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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소식넷플릭스 '더 스웜'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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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숲속의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신고 회원메모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movieli.st 작성일21.09.11 15:38 4,643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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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을 위해 메뚜기 사육을 시작한 싱글맘은...

 

<53> 넷플릭스 '더 스웜'

 

입력

 

2021.09.11 10:00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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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더 스웜'은 식용 메뚜기 사육을 시작한 싱글맘 비르지니의 이야기다. 넷플릭스 제공

'더 스웜'이란 제목을 들었을 때 떠오른 영화는, 1978년 작 '스웜'이었다. 마이클 케인, 캐서린 로스, 헨리 폰다 등이 출연한 '스웜'은 살인 벌떼의 습격을 다룬 영화다. 벌침에 쏘여 퉁퉁 부어 죽어가는 모습을 상상하면 끔찍하다. 하지만 '더 스웜'은 벌떼가 아니라 메뚜기떼가 등장한다. 펄 벅의 소설 원작 영화 '대지(1937)'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멀리 하늘을 새까맣게 덮으면서 날아오는 무수한 메뚜기떼였다.

메뚜기떼의 습격은 인간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벼와 농작물을 엉망으로 만드는 거대한 자연재해였다. 성경의 출애굽기에는 하느님의 심판으로 나오고, 우리 역사서에도 많이 기술되어 있다. 작년 말에는 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 케냐, 소말리아, 수단 등에서 사막메뚜기떼의 습격으로 식량 부족 사태가 심해지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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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르지니는 남편을 잃고 딸 로라, 아들 가스톤과 함께 메뚜기 농장을 운영한다. IMDb 제공

'더 스웜'은 자연재해를 다룬 영화일까. 프랑스의 시골 마을에 사는 비르지니는 남편이 사고로 죽은 후 딸 로라, 아들 가스톤과 함께 메뚜기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아직은 수익이 나지 않고 있다. 유럽과 미국에서는 메뚜기를 비롯한 곤충이 미래 식량으로 주목을 받았다. 몇 년 전부터 프랑스에서는 곤충 과자와 초콜릿은 물론 곤충 재료를 이용한 레스토랑도 생기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다수는 아니다. 사춘기인 딸은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는다. 메뚜기를 키운다는 것 자체가 놀림의 이유다.

비르지니 농장의 메뚜기는 주로 동물 사료용으로 팔리지만, 번식량이 적어 수익성이 낮다. 이웃인 카림의 도움으로 새로운 판로를 알아보지만 쉽지 않다. 농장은 지지부진하고, 아이들은 말썽을 피우고,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 비르지니는 메뚜기 사육장을 때려 부수다가 사고로 정신을 잃는다. 깨어나 보니 피가 난 상처 부위에 메뚜기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며칠 후, 메뚜기들이 엄청나게 커지고 활발해지면서 개체 수도 많아진다. 피를 마셨기 때문일까? 비르지니가 혈액을 구해 메뚜기들에게 주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변한다. 메뚜기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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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찮게 피를 마신 메뚜기들의 생장이 활발해지는 것을 본 비르지니는 혈액을 구해 메뚜기에게 주기 시작한다. IMDb 제공

이쯤 되면 '미친 과학자(Mad Scientist)'가 나오는 동물 공포영화의 전형적인 전개다. 동물 공포영화는 '죠스'와 '딥 블루 씨' '언더 워터' 등의 상어영화가 대표적이다. '죠스'의 자연 그대로의 상어도 있고, '딥 블루 씨'처럼 유전자 실험을 통해 영리해지거나 거대해진 상어도 있다. 1950년대에는 '그것들(Them·1954)'처럼 실험이나 사고로 거대해진 곤충, 동물이 인간을 공격하는 영화가 유행했다. 거대곤충영화는 함께 유행했던 외계 침공 영화와 마찬가지로 핵전쟁과 종말의 공포를 투영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미친 과학자'는 자신의 욕망을 위해 금지된 실험을 하거나 위험한 영역을 탐구하다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저지른다. 곤충이 거대해지거나 다른 존재가 있는 차원의 문을 열어버린다. 바벨탑의 교훈을 잊어버리고 감히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다. 비르지니도 비슷하다. 하지만 비르지니는 '미친 과학자'들이 흔히 그렇듯 자기도취와 오만함에 빠져 잘못된 길에 들어서는 것이 아니다. 비르지니는 절박하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반드시 메뚜기 농장이 성공해야만 한다. 실패한다면 그들 가족은 당장 극빈자가 될 것이다. 그야말로 생존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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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웜'은 비르지니 가족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집중한다. IMDb 제공

만약 '더 스웜'을 할리우드에서 만들었다면, 메뚜기떼는 더욱 강해지고 폭력적으로 변해 마을을 엉망으로 만들어버리는 스펙터클을 전시했을 것이다. 어쩌면 대도시의 하늘까지 모두 메뚜기떼가 뒤덮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더 스웜'은 프랑스영화다. 메뚜기떼의 강력함을 보여주면서도 오로지 비르지니 가족의 이야기에만 집중한다. 전체보다 개인, 메뚜기떼 농장을 운영하는 비르지니 가족의 삶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를 강렬하게 보여 준다.

농장을 접고 이사 갈 것이라는 비르지니의 말을 믿었던 로라는 화가 나서 메뚜기 사육장의 비닐을 뜯어버린다. 흉포해진 메뚜기들이 하늘로 불길하게 날아오른다. 이제 마을로 향해서 사람들을 습격하겠구나, 생각했다. 최소한 인근 어느 집으로 가서 끔찍한 사건을 만들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래, 지금 보는 것은 할리우드의 동물 공포영화가 아니라 프랑스영화다. '더 스웜'은 거대 곤충의 습격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노력이 실수와 잘못으로 번지고, 욕망으로 그르친 일을 수습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싱글맘의 고군분투를 그린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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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웜'은 거대 곤충의 습격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노력이 실수와 잘못으로 번지고, 욕망으로 그르친 일을 수습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싱글맘의 고군분투를 그린다. IMDb 제공

'더 스웜'을 악평하는 이들은 인간을 공격하는 메뚜기를 기대하며 봤지만 너무나 소소한 스펙터클에 실망한 것이다. 저스트 필리포트 감독의 의도는 전혀 다르다. '더 스웜'은 곤충의 공포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조금씩 선을 넘다가 절망에 빠진 여성의 비극이다. 공포영화의 요소들을 가지고 왔지만 애초에 다른 의도였기에 비난할 이유는 없다. 나도 곤충의 무자비한 살육을 기대하기는 했지만, 보다 보니 비르지니의 허튼 마음에 끌리기 시작했다.

아직 어린 자녀 둘을 키우면서 농장을 운영하기는 힘들다. 염소 농장이 아니라 메뚜기 농장을 택한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하지만 개체 수가 늘지 않는다. 그러다가 돌파구를 발견했을 때, 지금 할 수 있는 최대치의 돈과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여 매진한다. 결국은 파국이 온다는 것을 시청자는 다 알고 있지만, 당장 안에서 미친 듯이 달리는 사람은 제대로 보지 못한다. 내가 비르지니라 해도, 그 상황에서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는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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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웜'은 동물 공포영화가 아니라 절실한 가족 드라마에 가깝다. IMDb 제공

몇 번 선택의 순간이 있다. 사육장을 더 짓기 위해 아들이 아끼는 나무를 베어버리려 할 때, 당장 피를 구하지 못해 다른 생물을 희생시킬 때 등등. 인간이 괴물이 되는 것은 아주 극적이거나 특별한 무엇 때문이 아니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작지만 중요한 선택, 갈림길에서 쉽게 자신의 이익만을 선택하거나 작은 양심을 저버리는 순간들이 쌓이면서 추락해간다. 바로 그 순간에는 모른다. 지금 악을 선택했다 해서, 바로 머리에 뿔이 솟아나거나 양손에 피가 묻는 것은 아니니까. 비르지니도 생존하기 위해, 조금 더 돈을 벌기 위해 이기적인 선택을 거듭했을 뿐이다.

비르지니는 보통의 사람이다. 욕망에 사로잡혀 주변 사람이 희생당했을 때조차, 비르지니에 대한 분노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안타까울 뿐이다. 가족의 생존만을 위해 달리는 비르지니에게 연민이 일어날 뿐 화가 나지는 않는다. 욕망이 점점 커지면서 모든 것이 무너질 때에도 그녀가 태연하다면, 자신을 합리화한다면 달라지겠지만 '더 스웜'은 그렇게 멀리까지 가지 않는다. 오로지 비르지니와 가족의 현재에만 초점을 맞춘다. 그것은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다. '더 스웜'은 공포영화가 아니라 절실한 가족 드라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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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더 스웜'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장르적 소재와 장치가 나온다고 해서 반드시 장르의 공식을 따라갈 필요는 없다. 심지어 공식을 그대로 전개해도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더 스웜'에 처음 기대한 것은 곤충의 인간 습격이었지만,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릇된 선택을 거듭하는 싱글맘에게 몰입하는 것도 아주 흥미로웠다. 비르지니의 가족을 위협하는 것은 사실 메뚜기가 아니라 사회 구조 아니 세계 자체였으니까.

김봉석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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