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할수록 가난해졌다” 28세 청소부 싱글맘의 분투기 [왓칭]
‘오징어게임’ 이어 세계 2위
책 원작 드라마 ‘조용한 희망’
남의 집 변기를 닦는다는 건 그의 밑바닥을 보는 일이다. 배출자 본인도 들여다보지 않는 한 인간의 배변 흔적을 가장 가까이에서 마주하는 이다. 누렇고 검은 자국이나 때로는 토악질한 흔적, 출처를 알 수 없는 각종 터럭과 콧물 범벅인 휴지를 치운다. 내 가족의 그것도 유쾌하지 않은데 남의 흔적을 매일 마주하는 이들의 고충은 말할 것도 없다.
드라마 ‘조용한 희망’은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스물 여덟살부터 6년간 남의 집 변기를 닦으며 제 힘으로 살아온 한 인간의 생존 기록이다. 그는 한 아이의 엄마였다. 우리 집 변기 외엔 다른 어떤 사람의 변기도 청소할 필요가 없는 삶을 위한 투쟁, 무엇보다도 딸에게 안전하고 정상적인 일상을 안겨주기 위한 분투기를 그렸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로 꼽힌 스테퍼니 랜드의 책 ‘조용한 희망 : 진짜 이름을 찾기 위한 찬란한 생존의 기록’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됐다. 미국에선 ‘버락 오바마 추천 도서’로 출간 직후부터 화제를 모았던 책이다. 드라마는 전 세계 넷플릭스 순위를 집계하는 플릭스패트롤(flixpatrol) 글로벌 순위에서 2주 가까이 2위를 유지하며 1위 ‘오징어게임’을 추격하고 있다.
‘조용한 희망’은 어린 딸을 데리고 맨몸으로 학대환경에서 탈출한 한 여성이 청소부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던 자신의 경험을 상세히 담은 회고록이다. 한 대학 문예창작학과에 합격했지만 짧은 연애 후 갑작스런 임신으로 진학을 포기했던 스테퍼니 랜드. 특별한 기술도, 경력도 없는 그를 고용해줄 직장은 청소 업체가 유일했다. 그래서 드라마의 원제는 ‘MAID(메이드·가정부)’다.
책에서 영감을 얻어 여러 에피소드를 가져오면서 드라마에 맞게 많은 설정을 각색했다. ‘할리퀸’으로 알려진 배우 마고 로비가 제작에 참여했는데, 가정 폭력·빈곤·양육권 분쟁 등 궁지에 몰린 여성의 삶을 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책에선 청소일의 고단함과 싱글맘의 고충, 끊어낼 수 없는 지독한 가난을 주로 묘사했다면 드라마는 학대와 폭력의 악순환에 조금 더 집중한다.
싱글맘 알렉스(마거릿 퀄리)는 어느 날 새벽 동거인이 잠든 사이 몰래 딸 메디를 데리고 도망친다. 수중엔 18달러 뿐. 차에 기름을 넣고 나니 12달러가 남았다. 도움받을 가족도, 친구도 없다. 첫날 아이를 꼭 끌어안고 차에서 잠을 잔 그는 다음 날부터 아이를 안전하게 돌볼 집을 찾아 나선다.
집을 얻기 위해선 정기적인 일자리를 증명해야 하고, 정기적으로 일하기 위해선 아이를 잠시나마 기관에 맡겨야 하는데, 어린이집이 필요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직업을 증명해야 했다. 복지제도의 허점이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딸을 재울 곳이 필요했던 그는 다음 날부터 곧바로 일할 수 있는, 남의 집 변기를 닦는 일을 기꺼이 하기로 다짐한다.
그는 책에서 자신의 삶을 묘사하며 “내가 발을 디딘 바닥이 안전하다는 걸 좀처럼 믿지 못해 발끝으로 살금살금 걸어왔다”고 썼다. 가난은 단순히 오늘 하루 딸에게 밥 먹일 돈이 없는 상태가 아니었다. 한 달 뒤, 1년 뒤, 10년 뒤의 삶을 계획하지 못하고 하루하루 생존하는데 급급한 위태로운 상태다.
고객이 당일 청소 약속을 깜빡하거나 차에 사소한 이상이 생겨 멈추는, 남들에겐 “오늘 운이 나빴다”고 넘길 만한 작은 사고들에도 그는 절망했다. 며칠만 일을 쉬어도 노숙자 신세로 전락할 수 있었다. 낭떠러지에서 밧줄 하나로 겨우 버텨내는 그에게 세상은 도움보단 빈곤층을 향한 날카로운 편견과 판단을 쏟아낸다.
드라마는 오히려 현실보다 상황이 낫다. 스테퍼니 랜드는 척추 신경이 손상돼 오른손잡이인데도 오른손으로 스펀지나 손을 잡을 수가 없는 상태였다. 스펀지를 주먹과 벽 사이에 끼운 다음 손가락 관절로 눌러 청소했다. 고양이, 강아지, 곰팡이 등에 대한 각종 알레르기로 청소일을 할 때마다 토하듯 기침했다. 하지만 회사엔 이런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
드라마는 가정 폭력의 굴레를 섬세하게 다루는데 집중한다. 동거인 션은 알렉스나 딸 메디를 때리진 않는다. 다만 자존감을 짓밟는 폭언을 일삼고 알렉스를 향해 그릇 등 물건을 집어던지며 벽을 부순다. 돈을 벌지 못하도록 차를 빼앗고 신체적·경제적 독립을 막았다. 알렉스는 이런 ‘정신적 폭력’을 증명해 양육권을 받아내기 위해 분투한다.
동시에 끊임없이 ‘정상 가정’에 대한 갈망과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린다. 아버지와 엄마, 자식으로 구성된 이상적인 가족의 모습. 아이를 안고 있다가 팔이 아프면 “잠시 들어줄래” 하고 넘길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을 꿈꾼다. 무엇보다도 아이에게 그런 가정을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린다.
수없는 폭언과 통제로 무기력에 빠진 알렉스를 매번 각성하게 하는 건 “내 딸 만큼은 나처럼 살게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었다. 딸 매디가 두려움에 떠는 모습에서 그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폭력으로 고통받던 자신과 어머니의 과거를 발견한다.
어머니 폴라(앤디 맥도웰)는 알렉스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가족이지만, 오랜 시간 이어진 폭력으로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딸에게 도움보단 짐으로 남는다. 스스로 학대 피해자임을 인정하지 못해 최소한의 도움조차 받지 못하는 모습이 가슴 아프다. 폴라 역은 실제 알렉스 역을 맡은 배우의 엄마가 맡아 열연했다.
알렉스는 어떻게든 자신의 대에서 폭력의 굴레를 끊기로 한다. 도무지 혼자 버틸 수 없는 상황에서도, 심지어는 딸을 데리고 노숙을 하는 처지가 되어도 폭력 가해자인 가족들의 도움만큼은 받지 않고 꿋꿋이 버틴다. 고집스럽고 답답하게 존엄성을 지켜낸다.
10회까지 이어지는 드라마는 처음부터 끝까지 주인공의 도전, 싸움, 그리고 실패와 절망의 과정을 반복한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며 이를 악물고 버티는데 손톱만큼도 나아지지 않는 생활이 10회 내내 반복된다.
그러나 그 과정 가운데도 감동과 울림이 있다. 복지 제도엔 허점이 가득했지만, 그 허점을 메운 건 결국 사람들의 대가 없는 관심과 도움이었다. 그를 인간답게 대해주는 몇몇 사람들의 호의 덕에 그는 비로소 탈출구를 얻는다.
남들에게 말할 수 없었던 알렉스의 ‘조용한 희망’은 꿈꾸던 대학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해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빈곤한 삶 가운데도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그 꿈이 그를 구원했다. 우리가 읽는 책 ‘조용한 희망’이 그 결과물이다.
개요 한국 l 드라마 l 2021 l 10부작·회당 52분
등급 15세 이상 관람가
특징 ‘조용한 희망’을 놓지 않은 결과
평점 로튼토마토🍅96%, IMDb⭐8.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