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힌 전투, 그곳에서 마주한 세 젊은이의 운명
▲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포가튼 배틀> 포스터. ⓒ 넷플릭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흐르는 1944년, 연합군은 6월 6일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기점으로 유럽 내륙를 수복하기 시작한다. 안트베르펜까지 수복한 상황, 하지만 보급로 확보가 시급했던 바 항구를 확보해야 했고 네덜란드 제일란트 플리싱언으로 향한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연합군에 의해 곧 해방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고 있었다. 독일군과 빠르게 손절하는 모양새였으니 말이다.
그런 와중에 레지스탕스 소년 디르크는 독일군을 향해 돌을 던져 큰 사고를 유발시키곤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독일군에 협력하고 있던 아버지와 실상을 잘 모르는 누나 퇸은 사태를 수습하려 동분서주한다. 하지만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 한편, 네덜란드인이지만 나름의 신념으로 독일군이 되어 지역사령관의 비서로 일하게 된 판스타베런은 점차 흔들린다. 자신의 신념이 올바르지 않은 것 같다.
아버지가 처칠 수상과 친할 정도로 영국에서 높은 신분인 청년 윌은 철 없는 영웅심리로 전쟁에 참전한다. 글라이더 조종사로 큰 위험은 없을 것 같았지만, 독일군에 공격을 받고 어딘지 모를 곳에 불시착한다. 동료들과 함께 연합군에 합류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난다. 전쟁의 한가운데 떨어진 세 젊은이, 운명은 그들을 어디로 데려갈 것인지?
짜임새 있고 몰입력 있게
전쟁 영화는 여전히 해마다 끊이지 않고 우리를 찾아온다. 족히 수십 년 전에 이미 영화사에 길이 남을 대작, 명작이 나왔기로서니 더 이상의 전쟁 영화가 필요 있나 싶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만들어지는 건, 전쟁 양상에서 펼쳐진 수많은 전투 그리고 전쟁에 내던져진 개인들의 이야기가 무한대에 가깝게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리라. 앞으로도 전쟁 영화는 계속 우리를 찾아올 게 분명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더 포가튼 배틀>(원제, 'de slag on de schelde'(스헬더강 전투))은 제2차 세계대전의 수많은 잊혀진 전투 중 하나인 '스헬더강 전투'를 주요 소재로 다룬다.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시피 한 전투인데, 연합군 보급로를 확보하기 위한 전투로서 아주 중요하기도 하거니와 이 영화를 만든 네덜란드로서는 아주 중요하고도 기념할 만한 전투라고 할 수 있을 테다.
위에서 언급한 세 젊은이의 행보는 모두 스헬더강 전투로 귀결된다. 각자의 사연을 품고 스헬더강 전투로 모이는데, 상당히 짜임새 있고 몰입력 있게 보여 준다. 영화가 스헬더강 전투를 액션 블록버스터의 보여주기 식이 아닌 서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필연의 일환으로 보여 줬다. 하여, 전쟁 장르가 아닌 드라마 장르라고 볼 요량도 충분해 보인다.
새롭고 색다른 시선으로
영화는 세 젊은이를 '따로 또 같이' 보여 주지만 마지막에서 조우할 뿐 내내 서로 만나지 않기에 옴니버스에 가까운 면모를 보인다. 각기 전혀 다른 캐릭터와 사연으로 타의든 자의든 전쟁의 한가운데로 내던져지게 되는데, 바로 그 부분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이 영화를 이끌고 가는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주인공 격이라 할 만한 미국군은 철저하게 배제된 채, 영국군과 네덜란드 레지스탕스와 네덜란드인 독일군의 시점이 영화를 장악한다.
일찍이 본 적이 없는 시점이다. 예전엔 다분히 미국군의 시점이었고, 비교적 최근엔 독일군의 시점도 간간이 봤으며, 근래엔 연합군 혹은 주축군의 어느 군의 시점도 봤다. 그런데 그런 시점들이 섞인 건 본 기억이 없다. 봤다고 해도 큰 감흥이 없어 흐려졌을 테다. 반면, 이 영화 <더 포가튼 배틀>은 아닐 것 같다. 만듦새도 좋고 서사도 촘촘하며 시점도 새로워 꽤나 큰 감흥을 받았다.
전쟁 영화를 대하는 시점, 전쟁 영화가 전쟁을 대하는 시점이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전쟁의 참상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심각하고 격하게 겪은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전쟁 영화가 거의 출현하지 않는 게 안타깝기도 하다. <고지전>이라는 명작 이후 <서부전선> <인천상륙작전> <장사리> 등으로 꾸준히 우리를 찾아왔지만 가히 처참한 꼴을 보이지 않았는가. <더 포가튼 배틀>이 공개 이후 한국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바, 앞으로도 6.25 전쟁 등을 소재로 한 영화를 만들 여력은 충분해 보인다.
개인적이고 미시적으로
전쟁 영화의 양상이 끊임없이 바뀐다. 전쟁 선전, 반전, 대형 블록버스터를 지나 전쟁 참상, 다양한 양상 그리고 개인에 이르렀다. 전쟁에서의 개인을 가장 잘 표현해 낸 작품이 작년 초에 개봉한 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더 포가튼 배틀>도 충분히 비견할 수 있을 만하다. 더군다나 <1917>은 제1차 세계대전이고 <더 포가튼 배틀>은 제2차 세계대전이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 일반 대중이 세상을 보는 눈이 '거시적'에서 '미시적'으로 바뀌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수요가 있으니 공급도 있는 법, 대중의 시각이 바뀌니 콘텐츠의 시각도 바뀌는 게 아닐까. 개인이 먼저 서고 나서 공동체, 조직, 나라, 사회가 서는 게 아니겠는가. 하물며, 전쟁이라는 거대하고도 거대한 개념에서 일개 개인의 이야기를 소구점 있고 공감 가게 끄집어 내는 건 어려운 일이기도 하거니와 한편으론 사람들의 시각이 바뀌는 양상을 최전선에서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보여 주려는 행위일 테다.
그럼에도, 온갖 의미 부여를 한다고 해도 재밌지 않으면 말짱 꽝일 것이다. 이 영화 <더 포가튼 배틀>은 훌륭한 재미를 선보인다. 전쟁 영화로서의 재미 말이다. 타 전쟁 영화들에 비해선 턱없이 적은 돈이지만 네덜란드 영화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돈을 들여 만든 영화로, 소규모일지언정 얼토당토와는 거리가 멀고도 먼 퀄리티를 자랑한다. 연말로 갈수록 영화 퀄리티를 기하급수적으로 끌어 올리는 넷플릭스의 연말 특집 1탄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