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선
- 승인 2021.09.05 07:00
향긋한 커피 한 잔을 내리고, 빳빳하게 날이 선 책 표지를 열었다. ‘얼마나 재미있으려나’ 기대감을 안고 펼친 첫 장. 사각사각 책장을 넘기는 소리가 켜켜이 쌓일수록 이야기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독서는 취향이다. <아웃도어> 에디터들의 취향도 천차만별. 무료한 시간을 흥미롭게 채우는 에디터들의 각양각색 추천 책 리스트를 소개한다.<편집자주>
독서에 별 관심이 없던 에디터가 책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중학생 때 접한 로맨스 소설 덕분이다. 이토록 흥미롭고 가슴 떨리는 이야기가 있다니. 지금 생각하면 클리셰 범벅이지만 이성에 호기심 넘치던 사춘기 소녀에게 로맨스 소설만큼 독서를 부추기는 장르도 없었다. 밤을 새 가며 로맨스 소설을 탐닉하던 소녀는 어느새 ‘책’ 자체를 사랑하게 됐고,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는 문학소녀가 됐다. 마음의 양식을 위해 국내외 문학전집도 보고, 트렌드를 반영하는 베스트셀러도 꾸준히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디터가 학창시절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사랑한 장르는 추리/스릴러 소설이다. 책을 드는 순간 책장의 마지막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흡입력 있는 이야기들. 잔인하고 무서운 영상은 절대 보지 못하는 겁쟁이 쫄보 에디터지만 활자 속 끔찍함과 잔인함은 흥미진진(?)하게 읽히는 아이러니함. 그간 수백 권의 추리/스릴러 소설을 보았고, 손에 꼽을 책들이 무수히 많지만 에디터의 뇌리 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책 네 권을 엄선했다.
<속삭이는 자>
영국과 미국, 일본, 그리고 북유럽 작가가 쓴 추리/스릴러 소설은 꽤 믿음직스럽다. 장르문학 작품이 워낙 유명한 국가들이니 작가의 스펙트럼도 다양하고 믿고 보는 작가도 상당하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장르문학이라. 에디터가 믿고 보는 책 리뷰 블로거가 추천한 <속삭이는 자>를 그렇게 별 기대 없이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웬걸. 초반부터 흡입력이 어마무시하다. 알고 보니 이탈리아의 유명한 범죄학자의 소설 데뷔작이란다. 작가는 1992년과 1993년에 걸쳐 잔인한 방법으로 여자아이들을 살해한 이탈리아의 연쇄살인범 ‘루이지 키아티’에 대한 논문을 작성하던 중, 관련 사건에서 모티브를 얻어 소설을 써내려갔다. 카리스마 넘치는 여형사 밀라의 고군분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책의 마지막까지 단숨에 달려가게 된다. 도나토 카리시, 검은숲
<돌이킬 수 없는 약속>
목숨을 위협 받는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끔찍하지만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받는다면…. 책은 15년 전 위기를 모면하고자 지키지 않을 약속을 한 남자의 처절한 사투를 그린다.신분을 속이고 평범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이 가족의 생명을 담보 삼아 살해를 지시하는 의문의 인물을 알아내는 과정이 박진감 넘치게 펼쳐진다. 사실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은 신박한 반전이 있는 책은 아니다.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책의 중반쯤 ‘이 사람이 범인은 아닌가’ 의심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은 주인공의 심리묘사, 마치 영화를 보는 듯 빠르게 흐르는 이야기 전개, 감동을 주는 스토리텔링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추리/스릴러 소설로 한국에서도 오랜 시간 베스트셀러에 머문 작품이다. 추리/스릴러 소설 초심자라면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다. 야쿠마루 가구, 북플라자
<검은선>
프랑스를 대표하는 장르문학 작가 장 크리스토프 그랑제가 야심차게 시작한 악의 기원 3부작 중 1부. 에디터가 사회생활을 시작할 무렵 읽었던 다소 오래된(?) 책이지만 잠을 잊을 정도로 몰입했던 에디터의 인생 스릴러 소설이다. 초반부터 에디터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가더니 마지막까지 숨 막히게 몰아붙이는 작가의 스토리텔링 솜씨가 탁월하다. ‘악의 진짜 얼굴’을 찾아 살인자의 머릿속에 직접 들어가기로 한 주인공과 자신의 머릿속으로 주인공을 끌어들인 살인자 사이의 심리게임, 그리고 악마의 심연으로 빠져 들어가는 주인공의 변모를 지켜보는 숨 막히는 체험을 제공하는 소설이다. 장 크르스토프 그랑제, 문학동네
<숲>
에디터가 믿고 보는 미국의 추리/스릴러 소설 작가 할런 코벤의 작품으로 넷플릭스에 폴란드 드라마 <숲The Woods>으로 리메이크 됐다. 할런 코벤은 미국의 3대 미스터리 문학상을 모두 석권한 작가로 <숲> 외에도 수많은 소설이 영화화됐을 만큼 스릴러 거장이다. 할런 코벤의 작품 대다수를 읽어봤지만 에디터가 가장 재밌었던 책은 단연 <숲>이다. 20년 전 여름캠프에 참가했다 사라진 네 아이. 다시 20년이 지난 어느 날, 실종자의 오빠였던 코플랜드는 지방 검사로 활동하며 주변에서 벌어진 의문의 사건에 관한 단서를 찾던 중 여동생을 비롯한 아이들이 실종된 20년 전 사건과 재회하게 된다. 사라진 아이들과 파괴된 가족, 그리고 돌이킬 수 없는 관계들. 20년 전에 은폐되었던 충격적인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는 이야기는 시종일관 흥미진진한 영화를 보는 듯하다. 535쪽의 살벌한 두께지만 이야기 속에 빠져드는 순간 두께 따위는 잊을 만큼 흥미로운 전개가 펼쳐지는 추천작. 할런 코벤, 비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