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가 손 내민 ‘님아’, K-다큐의 감동을 전해주오
등록 :2021-04-25 17:05
침체 일로를 걷던 한국 다큐멘터리에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오티티)가 새로운 활로가 되고 있다. 최근 한국 다큐를 원작으로 한 오리지널 시리즈가 넷플릭스를 통해 190개국 2억명에게 공개되는가 하면, 국내 방송사 다큐가 글로벌 다큐 전문 오티티에 최초로 진출하는 일도 벌어졌다. 왓챠, 티빙 등 국내 오티티들도 오리지널 다큐 콘텐츠 제작에 뛰어들고 있다. 기존의 지상파 방송이나 아이피티브이(IPTV)가 아닌 온라인 콘텐츠 시장이 한국 다큐의 새 보금자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3일 넷플릭스를 통해 전세계에 공개된 <님아: 여섯 나라에서 만난 노부부 이야기>는, 또 하나의 한류인 ‘케이(K)-다큐’의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한 계기였다. 이 다큐 시리즈는 한국 다큐 역사상 최고 흥행(관객수 480만명)을 기록한 진모영 감독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4)의 글로벌 확장판이다. 2014년 <님아…>가 한국 노부부의 변치 않는 사랑을 다뤘다면, 2021년 <님아…>는 한국을 시작으로 미국·스페인·브라질·일본·인도 등 6개국 노부부들의 남다른 사랑을 전한다. 진 감독은 6개국에서 동시에 제작된 이 시리즈의 한국편 감독과 여섯편 전체의 총괄 프로듀서를 맡았다. 한국 원작 다큐를 바탕으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가 만들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16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스튜디오에서 만난 진 감독은 “2017년 가을에 넷플릭스 본사 다큐 담당자로부터 ‘작품 보고 감동했다’며 <님아…>를 원작으로 시리즈를 만들고 싶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했다. 원작 <님아…>에 가깝게 작업하기 위해 한국편의 감독과 더불어 시리즈 전체의 총괄제작을 맡아달라는 넷플릭스의 제안을 진 감독이 수락하면서, 글로벌 프로젝트는 시작됐다. “넷플릭스랑 작업하고 싶었는데 주변에 해본 사람이 없는 거예요. 다큐 업계를 위해서도 경험해보면 좋겠다 싶었죠. 다른 누군가가 작업하면 조언해줄 수도 있고. 제 자식이 세계로 뻗어나가는 걸 보는 재미도 있었죠.”
2018년 8월 넷플릭스와 첫 회의를 한 뒤 대륙별 안배와 가입자 수를 고려해 미국·스페인·브라질·일본·인도를 대상 국가로 선정했다. 총제작 책임자인 ‘쇼러너’와 협의해 나라별 감독을 선정하고 출연자 결정에도 관여했다. “두가지 원칙을 제시했어요. 하나는 50년 이상 오랜 세월 함께 산 사이좋은 초혼 부부. 또 하나는 온종일 서로 붙어 있는 커플이어야 한다는 것.” 2019년 한해 동안 6개국에서 동시에 촬영이 이뤄졌다. 진 감독은 전남 보길도에서 전복 양식을 하는 부부 이야기를 연출했다.
케이다큐의 어떤 점이 넷플릭스에 매력적으로 다가갔던 걸까. “우리는 흔히 ‘휴먼다큐’라고 하지만 다른 나라에는 그런 장르가 없어요. 그냥 소셜·컬처·폴리티컬 등으로 나누죠. 대상도 주로 가수나 유명인들을 다루지, 우리처럼 일반인들을 다루지 않거든요. 휴먼다큐의 경험이 없는 거죠.”
케이다큐를 비롯한 한국 콘텐츠에 대한 넷플릭스의 관심은 투자금액의 변화로도 확인할 수 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 콘텐츠에 7000억원을 투자한 바 있는 넷플릭스는 올해에만 5500억원의 투자금을 책정했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전체 투자금에서 장르별로 예산을 책정하진 않았지만 케이다큐에 대한 넷플릭스의 관심이 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이번 <님아…> 프로젝트는 그 지속적인 관심의 한 결과”라고 했다.
우리만의 스토리텔링이 케이다큐의 경쟁력이라고 본다면, 한국방송(KBS)의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도 그 한 예로 꼽을 만하다. 지난 22일 <모던코리아> 시즌1 전편이 국내 방송사 다큐 최초로 글로벌 다큐 전문 오티티 다필름스에 진출한 것이다. 다필름스는 유럽 7대 주요 다큐영화제 연맹이 2005년 설립해 독립·예술영화 배급 지원에 앞장서고 있는 플랫폼. 주요 국제영화제 프로그램 수상작이나 초청작 등 웰메이드 다큐만 선보이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초청작이기도 한 <모던코리아>는 다음달부터 서비스하기로 했다. 방대한 한국방송 영상 아카이브를 입체적으로 재구성한 <모던코리아>는 유럽 내 4대 국제영화제로 불리는 로테르담국제영화제의 ‘시네마 리게인드’ 부문에도 국내 방송 다큐로는 처음으로 초청됐다. 올해 초에는 시즌2로 ‘포스트모던 코리아’ ‘왕이 되려던 남자’ ‘짐승’ ‘케이팝 창세기’ 등의 작품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
케이다큐에 대한 관심이 글로벌 오티티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지난 3월 국내 토종 오티티 기업 왓챠는 프로야구 구단인 한화 이글스를 조명하는 오리지널 다큐를 제작한다고 발표했다. 구단 수뇌부부터 코칭스태프와 선수단, 프런트, 헌신적이고 열정적인 팬들까지, 한화 이글스의 다양한 인물들 하나하나가 올 한해 동안 만들어낼 드라마를 생생하게 기록할 계획이다. 왓챠와 한화 이글스가 공동으로 기획·투자하고, 왓챠가 제작하는 다큐는 내년 상반기 공개할 예정이다.
지난해 10월 씨제이이엔엠(CJ ENM)에서 분할해 독립법인으로 출범한 티빙도 다큐 제작에 착수했다. 티빙 관계자는 “아직 구체적인 내용까지 말할 수 있는 단계는 아니지만, 상반기에 오리지널 다큐 제작에 나서기로 한 건 확정된 사실”이라며 “다른 오티티와의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발 빠르게 대응하려 한다”고 말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