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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소식3대가 사는 대가족, 엄마가 집을 나갔다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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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엘리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신고 회원메모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movieli.st 작성일22.01.17 11:10 2,432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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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가 사는 대가족, 엄마가 집을 나갔다

[리뷰] 넷플릭스 영화 <마나나의 가출>

22.01.17 11:02최종업데이트22.01.17 11:02

 

'50이 넘으면 꼭 부부가 같이 살지 않아도 돼', 친구의 지인이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이 말에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의 가족과 부부의 존재에 대한 여러 '함의'가 담겨있다. 이 말을 전해들은 내가 '아이들은 다 컸고?'라고 반문했듯이 말이다. 


딱 50은 아니지만 사회적 단위로서 부부가 가정을 꾸려 해야 할 일을 다 마무리하고 나서 찾은 해법으로 최근 '졸혼'이 우리 사회에서는 등장하고 있다. 아마도 젊은 층보다도 이혼율이 더 높은 시절이 찾은 궁여지책일 것이다. 이 글을 쓰는 기자 역시 '부부가 꼭 같이 살지 않아도 되는' 이 시절의 기로에 놓여있어서일까 넷플릭스 영화 <마나나의 가출>이 남다르게 다가왔다. 
 

마나나의 가출

▲ 마나나의 가출 ⓒ 넷플릭스

 
조지아의 마나나

두 사람이 만나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고 살아가는 인생의 과정, 하지만 지극히 개별적인 이 과정은 시대적 역사적 산물이다. 춘향이와 몽룡이가 만나 사랑을 했다는 조선시대 <춘향전>이 근대적 서사의 단초로 여겨지는 이유는 바로 '신분을 뛰어넘는 사랑'이 허용되지 않는 시대를 넘어선 '개인의 의지적 선택'이 주제였기 때문이다. 

<마나나의 가출>은 조지아의 영화이다. 조지아는 우리에게는 '그루지아'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인 카프카스 지역의 국가이다. 조지아 하면, 또 한 편의 영화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2019)가 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국립 무용단의 일원이 되고자하는 주인공 메라비(레반 겔바키아니 분). 영화는 조지아 국립 무용단이라는 전통과 독창성, 그리고 경쟁자인 이라클리와의 사랑이라는 동성애적 정체성 속에서 고뇌하는 '개인'의 이야기를 다룬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의 주인공 메라비네 집은 3대가 모여산다. 외할머니, 엄마, 그리고 메라비와 형. <마나나의 가출>에서 마나나네 집도 3대가 모여산다. 마나나의 부모 세대, 마나나와 남편, 그리고 마나나의 자식인 아들과 딸이 한집에 모여 복닥거리며 산다. 두 영화 공통적으로 '모계' 중심의 대가족이 등장한다. 하지만 모계 중심이라고 해서 모계에 주체성이 부여되는 건 아니다. 
 

마나나의 가출

▲ 마나나의 가출 ⓒ 넷플릭스

 
대가족은 가족이 많이 모여산다는 것만이 아니다.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에서 메라비의 연인은 사회적으로 매장될 수도 있는 동성애 대신 가족을 택해 떠난다. '나의 사랑'을 대신할 수 있는 '가족'은 세계관이다. 장황하게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의 이야기를 하는 건 바로 '가족주의 세계'를 살아가는 주체적 개인의 고뇌를 <그리고 우린 춤을 추었다>처럼 <마나나의 가출>이 천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얼크러져 있다', 아마도 이 말이 마나나(이아 슈글리시아빌리 분)네 가족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 아닐까 싶다. 그냥 가족들이 모여 산다 정도가 아니라, '너'와 '내'가 없이 '가족'이라는 뭉텅이로 서로 얼크러져 살아가고 있다. 남편과 함께 사는 딸은 거실에서 남편과 뒤엉켜 있다. 아들은 그 옆에서 컴퓨터를 한다.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서 머리가 아프다고 하시고, 부엌 살림을 맡은 어머니는 학교 선생으로 일하는 마나나에게 매일매일 저녁거리를 주문한다. 출근하는 엄마는 옷을 남편과 함께 잠든 딸의 방 장롱 속에서 찾는 바람에 딸의 아침잠을 설치게 만든다. 분가한 남동생과 남편은 그녀의 생일이라며 자신들의 친구를 불러들여 시끌벅적 잔치를 벌인다. 

그런데 소소한 일상의 잡음들이 이어지는 이 생활 속에서 마나나는 겉돈다. 표정이 한결같이 어둡다. 그 어떤 맛난 음식도, 생일에 초대된 이들의 칭송도, 관심 좀 가져달라는 남편의 요구도 다 번거롭고 귀찮다는 태도로 일관한다. 

영화 초반 등장한 장면, 거실장을 연 남편, 그 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물건들이 와르르 쏟아진다. 그중에는 자그마한 '기타'도 있었다. 남편은 그 '기타'를 아들의 것이라며 가르쳐줘도 소용없다고 불평을 늘어놓는다. 그런 모습을 아무 말도 없이 지그시 바라보는 마나나, 그쳐 스쳐지나가는 이 장면은 사실 이 부부의 현실을 가장 절묘하게 포착한 순간이다. 
 

마나나의 가출

▲ 마나나의 가출 ⓒ 넷플릭스

 
마나나의 조용한 천국

가족들의 열화와 같은 반대를 무릅쓰고 '가출'에 성공한 마나나, 아직 채 정리도 되지 않은 집에서 그녀는 기타를 친다. 혼자 산다고 대단한 걸 하는 건 아니다. 음식도 해먹고, 조용히 테라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그리고 기타도 치고. 하지만 영화 초반 '얼크러진 가족' 속에서 우울하기만 하던 마나나에게 주어진 이 시간은 말 그대로 '조용한 천국'이다. 

또 하나의 기타 장면이 있다. 홀로 살던 그녀가 오랜만에 간 동창회, 그곳에서 예전 친구들은 한목소리로 마나나의 노래를 청한다. 독립을 고백했는데 뜻밖에도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어 충격을 받은 상태인 마나나, 하지만 친구들은 완강했다. 마지못해 기타를 들고 노래를 시작한 마나나, 삶에 지쳤던 주부, 가족들에게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딸이자, 아내였던 그런 그녀가 아름다운 그 시절의 '카수'가 된다. 이아 슈글리시아빌리가 연기한 마나나가 순간 한 송이 목련처럼 만개한다. 

하지만 그녀가 조용히 만개하는 일은 쉽지 않다. 마나나가 '가출'을 하겠다는데 사돈의 팔촌까지 나서서 다 말릴 판이다. 그런데 그 말리는 이유에 주목해야 한다. 제일 열화와 같이 반대를 하는 남동생이 말한다. 마나나가 가출을 하면 도대체 남들한테 뭐가 되냐고. 남편으로부터, 어머니, 아버지, 동생, 심지어 친척들까지 나서서 마나나가 집을 나가서는 안된다고 하는데 그 누구도 마나나가 가출하는 이유를 묻지 않는다. 이른바 '남사스럽다'가 한결같은 반응이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아이들이 엄마의 손을 들어주었다는 것이다. 

영화의 원제는 < My happy family >이다. 즉 'Happy family'가 되기 위해서는 마나나가 자신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 가족들의 중론이다. 더구나 모계 중심의 가족이라면 나무 둥치가 툭 잘려 나가는 셈이다. 그러니 가족들은 청천벽력이다. 심지어 마나나가 가출을 해도 남편은 그 집에,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우리로 치면, 1960년대 대가족의 중추 격인 엄마가 집을 나가 혼자 살겠다고 하는 정도랄까. 이젠 '졸혼'이라는 미봉책도 마련하는 시절이지만, 과연 그 시절이라면 어땠을까? 

하지만 과연 우리는 달라졌을까?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결혼을 해도 이른바 '처세권'이 '개이득'이라는 시절, 어쩌면 우리는 또 다른 21세기적 '모계 사회'를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싶다. 

딸의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는 장면을 목격한 마나나는 넌즈시 딸에게 너무 남자에게만 의지하지 말고 자기 계발에 힘쓰라고 하지만, 딸은 정작 임신이 되지 않는 사실에만 매달려 엄마의 말을 섭섭하게 듣는다. 여전히 때되면 결혼하고, 처세권에서 아이 낳고 키우는 것을 삶의 관례라 하는 사고방식이 여전한 '한국식 가족주의'에서  마나나네 Happy family를 남의 나라 일로 치부할 수 있을까? 

마나나가 제 자리에 있어야 Happy family가 된다는 가족을 뒤로 하고 마나나는 '가출'을 선언한다. 가족 속의 엄마이자, 딸이자, 아내였던 자리 대신, 그저 마나나라는 사람으로 홀가분하게 떨어져 나온다. 가족이라는 집단에서 '나'라는 개인의 존재를 찾아나서는 길이다. 자신의 시간과 자신의 공간을 통해 비로소 여유를 가진 마나나, 이제는 가족들 속에서 웃음을 되찾는다. 상처를 입은 딸을 온전히 품에 안을 수 있고, 남편과 대화를 할 수도 있게 되었다. '나'이기에 'Happy한  family'도 가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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