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사 OTT 자체 역량 키우지만… ‘쩐의 전쟁’서 밀려
SKT·KT, 자체 콘텐츠 위해 대규모 투자하지만
OTT 공룡 넷플릭스·디즈니에 턱없이 부족
넷플릭스 콘텐츠 예산 21조…한국만 5000억
“국내 콘텐츠 투자 지속 가능성도 물음표”
/디즈니플러스
KT, SK브로드밴드, LG유플러스 등 국내 통신 3사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장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KT와 SK브로드밴드는 해외 업체와 자체 제작이라는 투 트랙 전략을 펼치는 반면, LG유플러스는 협업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경쟁 심화에 따라 넷플릭스와 디스니플러스 등 해외 업체와 손을 잡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지만, 해외 업체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자체 콘텐츠의 힘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장기적으로는 자체 역량 강화를 위한 투자가 지속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 시각이다.
◇ ‘외부협업’ 집중하는 LG… KT·SK는 협업·자체제작 ‘투트랙’
8일 통신업계에 따르면 LG유플러스와 KT는 올해 11월 국내 진출을 공식화한 디즈니플러스와 협상을 진행 중이다. 앞서 월트디즈니 컴퍼니는 지난달 3분기 실적 발표 이후 이어진 컨퍼런스콜에서 “디즈니플러스가 올해 11월 한국 등에서 공식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디즈니플러스의 구체적인 국내 진출 시기가 공식적으로 밝혀진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디즈니플러스는 넷플릭스가 국내에 진출했던 것처럼 국내 통신사와 제휴로 출시할 것으로 관측된다. 첫 파트너사로는 LG유플러스가 유력하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LG유플러스 관계자는 “디즈니플러스와 지속해서 협상을 진행 중이다”라고 했다.
LG유플러스가 다른 통신사와 비교해 협상에 속도를 내고 있는 배경으로는 높은 안드로이드 셋톱박스 비중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LG유플러스는 국내 통신사 중 가장 이른 지난 2017년 안드로이드 셋톱박스를 도입했다. 이는 2018년 넷플릭스와의 단독제휴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경쟁사들은 자체 셋톱박스를 활용하다 2018년에서야 안드로이드 셋톱박스를 들여오기 시작했다. 도입 시기와 비례해 도입 비중도 LG유플러스가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KT와 SK텔레콤 등과 달리 LG유플러스가 자체 OTT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도 해외 업체와의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요인으로 분석된다. SK텔레콤은 웨이브, KT는 시즌 등 자체 OTT 육성에 나서고 있지만, LG유플러스는 파트너사와의 협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실제 황현식 LG유플러스 사장도 지난 7월 취임 후 첫 기자간담회에서 “독자 OTT를 겨냥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생각은 아직 없다”라며 “잘하는 영역에서 더 큰 성장 기회를 발굴하겠다”고 밝혔다.
SK텔레콤은 KT, LG유플러스와 달리, 디즈니플러스와 협상을 진행하지 않고 있다. 디즈니플러스 측이 SK텔레콤의 웨이브를 경쟁자로 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때문에 아마존과 협업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상호 11번가 대표는 지난달 구독서비스인 T우주 출시 기자간담회에서 “(아마존과) 커머스 외에 OTT에 대해서도 검토 중이고 얘기는 되고 있다”며 “글로벌 스토어 오픈 시 좀 더 지켜보고 논의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 투자만이 살길인데 지속 여부 ‘물음표’
SK텔레콤과 KT는 해외 OTT에 기대지 않기 위해 대규모 자본을 쏟아부어 자체 콘텐츠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웨이브를 운영하는 콘텐츠웨이브는 오는 2025년까지 약 1조원을 투자한다. KT 역시 연초 지식재산권(IP) 확보와 자체 콘텐츠 제작을 위해 오는 2023년까지 4000억원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양측 모두 매년 1000억~20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한다.
토종 OTT가 대규모 투자 방침을 밝혔지만, 글로벌 OTT 공룡과 비교하면 턱 없이 부족하다. 넷플릭스의 올해 콘텐츠 예산은 약 21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중 한국시장을 겨냥한 콘텐츠 제작에만 5000억원 이상을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디즈니플러스도 2024년까지 약 10조원을 쏟을 계획이다.
국내 OTT 업계 관계자는 “콘텐츠라는 게 단 번에 제작해 내놓을 수 없을 뿐 더러, 제작 후 성공 여부도 불확실하다”라며 “많은 돈을 쓴다고 다 잘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규모의 경제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고 말했다. 그는 “공격적으로 투자 방침을 내세웠지만,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을 지도 불확실하다”고 덧붙였다.
국내 OTT 업계 활성화에 따른 인재 채용 경쟁도 치열하다. OTT 사업자들로서는 단기간 성과를 내기 위해 검증된 인재가 절실하다. 다수의 히트 콘텐츠를 제작한 경험이 있는 인력이 기존 회사에서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불만이 나온다 싶으면 곧바로 경쟁사에서 이직 제의 절차에 착수한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OTT 업계 일각에선 콘텐츠 경쟁력 확보를 위해 인지도 높은 스타 캐스팅 과정도 만만치 않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일단 인지도 높은 스타의 캐스팅이 확정되면, 초기 콘텐츠의 인지도 향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반면 스타가 없는 콘텐츠는 조용히 묻힐 가능성이 크다. 넷플릭스 등이 막대한 자본력을 앞세워 스타들을 유인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