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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라와 호세프의 몰락
당시 브라질 경제는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2015년 브라질 GDP는 전년 대비 4%포인트 줄었고, 실업률은 2.6%포인트 늘었으며 물가는 8% 올랐다. 국가 채무는 1년 만에 21%가 느는 등 경기 침체가 이어지며 국민의 불만이 극에 달하고 있었다. 그러던 찰나 부패 혐의가 드러나면서 여론이 폭발했다. 2016년 3월 호세프 탄핵을 위한 시위엔 브라질 전국에서 300만명이 모였다.
호세프는 국영 은행에서 돈을 끌어다 복지 예산으로 쓴 뒤 이를 갚지 않아 재정회계법 위반 혐의를 받았다. 2014년 재임을 위해 경제성적표를 좋게 보이려 이런 편법을 썼으며 그 결과 재선에 성공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호세프는 “탄핵 시도는 쿠데타다. 나는 관용과 대화와 평화를 원한다. 하지만 이건 민주주의가 지켜질 때만 가능하다”고 버텼지만, 법 위반에 여론의 악화가 겹쳐 2016년 8월 탄핵당했다. 이미정 교수는 “호세프의 탄핵은 재정회계법을 명백히 어긴데다, 이러한 위법을 통해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국민이 등을 돌린 결과”라고 설명했다.
룰라 대통령도 2018년 2심에서 뇌물을 받은 혐의로 징역 12년 선고를 받으면서 다음 대선 출마가 불가능해졌다. 룰라는 이전에도 부패 의혹을 받은 전력이 있었다. 2004년 브라질을 떠들썩하게 한 ‘멘살렁 스캔들’이다. ‘멘살렁’은 포르투갈어로 ‘매달 받는 많은 액수의 용돈’이라는 뜻이다. 룰라는 당시 국정을 이끌기 위해 다른 당 소속 국회의원들의 협조를 구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그들에게 정기적으로 1000만원 정도를 매달 뇌물로 지급했다. 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기업에 손을 벌렸다. 룰라와 노동당은 국정을 이끌기 위해선 불가피했다고 변명했지만, 노동당의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가 생겼다. 룰라의 재임 시절 브라질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국민 지지를 얻었기 때문에 탄핵을 당하는 등 정치적 수모를 겪지는 않았지만, 그의 도덕성을 의심하는 사람이 많아지게 됐다.
룰라가 징역 선고를 받으며 2018년 대선에 설 수 없었던 상황에서, 그 반사이익으로 극우파 포퓰리스트 정치인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당선됐다. 그는 동성애 혐오 발언과 인종 차별 발언을 스스럼없이 해 ‘브라질의 트럼프’라는 별명이 붙은 정치인이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은 놀랍게도 '세차작전'을 주도한 모루를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이 때문에 룰라 지지자들은 “모루가 ‘사법 쿠데타’를 일으켜 극우 정치인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그 대가로 장관 자리를 얻었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모루는 장관 자리에 오르며 “나는 주인을 섬기려고 정부에 들어간 게 아니다. 나는 우리나라와 법을 섬기려고 들어갔다”고 말했다. 소신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하지만 모루 장관 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보우소나루 대통령의 아들이 정권에 유리한 방향의 가짜뉴스를 퍼뜨린 혐의로 수사 대상이 되자 대통령이 경찰청장을 해임한 일이 있었다. 모루는 대통령 결정을 비판하며 장관을 사임했다. 조희문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중남미법 전공)는 “모루는 브라질 국회의원을 대상으로도 거침이 없었고, 룰라 사건에서도 성역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그의 행보 전반을 볼 때 매우 신념이 뚜렷한 인물로 평가받는다”고 말했다.
놀라운 반전과 브라질의 미래
다큐는 2018년 룰라가 구속 수감되는 장면으로 끝난다. ‘위기의 민주주의’는 영상적으로 완성도가 높은 다큐이지만, 절반의 진실만 담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룰라의 뇌물 혐의 자체는 부인하기 힘들다는 점, 초대형 부패 수사가 브라질의 부패 척결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 등은 다큐에 거의 담기지 않았다.
이는 다큐를 만든 페트라 코스타 감독의 정치적 노선과도 무관하지 않다. 코스타 감독은 브라질에서 알아주는 건설업자 할아버지를 두고 있는 부유한 계층 출신이다. 그의 부모는 열렬한 노동당 지지자다. 아버지는 미국의 베트남 반전 운동에 심취했었고, 어머니는 브라질 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다. 코스타는 미국 컬럼비아대와 영국 런던정경대에서 유학 생활을 했고, 뉴욕 맨해튼에서 영화에 빠져든 리버럴 지식인이다. 브라질의 ‘강남좌파’ 같은 위치에 있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현재 브라질 상황은 이렇다. 세차 작전은 막을 내렸고, 모루도 정가를 떠났고, 보우소나루의 지지율은 코로나 대처에 실패하면서 내리막을 걷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막힌 반전이 하나 나왔다. 최근 브라질 연방 대법원이 법원의 자격과 권한을 문제 삼으면서 룰라에게 내린 지방법원의 2심 판결을 무효로 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룰라는 다음 대선에 출마할 길이 열렸다. 특이한 점은 이 판결을 내린 연방 대법원 에드송 파싱 판사가 호세프 대통령이 지명했다는 점이다. 그는 대선 당시 호세프 지지 연설을 한 적도 있는 룰라 측 인물이다. 브라질의 연방 대법원 판사는 총 11명이며 대통령이 추천하고 상원의 승인을 통해 임명된다. 임명되면 75세 정년 퇴임 때까지 자리가 보전된다. 룰라ㆍ호세프가 추천한 판사가 7명으로 절대다수다. 그래서 브라질 내부에선 "연방 대법원이 정파적 결정을 했다"는 비판이 나왔다.
조희문 교수는 “연방 대법원은 노동당 측 판사들이 많기 때문에 룰라 측에선 3심까지 기다리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을 것”이라며 “판결 자체가 룰라가 무죄라는 의미는 아니지만, 다시 2심을 진행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사실상 룰라의 2022년 대선 출마가 가능해졌다”고 설명했다.
이정봉 기자 mole@joongang.co.kr
영상=김지선·정수경 PD, 김지현·이가진 인턴
[출처: 중앙일보] 브라질 대통령 탄핵시킨 판사…조국은 왜 그 다큐 올렸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