터리 촬영 중 사망한 코끼리 사타오의 생전 모습(가운데) ⓒ 넷플릭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