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더 하더 데이 폴 ‘넷플릭스 블랙 웨스턴 무비’
2021.11.03 09:07
한 때 할리우드에서는 서부극이 쏟아져 나왔었다. 존 웨인, 게리 쿠퍼, 알란 랏드 같은 기라성 같은 배우들이 카우보이, 보안관, 건맨으로 분해 정의의 총잡이로 영화팬을 열광시켰다. 그러다가, 서부극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서부영화는 마치 미국역사책에서나 찾아보는 아이템으로 변해버렸다. 그런 서부극의 진화과정을 살펴보면 ‘스파게티 웨스턴’으로 불리던 킬링타임용 영화들이 쏟아질 때도 있었고, 수정주의 서부극이란 것도 있었고, 흑인의 분노를 대변하던 익스플로이테이션의 한 하위장르로 ‘Blaxploitation’도 있었다. 2021년에 넷플릭스에서 뜬금없이 내놓은 <더 하더 데이 폴>(원제:The Harder The Falls)이 바로 그런 장르에 속할 듯하다. 시대상을 반영하듯, 아니면 넷플릭스가 그런 시대의 흐름을 적극 활용한 지극히 정치적(?)인 서부극이다. 전부 흑인 총잡이이다!
● 나쁜 놈, 더 나쁜 놈, 아주아주 나쁜 놈
영화는 미국 서부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흑인이 해방되고, 미 대륙의 서쪽으로 말 달리며 개척과 성공의 신화를 그려나갈 때이다. 드넓은 평원의 한 오두막집에 한 가족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그때 악당 총잡이가 들이닥치더니 남자와 여자를 잔인하게 죽인다. 그리고, 겁에 질린 남자아이의 얼굴에 칼집을 낸다. 그리고 세월이 지나, 이마에 십자가 모양의 흉터가 남아있는 무법자 냇 러브(조너선 메이저스)의 복수극이 펼쳐진다.
냇 러브가 찾고 있는 악당은 루퍼스 벅(이드리스 엘바)이다. 그가 무기징역으로 감옥에 있다가 무슨 일인지 최근 출소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왕년의 패거리 - 메리(재지 비츠), 빌 피켓(에디 가테지), 짐 벡워스(RJ 사일러)를 불러 모아 그를 쫓는다. 루퍼스 벅 일당도 만만치 않다. 트루디 스미스(레지나 킹), 체로키 빌(러키스 스탠필드) 등이다. 루퍼스는 마을의 보안관을 쫓아내고 이곳에서 자신의 왕국, 흑인의 세상을 세우려 한다. 마치 오케이 목장이 되어 버린 것 같다.
할리우드가 쏟아낸 서부극 목록은 전화번호부만큼 두껍지만 작품 속 총잡이들은 거의 대부분은 앵글로색슨족, ‘백인’이다. 흑인은 인디언보다 적게 등장한다. 미국 역사가들은 그 시대 카우보이의 4분의 1이상(어떤 통계에서는 1/3)이 흑인이라고 추정한다. 흑인 총잡이가 가끔 섞여있지만 흑인이 오롯이 주인공인 것은 손에 꼽을 만하다.(겨우 떠오른 게 ‘파시’(Posse)정도?) 그러니 이번 넷플릭스 ‘더 하더 데이 폴’은 특별한 서부극인 셈.
영화가 시작될 때 이런 말이 나온다. “이야기는 지어낸 것이지만, 그곳에 그 사람들이 있었다.”고. 감독은 캐릭터 이름을 실존했던 흑인 총잡이의 이름을 따온다. 그렇다고 그들의 행적을 쫓아가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 시절 그런 흑인 총잡이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시키려는 모양이다. 주인공 ‘넷 러브’라는 인물도 그러하다. 1854년 노예의 아들로 태어난 넷 러브는 사람은 영화 속 인물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았다. ‘루퍼스 벅’ 갱을 비롯하여 나머지 등장인물들도 왕년의 총잡이, 서부시대의 주변인물에서 따왔다. 특히 루퍼스에게 마을보안관 자리를 빼앗기는 보안관 배스 리브스는 미국 역사상 첫 번째 흑인 보안관(deputy U.S. marshal)의 이름이다.
얼굴에 난 흉터, 가족에 대한 복수, 총싸움 대결, 그것도 속사실력, 은폐물에 뒤에서 총 쏘기, 말 타며 총쏘기, 열차강도, 은행털기 등 정통 서부극 요소가 다 포함되어 있고, 그동안 그늘에 가려졌던 흑인들이 당당히 앞으로 나와 총질을 해대는 영화가 바로 넷플릭스 ‘더 하더 데이 폴’이다. 시대의 흐름에 맞게, 흑인의 유산에 어울리게 비트 강한, 힙합풍 음악이 끝없이 배경을 장식한다. 세르지오 레오네, 존 스터지스, 그리고 타란티노 풍의 서부극을 기대한다면 나름 재밌게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하더 데이 폴>(원제:Harder The Falls)는 지난 달 20일 일부 CGV극장에서 선공개되고, 오늘(3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다. 탕탕탕~
글 KBS미디어 박재환 kino@kbs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