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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소식“심각한 종교 문제를 재미있게 건드린 게 대박” (시사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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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숲속의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신고 회원메모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movieli.st 작성일21.12.05 17:52 3,739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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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각한 종교 문제를 재미있게 건드린 게 대박”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12.05 16:00
  •  호수 1677

 

 
《지옥》이 2위로 내려앉았다 1위 복귀한 힘의 원천
한류, 《오징어 게임》 이어 전 세계에서 중요 키워드로 부각
 

연상호 감독의 드라마 《지옥》이 세계적인 화제다. 공개된 지 하루 만에 넷플릭스 세계 순위 1위에 올랐다가 하루 만에 2위로 내려앉았지만, 다시 1위로 치고 올라갔다. 3일 만에 총 4348만 시청시간으로 비영어권 TV부문 주간 1위에 올랐다. 비영어권 2위는 3864만 시간을 기록한 콜롬비아 드라마 《더 퀸 오브 플로》였다. 영어권 주간 1위인 《아케인》은 3842만 시간이어서 《지옥》에 훨씬 못 미친다. 즉 《지옥》이 공개 직후 비영어, 영어권 통합 전 세계 주간 1위에 올랐다고 할 수 있다. 미국 CNN은 “올해 한국 드라마가 끝내준다(South Korean dramas are killing it this year)”며 《지옥》이 “시청자를 사로잡는 새로운 《오징어 게임》이다”고 보도했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넷플릭스 제공

한국 작품에 대한 믿음과 기대감 커져 

이런 인기에 연상호 감독 스스로가 가장 놀라고 있다. 그는 “자고 일어났더니 1위라고 해서 어리둥절했다”며 “대중을 만족시킬 수 있을 거란 생각은 안 했다. 이런 장르를 즐기는 분들이 좋아해 주실 거라는 생각으로 만들었는데 많은 분이 봐주셔서 신기하다”고 말했다. 처음 기획 단계에서도 넷플릭스 측에 “보편적 관객이 만족할 작품이 아니고 마니아 취향”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렇게 소수의 지지를 기대하면서 만들었는데 세계적 대박이 터졌다. 

이 사태는 세계시장에서 한국 작품이 어느 정도로 주목받고 있는가를 극명히 보여준다. 《지옥》이 공개 후 단 하루 만에 세계 1위에 올랐는데, 이때까진 아직 사람들에게 작품에 대한 정보가 없었다. 모르는 상태에서 기대감으로 작품을 선택한 셈인데 바로 여기에 한국 작품에 대한 신뢰가 작용했다. 

《기생충》 《킹덤》 《스위트홈》 등을 통해 점점 신뢰가 커져 갔고 최근 《오징어 게임》이 결정타가 됐다. 한국 작품이 새로운 트렌드의 중심으로 인식됐다. 거기에 연상호 감독의 전작인 영화 《부산행》의 인지도도 작용했다. 《부산행》은 《킹덤》과 더불어 한국형 좀비물의 명성을 드높인 작품이다. 그런 영화의 감독이 만든 한국 드라마 기대작이 나온다고 하자 관심이 폭발한 것으로 보인다. 

이를 두고 연 감독도 “그간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세계시장에서 쌓아온 신뢰가 폭발한 결과물”이라면서 “저는 결괴(決壞·방죽이나 둑이 물에 밀려 터져 무너지는 것)라는 단어를 좋아한다. 10여 년 전부터 한국 콘텐츠가 세계시장이라는 벽에 균열을 냈고, 이 균열들이 모여 둑이 무너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지옥》의 세계적 흥행 바탕에 지금까지 쌓아올린 한류의 성과들이 있다는 것이다. 여러 성공작을 배출하면서 한국 작품이 이제 믿고 보는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는 것을 《지옥》이 공개 직후 1위를 찍은 현상이 보여줬다. 

《오징어 게임》 공개 후 미국 NBC는 “지난해 《기생충》으로 한국 문화의 영향력이 정점을 찍는 듯했으나 올해 《오징어 게임》으로 더 위상이 올라갔다. 한국 문화 콘텐츠의 영향력이 얼마나 커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면서 “K팝 가수, 한국 배우, 한국 영화 제작자, 한국 운동선수 등 한국 인재에 대한 수요가 너무 많기 때문에 미국의 모든 회사가 그들을 불러모으는 방법을 찾으려 혈안이 되고 있다. 한국 연예산업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고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보도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지옥》이 공개되자마자 터진 것인데, 이번 《지옥》으로 인해 한국 작품에 대한 신뢰가 더욱 커졌기 때문에 한류는 앞으로도 중요한 키워드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류로 인해 한국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얼마 전 있었던 옥스퍼드 영어사전 한국어 단어 등재다. 옥스퍼드 영어사전 측이 한류의 영향력 때문에 한국어 단어 등재를 결정했고, 그후 《오징어 게임》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한국어 단어 등재가 다시금 화제가 된 사건이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넷플릭스 제공

옥스퍼드 영어사전 한국어 단어 등재, 왜? 

당시 한국어 단어 26개를 동시에 등재하면서 옥스퍼드 측은 “대박! 옥스퍼드 영어사전이 K-업데이트를 했다(Daebak! The OED gets K-update)”고 밝혔다. 대박이라는 우리 단어를 그대로 썼다(대박 역시 사전에 등재됐다). 이 밖에도 한류를 비롯해 K드라마, 트로트, 만화, 먹방, 반찬, 잡채, 김밥, 동치미, 치맥 등도 등재됐다. 치맥의 존재가 이번 등재에 한류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다는 걸 말해 준다. 옥스퍼드 측은 치맥에 대해 “K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를 통해 한국 밖에서 대중화됐다”고 설명했다. 

누나·오빠·언니도 등재됐는데, 한류 팬들이 이런 단어를 많이 쓰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류 팬들이 별로 쓰지 않는 형은 이번 등재에서 빠졌다. 옥스퍼드 측은 언니에 대해 “한류 팬들이 그들이 좋아하는 한국 배우나 가수를 부를 때 사용한다”고 해설했다. 

이번 한국어 등재에 대해 옥스퍼드 측은 “한류가 전 세계적 현상이 된 것을 반영했다”면서 “한국 스타일은 이제 쿨함의 전형으로 여겨지고 있다”고 했다. 이것이 《오징어 게임》 이후 새삼 화제가 되면서 BBC는 “《오징어 게임》을 보거나 BTS의 히트곡을 들으며 아마도 당신은 삶 속에서 한국적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면서 “한국의 영향력이 옥스퍼드 영어사전에까지 이르렀다”고 짚었다. 

당시 CNN도 “한류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을 휩쓸었다”면서 “지난 20년 동안 한국은 K팝부터 넷플릭스가 ‘최대의 쇼’라고 극찬한 《오징어 게임》에 이르기까지 수백만 명의 팬이 탐내는 오락거리를 쏟아냈다. 아시아와 현재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오락 유행을 표현할 때 ‘한류(hallyu)'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제 이 단어가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추가됐다”고 보도했다. 

한국 드라마, 영화와 더불어 싸이, 빅뱅,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이 쌓아온 한류가 이런 현상까지 만들어냈고, 최근에 방탄소년단의 아메리칸 뮤직어워즈 대상 수상과 《지옥》의 세계 1위로 터졌다. 

《지옥》 자체의 힘도 이번 신드롬에 큰 몫을 했다. 공개 2일 차에 2위로 내려앉았다가 다시 1위로 복귀한 건 작품 자체의 힘이라고 할 수 있다. 본격적으로 입소문이 퍼진 것이다. 《지옥》은 기본적으로 잘 만든 드라마다. 《오징어 게임》도 그렇고, 지루할 틈이 별로 없다. 중간중간 컴퓨터 그래픽 액션도 등장하기 때문에 상업적으로 기본 이상은 한다. 

다만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어둡고, 관객이 일관되게 감정이입할 주인공이 없다는 점은 흥행에 불리한 대목이다. 대단히 쉬운 게임들이 등장하고, 관리자와 게임 참여자들이 옷 색깔로 확연히 구분될 만큼 단순한 구도였던 《오징어 게임》에 비해 《지옥》의 설정은 복잡하다. 중반엔 심지어 종교단체 지도자들이 원죄를 인정할 것인가를 놓고 토론을 벌이기까지 할 정도다. 이런 부분 때문에 연상호 감독도 이 작품을 마니아용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넷플릭스 제공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한 장면ⓒ넷플릭스 제공

“10년 뒤에도 회자될 작품” “미친 듯이 좋은 작품”  

하지만 이 작품의 내용이 인류 사회의 보편적인 문제, 특히 해외에서 심각한 이슈를 건드렸기 때문에 반응이 터진 것으로 보인다. 《오징어 게임》 때와 마찬가지로 《지옥》도 공개 직후 국내 반응이 그렇게 좋지 않았다. 말이 안 되는 부분이 있고, 그래픽 품질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앞에서 소개한 것처럼 CNN은 “끝내준다”고 했다. 영국 가디언은 “《오징어 게임》보다 더 나은 수작”이라고 했다. 

《지옥》은 종교를 다룬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서 종교는 그리 중대한 이슈가 아니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신령, 미륵, 부처, 관세음보살, 옥황상제, 용왕, 삼신, 도깨비 등을 믿으며 살아왔는데 이런 믿음 때문에 특별히 변란 사태 같은 것이 생기지 않았다. 반면에 서구권에선 종교전쟁, 마녀사냥처럼 종교가 피의 역사로 점철됐다. 종교전쟁은 기독교 내부에서도 있었고, 기독교와 이슬람교 사이에서도 있었다. 이슬람교 내부도 종파 대립이 첨예하다. 인도에선 힌두교와 이슬람교가 대립했다. 유럽에선 신의 이름으로 감자가 악마의 식물로 규정되기도 하고, 지동설을 주장한 학자도 신의 이름으로 화형에 처해졌다. 이렇기 때문에 《지옥》의 종교 이야기에 해외에서 더 뜨거운 반응이 터진 것이다. 

우리 시청자들은 드라마 속에서 광신자들의 비이성적인 행동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는데, 서구권 종교의 역사에선 그런 말이 안 되는 일이 무수히 일어났다. 가디언이 《지옥》을 두고 “10년 뒤에도 여전히 회자될 작품” “미친 듯이 좋은 작품이다”고까지 이야기한 것도, 서구문화권에서 크게 공명할 만한 문제의식을 이 작품이 구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종교적 믿음은 인간의 본성에서 기인한 만큼 보편적인 것이어서, 우리 문화권에서도 공감할 만한 부분이 있다. 이렇게 컴퓨터그래픽 액션을 활용한 오락적 영상으로 깊은 주제의식을 표현해 많은 이에게 공감과 충격을 준 것이 신드롬의 요인이다. 

바로 그런 점이 한국 작품의 세계적 성공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할리우드적인 문법의 재미있는 영상을 만든다. 그런데 그 속에 사회적 문제의식을 종종 담는다. 권력의 부조리, 자본주의 정글의 처절함과 같은 것들이 바탕에 깔리는데 그렇다고 상업성을 잃지는 않는다. 《지옥》은 믿음의 문제를 다뤄 조금 더 무거워지긴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게 보는 데 크게 무리가 없다. 이렇게 절묘하게 두 마리 토끼를 다 잡다 보니 흥행 성공과 비평적 찬사가 동시에 나타난다. 안 그래도 한국 작품에 대해 그런 인식이 있었는데 이번에 《지옥》으로 그것이 더욱 강화됐다. 한류의 위상이 더욱 공고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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