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 스위프트, '거짓말쟁이' 오해 딛고 일어서다
[이십전심] 히트작 '피어리스' 재발매... 자신의 목소리로 노래하다
이심전심(以心傳心), '마음과 마음으로 뜻이 통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서로에게 연결되기보다 마음의 문을 닫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저는 음악이 서로의 마음을 이어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20대의 끝자락을 바라보는 지금, 무게감 있는 이야기나 평가는 잠시 접어두고, 우리 곁의 음악을 이 나이에만 볼 수 있는 시선으로 담백하게 전하고자 합니다. 저의 '이십전심'이 많은 분들을 이어주었으면 합니다.[편집자말] |
2000년대 많은 사랑을 받았던 그룹 SG워너비가 다시 화제입니다. 지난주 MBC <놀면 뭐하니?>의 기획, 'MSG워너비'에 출연해 '타임리스(Timeless)', '내 사람', '라라라' 등 추억의 노래를 부르며 많은 분들께 추억 여행을 선물했는데요. 관련 방송 클립은 유튜브 '실시간 인기 동영상' 정상을 차지하며 도합 천만 이상 조회수를 기록했고, 스트리밍 서비스 멜론, 지니, 벅스, 플로의 주요 차트에 '타임리스'가 상위권에 올라있죠.
흥미롭게도 현재 미국 음악 차트 정상에도 2000년대 작품이 올라 있습니다. 한국 대세가 '타임리스'라면 미국 대세는 '피어리스(Fearless)'입니다. 팝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가 2008년 열아홉 나이에 발표한 두 번째 정규 앨범인데요. 지난 4월 9일 테일러는 '피어리스'를 다시 녹음해 만든 '피어리스 : 테일러스 버전(Fearless : Taylor's Version)'을 발표했는데, 이 앨범으로 데뷔 첫 주 빌보드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하고 빌보드 싱글 차트 100위 내 8곡을 진입시켰습니다.
▲ 테일러 스위프트는 지난 4월 9일 자신의 두번째 정규 앨범 '피어리스(Fearless)'를 '테일러의 버전(Taylor's Version)'으로 재발매하여 빌보드 앨범 차트 1위에 올랐다. ⓒ Universal Music
'피어리스'는 13년 전에도 엄청난 인기를 누렸습니다. 2006년 풋풋한 컨트리 가수로 데뷔해 인지도를 쌓은 테일러 스위프트가 전 미국인의 아이돌로 거듭난 순간이었죠. '피어리스'는 그 해 빌보드 앨범 차트에서 총 11주 1위에 올랐으며 지금까지 미국에서만 100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간 히트 앨범입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가져온 '러브 스토리(Love Story)', 미국 틴에이저들의 '격공(격한 공감)'을 부른 '유 빌롱 윗 미(You Belong With Me)' 등이 오래도록 사랑받았죠.
평단에서도 테일러 스위프트에 대한 지지는 강력했습니다. 앨범 중 일곱 곡을 직접 작사 작곡했다는 재능부터 미국에서 사랑받는 컨트리 장르를 한다는 이점까지,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듬해인 2010년, 음악계 최고의 영예로 손꼽히는 그래미 어워드는 총 여덟 부문에 '피어리스'를 후보로 올렸는데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올해의 앨범상뿐 아니라 총 4개의 트로피를 안겨줬습니다. 2020년 빌리 아일리시 이전까지 테일러 스위프트는 역사상 최연소로 그래미 올해의 앨범 상을 수상한 가수였습니다.
▲ 2008년 테일러 스위프트는 정규 2집 '피어리스'로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며 그 해 미국에서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가 됐다. ⓒ Love Story 뮤직비디오 캡쳐
테일러 스위프트는 왜 13년 만에 본인의 히트작을 다시 녹음해서 발표했을까요? 사실 그는 '피어리스'를 시작으로 첫 여섯 장의 정규 앨범을 재녹음하여 재발매할 계획입니다. 2019년 9월에 처음 계획을 발표했고 2020년 11월부터 재녹음을 시작했죠. 여기에는 화려한 테일러 스위프트의 성공 아래 가려진, 슬픈 사연이 숨어 있습니다.
2004년부터 2018년까지 테일러 스위프트의 소속사는 미국 내슈빌의 빅 머신 레코드(Big Machine Record)였습니다. 계약 당시 테일러는 향후 발표하는 6장의 정규 앨범 발매와 음반의 권리를 빅 머신 레코드에 이양했죠. 당시 테일러 스위프트는 15살의 어린 나이였고, 빅 머신 레코드 역시 테일러 스위프트의 아버지가 돈을 들여 투자를 해야 할 정도로 무명의 회사였습니다.
이후 테일러는 빅 머신 레코드에서 '테일러 스위프트(Taylor Swift)', '피어리스', '스피크 나우(Speak Now)', '레드(Red)', '1989', '리퓨테이션(Reputation)'까지 총 6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합니다. 매 앨범마다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뒀고, 무명 레이블 빅 머신 레코드는 수익의 80%를 가져다주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활약으로 이름을 알릴 수 있었죠. 그런데 2018년 11월 테일러가 빅 머신 레코드와의 계약이 만료되어 새 회사 리퍼블릭 레코드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문제가 시작됩니다.
빅 머신 레코드는 테일러 스위프트의 오랜 요청에도 불구하고 여섯 장의 앨범 마스터권을 돌려주지 않았습니다. 계약을 연장할 시 향후 발매하는 앨범 한 장 당 과거 작품 한 장의 마스터권을 돌려주겠다는 황당한 제안을 할 뿐이었죠. 게다가 빅 머신의 CEO 스콧 보체타는 이미 회사를 넘길 계획이었습니다. 그리고 테일러가 이적한 다음 해, 2019년 9월 빅 머신 레코드는 미국 연예계의 거물, 스쿠터 브라운에게 인수됐죠.
저스틴 비버의 매니저로 명성을 쌓은 스쿠터 브라운은 최근 하이브에 인수된 이타카 홀딩스(Ithaca Holdings)를 통해 우리에게도 많이 알려진 인물입니다. 하지만 테일러와 스쿠터 브라운의 관계는 좋지 않았죠. 2016년 테일러 스위프트가 힙합 가수 카니예 웨스트와의 갈등으로 '테일러 스네이크(Taylor Snake)'라는 멸칭까지 받으며 조롱 대상이 될 때 앞장서서 테일러를 비꼰 인물이 바로 스쿠터 브라운이었습니다.
테일러는 자신이 만든 앨범의 판매와 유통을 위해 원수 같은 스쿠터 브라운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였습니다. 빅 머신 측은 스쿠터 브라운에게 회사를 넘긴다는 소식을 테일러에게 전하지 않았죠. 실제로 외로운 톱스타의 위치를 고백한 2019년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에서조차 테일러 스위프트는 자신이 만든 노래를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 2010년대 중후반부터 테일러 스위프트는 각종 루머에 시달리며 거식증 등 심리적 압박에 시달려야 했다. ⓒ 테일러 스위프트 유튜브 캡쳐
테일러 스위프트는 커리어 내내 많은 오해를 받았습니다. 컨트리 백인 가수라는 이미지와 평단의 일관된 호평이 타 장르 팬들에게는 반감을 불러일으켰죠. 그가 2009년 MTV VMA 시상식에서 '유 빌롱 위드 미'로 올해의 비디오상 여성 부문을 수상하러 올라갈 때 카니예 웨스트가 무대에 난입해 "비욘세의 '싱글 레이디'가 상을 탔어야 했어"라며 기쁜 순간을 망친 것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후 '페이머스(Famous)'라는 노래로 자신을 성희롱한 카니예 웨스트에게 항의하자 그의 아내 킴 카다시안이 조작된 통화 기록을 가져와 그를 미국 최악의 거짓말쟁이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테일러도 지지 않고 '리퓨테이션' 앨범에서 독한 모습으로 안티들에게 맞섰죠. 타이틀 싱글 '룩 왓 유 메이드 미 두(Look What You Made Me Do)'에서 '옛날 테일러? 걘 죽었어!'라 말할 정도로요. 하지만 거듭되는 싸움 끝에 테일러는 지쳐갔습니다.
▲ 2010년대 개인적 침체기를 겪은 후 2020년 발표한 앨범 '포크로어'는 테일러에게 '피어리스', '1989' 이후 세번째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상을 안겨주며 성공적인 부활을 알렸다. ⓒ Universal Music
다큐멘터리 '미스 아메리카나'부터 테일러는 고통스러운 과거와 더불어 오래도록 숨겨둔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시간 그는 미국을 상징하는 '미스 아메리카나'였죠. 그 상징성으로 거대한 성공을 거둔 것도 사실이지만, 불필요한 오해와 기성의 시선으로 인해 개인의 삶은 파괴되었습니다. 언제나 자신의 경험을 노래로 옮기고, 자신이 느낀 점을 숨기지 않았던 진실한 싱어송라이터의 모습도 오래도록 저평가되었고요.
그럼에도 테일러 스위프트는 다시 일어섰습니다. 환희와 절망을 동시에 안겨준 20대를 보내고 30대가 된 2020년 7월 24일.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기습 발표한 정규 앨범 '포크로어(folklore)'에서 테일러는 다시 한번 어쿠스틱 기타를 잡고, 차분한 포크 음악을 노래하며 코로나19로 어두워진 세상을 치유했습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잔잔한 고백은 2020년 전 세계에서 아홉 번째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의 영예로 돌아왔으며 그래미 어워드 올해의 앨범 상을 다시금 안겨주었습니다. '곡 쓰기를 멈출 수 없다'는 고백을 증명하듯, 같은 해 12월 11일에는 아홉 번째 정규 앨범 '에버모어(evermore)'로 또 한 번 커다란 사랑을 받기도 했네요.
▲ 테일러 스위프트는 이번 '피어리스' 재발매와 더불어 공개한 '러브 스토리' 뮤직비디오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를 응원한 팬들의 사진을 담았다. ⓒ 테일러 스위프트 유튜브 캡쳐
세상 아무 근심 없을 것 같았던 슈퍼스타 테일러도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를 온전한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데 정말 오랜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피어리스'의 재녹음 버전은 특별합니다. 타인에게 넘어간 자신의 과거 노래들을 새로운 목소리로 녹음하는 이 과정엔 오로지 나, 그리고 나의 음악을 듣고 사랑해준 팬들만이 존재합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피어리스'를 다시 들으면 즐거운 추억이 다시금 떠오릅니다. 쉬는 시간에 교실 뒤편에서 서툰 기타 연주로 '러브 스토리'를 함께 부르던 기억, '유 빌롱 위드 미'의 뮤직비디오를 보며 짝사랑의 아픔을 공감하던 사춘기 시절이 기억나네요. 실제로 테일러는 새로운 '러브 스토리' 뮤직비디오에 팬들과 함께한 사진을 소중히 담아냈습니다.
새로운 '피어리스'는 참 예쁘고 찬란했던 저희의 10대 시절을 아름다운 동화처럼 펼쳐 보여줍니다. 동시에 길었던 혼자만의 고통과 아픔을 극복하고, 비로소 자신의 이야기로 노래하는 아티스트가 이처럼 가깝게 느껴질 때도 없었죠. 테일러를 동경하며 자라온 MZ세대에게는 더욱 가슴 뭉클한 장면일 테고요. 20대의 끝을 향해 달려가는 아이유를 바라보는 감정도 이와 같겠죠.
테일러 스위프트의 아름다운 '다시 부르기'. 정말 이제는 '피어리스'의 가사처럼, '이유는 모르겠지만, 너와 함께라면 거센 폭풍 속에도 가장 멋진 드레스를 입고 춤을 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려움 없이(Fearless)'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