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바다는 지금
박상은 온라인뉴스부 기자
시작은 플라스틱이었다. 고래를 사랑하는 청년은 바다를 지키기 위해 플라스틱과의 전쟁을 선포한다. 플라스틱 빨대나 식기를 쓰지 않고, 해변에서 정기적으로 쓰레기를 주웠으며, 플라스틱 제로를 외치는 환경단체에 모조리 후원했다. 그런데 일본이 상업적인 고래잡이를 재개한다는 소식을 듣고 청년의 가치관이 흔들린다. 한쪽에선 여전히 고래를 죽이는데 플라스틱을 줄이는 것만으로 바다를 구할 수 있을까. 청년은 답을 찾기 위해 일본으로 향하고, 그 여정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영화 ‘씨스피라시(Seaspiracy)’는 상업 어업이 어떻게 해양 생태계를 파괴하는지 고발한 다큐멘터리다. 4월 한 달간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넷플릭스 영화 7위에 오를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스물여덟 살 청년의 환경 다큐가 이토록 주목받는 이유는 환경운동을 잠식한 탈(脫)플라스틱 열풍 사이에서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야’라고 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알리 타브리지 감독은 일본 와카야마현 다이지에서 벌어지는 돌고래 학살을 취재하면서 플라스틱에 가려진 상업 어업의 폐해를 깨닫는다. 돌고래가 너무 많은 물고기를 잡아먹는다는 주장과 달리 수많은 어종을 멸종위기로 몰아넣은 건 남획과 혼획을 일삼는 상업 어선이었다. 막대한 보조금을 받으며 성장한 상업 어업은 해양생물을 무자비하게 쓸어 담고 대량의 어업 쓰레기를 배출했다. 고래의 배 속에 가득 찬 그물 역시 플라스틱이었지만 사람들의 관심은 코에 빨대가 꽂힌 바다거북에게만 쏠려 있었다.
감독은 수산 기업과 손잡은 환경단체, 목숨을 위협받는 조업 감시자들, 원양어선 위 강제노동 등을 끈질기게 추적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바다(Sea)를 둘러싼 음모(Conspiracy)들이다. ‘빨대는 바다로 유입된 플라스틱의 0.03%에 불과하다’ ‘미국 한 곳에서만 어선에 의해 포획되거나 다치거나 죽는 거북이 연간 25만 마리에 달한다’ ‘매년 사라지는 숲의 면적은 10만㎢가 넘는데 저인망 어업은 매년 약 1600만㎢의 바닷속 면적을 없앤다’. 믿기 어려운 통계들은 ‘지속 가능한 어업’이 존재할 수 없다는 비관적 결말에 힘을 싣는다.
영화는 개봉 직후부터 많은 논쟁을 불렀다. 인터뷰를 과잉 편집했다는 반발이 나왔고 해양수산 관련 단체들의 노력을 깎아내렸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일부 통계 오류도 있었다. ‘2048년에 해양생물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주장은 2006년 연구에서 나왔는데, 논문 저자는 최근 언론을 통해 ‘데이터는 거의 20년이 지났고 그동안 많은 지역에서 어류 개체 복구 노력이 있었다’고 밝혔다. 태평양 쓰레기 섬의 46%가 어망이었다는 연구도 빨대와 같은 얇은 플라스틱이 더 빠르게 조각나 흩어진다는 점을 간과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몇몇 논란에도 불구하고 ‘씨스피라시’는 의미 있는 질문을 남긴다. 그물을 먹고 죽은 고래와 비닐을 먹고 죽은 고래는 무엇이 다른가. 그동안 어업은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바다와 더불어 살아가는 거칠고 신성한 노동처럼 인식돼 왔다. 어부에게 물고기를 잡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보다 일회용컵 사용을 완전히 금지하는 것이 더 옳은 일처럼 여겨진 이유다.
영화는 전통적인 어업의 이미지를 깨고 문제를 새롭게 보라고 말한다. 놀랍게도 한국을 포함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회원국들은 5년 전 총회에서 ‘2030년까지 바다의 30% 이상을 산업 활동이 금지된 보호구역으로 만들겠다’고 결의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해양보호구역은 3%도 되지 않는다. 그마저도 대부분 연안 주변으로 설정돼 있다. ‘씨스피라시’팀은 국제청원과 캠페인, 교육자료 배포 등으로 직접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겠다는 계획이다. 해양보호구역 확대를 촉구하는 청원에는 이미 55만명 이상이 서명했다.
“일단 바다에 나가면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알겠어요?” ‘돌고래 보호’ 인증라벨을 관리하는 환경단체인 지구섬협회(Earth Island Institute) 관계자의 말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도록 맴돈다. 그들이 던지고 끊어내는 어망이 내가 버리는 플라스틱 쓰레기보다 양심적일 거란 믿음은 어디서 왔을까. 끼니마다 생선을 소비하는 일이 내일도 가능할 거란 확신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어쩌면 우리는 바다를 위한다면서, 눈에 보이는 가장 쉬운 길만 선택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박상은 온라인뉴스부 기자 pse021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