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계 여성, 美 명문대 학과장 됐지만… 자리일 뿐 힘이 아니다
<52> 넷플릭스 '더 체어'
입력
2021.09.04 09:00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대학에 다닐 때는 국어국문학을 전공했다. 30대가 된 이후로는 이야기할 일이 거의 없긴 하지만, 이따금 전공을 언급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괜히 머쓱해진다. 직업이 작가이기 때문이다. 작가인데 국문학과를 나왔다고 하면 "전공을 살리셨구나!" 같은 말을 듣게 되고 마는 것이다. 아무래도 살린 것처럼 느껴지지 않기 때문에 그럴 때면 대충 대답을 한 뒤 얼른 소재를 바꾼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내가 작가가 되었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인과 관계가 있는 일 같지 않다. 하지만 적어도 문학 작품을 읽고, 문학에 대해 배우고, 듣고, 공부하며 보낸 20대 초반의 몇 년간, 내가 세상을 보는 법은 달라졌다. 이 변화가 내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너무 긴 이야기가 될 테니 줄여서 말해 보자면, 시선의 방향과 위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세상을 보는 시야가 달라진다는 것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 보는 일을 나는 문학을 통해 배웠으며 이 경험이 나를 바꿨다는, 어쩌면 너무 국문학도 같은 이야기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체어'의 배경은 아이비리그의 대학으로 설정된 펨브로크 대학의 영문학과다. 이 미국의 국문학과에서 한국계 미국인 여성이 처음으로 학과장 자리에 오른다.
"웬 아시아 여자가 에밀리 디킨슨을 가르쳐?" 같은 모욕적인 말을 들으면서도 학생들을 가르쳐 온 김지윤(산드라 오)에게 역사적 처음이 될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가 지켜내야 할 영문학과는 "유례없는 난관"에 처해 있다. 학생 수는 날이 갈수록 줄고 있고 학교는 예산을 깎았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학교 측은 지윤에게 동료 노교수들이 퇴직하도록 설득할 것을 요구한다. 사정을 모르는 교수들은 각기 다른 불만과 문제를 학과장이 해결해줄 것을 기대하며 들고 온다. 그 와중에 이웃에 사는 동료 교수인 빌(제이 두플라스)이 강의 중 나치 경례를 하는 사고를 치고 사건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이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까지 놓이게 된다.
여기에 인종이 다른 입양한 어린 딸과의 갈등까지 더해지면 '엎친 데 덮친 격'이라는 식상한 속담이 지윤이 처한 상황에 정확히 걸맞게 된다. 자, 과연 지윤은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지만 '더 체어'는 아시안 여성 학과장이 영문학과의 구원자가 되어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작품의 재미와 의미 역시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는 데서 온다. 빌이라는 무책임한 백인 남성을 지윤의 잠재적 연애 상대가 아닌 사고 중 하나로 보면 '더 체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분명해진다. 소수자인 여성이 좋은 방과 의자를 가지게 되었을 때, 곧 한 집단에서 리더의 위치에 올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결국 이 작품은 어차피 터질 시한폭탄이라면 여자가 들고 있을 때 터지기를 바라는 세계에서, 그걸 알면서도 받아든 한 여성 리더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첫 회에서 지윤은 중년 이상의 백인 남성이 과반이 넘는 영문학과 교수들 앞에서, 파도에 휩쓸려 가는 영문학과를 침몰하게 하려는 시도를 좌시하지 않겠다고 선언한다.
하지만 말을 제대로 맺기도 전에 사건·사고와 요구가 쏟아진다. 지윤에게 주어진 것은 자리일 뿐, 힘이 아니다. 지윤은 '유리절벽'에 서 있다. 기업이나 조직이 위기를 맞이했을 때만 여성에게 기회를 주고, 실패하면 그 책임을 묻는 현상을 유리절벽이라고 할 때, 지윤에게는 이제 떨어질 일만 남은 셈이다.
일단 지윤의 아버지를 제외한 그 어떤 남자 캐릭터도 지윤을 돕지 않으며, 일부는 그가 해결해야 할 사고를 일으키거나 그에게 책임을 돌릴 생각만 하고 있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상황 설정이 중요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여성 동료 교수들이 전적으로 지윤의 편이 되어줄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그럴 수 없기 때문이다.
블랙 리스트에 오른 노년의 교수로 통보도 없이 사무실이 지하실로 옮겨진 조앤(홀란드 테일러)에게도, 종신 심사를 앞둔 젊고 인기 있는 흑인 여성 교수인 야즈(나나 멘사)에게도 각자의 사정이 있다. 이들은 자신의 욕망과 처한 상황에 따라 지윤에게 다른 요구를 하며 지윤에게 또 다른 선택의 문제를 던져 놓는다. 딸인 주주(애벌리 카가닐라)도 원하는 대로만 행동하면서 끊임없이 엄마의 인내심을 시험한다. 심지어 사랑하는 학생들에게 유색 인종 여성 학과장임에도 불구하고 소수자 학생을 입막음한 일종의 변절자로 오해받는다.
리더가 되었지만 누구의 도움도 지원도 받지 못하고, 쏟아지는 공격에는 제대로 반격 한 번 못하고 궁지로 몰리는 소수자 여성이 있다. '더 체어'는 그를 위한 단순하고 이상적인 여성 연대를 준비하는 대신, 복잡한 인간인 여성 인물들로 그를 둘러싼다. 소수자 여성은 능력과 진심을 의심받고, 쉽게 오해당한다.
'더 체어'는 이런 지점에서 현실적이다. '나쁜 페미니스트'의 저자인 록산 게이가 '더 체어'를 보고 "다큐멘터리를 봤다"는 소감을 올린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지윤이 얼마나 능력 있고 인기 있는 교수인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소수자가, 여성이 리더가 되는 것 자체는 분명한 성취지만 이후에는 다른 문제가 기다린다. '더 체어'는 그다음에서 시작한다.
바로 이 리더의 역할을 산드라 오라는 배우가 연기했기 때문에 '더 체어'에는 대본에서는 담아내지 못한 깊이가 생겨났다. 한국계 캐나다인으로 할리우드에서 살아남은 산드라 오는, 개인이기에 앞서 언제나 아시안 여성 배우를, 할리우드의 한국계 인물을 대표해야 했다. 산드라 오라는 배우의 역사는 지윤의 서사와 떨어질 수 없고, 그가 걸어온 길을 생각하면 지윤이라는 캐릭터가 처한 상황에 저절로 이입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캠퍼스 소동극과 로맨틱 코미디와 가족 시트콤을 분주히 오가며 널뛰는 드라마 속에서 무게중심을 잡는 산드라 오의 연기는, 그가 아니었다면 이 작품이 만들어질 수도 없었다는 사실의 증명과도 같다.
산드라 오 덕분에 한국 시청자들은 미국의 한국 교포 문화를 엿보며 한국어 대사를 자연스럽게 듣는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 역시 '더 체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재미다. 5회에 등장하는 돌잔치 장면이 하이라이트다. 친척들이 모여 서로를 끊임없이 평가하고 참견하며 태어난 아기의 인생에까지 말을 얹는 이 우스꽝스러운 잔치를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운인지는 모르겠지만, 알기 때문에 더 재미있는 것만은 확실하다.
마지막으로 다시 문학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작품 속 좋은 장면의 대부분은 인물들이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요실금 패드를 착용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강단을 떠나고 싶지 않은 고집불통의 백인 남자 노교수도, 그에게 종신 교수 임용 심사를 받아야 하는 젊은 흑인 여성 교수도, 문학을 사랑한다. 정확히 어떤 문학인지, 왜인지는 다시 물어야겠지만, 아무튼 사랑하는 마음만은 진짜다. '더 체어'는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문학을 가르치는 이유에 대해 빌의 입을 빌어서 이렇게 전한다. "어떤 시를 너무 사랑하면 우리는 그걸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그것을 통해 변화해요."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보면, 내가 쓴 문학을 배운다는 것의 의미와 빌의 연설이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과연 그게 오직 문학만이 하는 일일까? 작품 속에서 문학과는 상관없이 요즘 학생들이 좋아하는 무언가처럼 언급되는 '콘텐츠'는 이런 일을 할 수 없을까? "타인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다른 자리에 서 보려는 태도"는 '더 체어'를 통해서도 배울 수 있다. 지윤을 통해 유리절벽에 선 여성 리더를 볼 수 있고, 조앤의 상황에서 경력과 연륜으로도 조직 내 성차별을 뛰어넘기 어려운 현실을 배울 수 있지 않은가. 다른 세상을 만나고 새로운 시선을 갖게 하고, 이를 통해 변화하게 하는 건 문학만이 아니라, 좋은 이야기, 콘텐츠, 예술이 하는 일이다. 그걸 문학만을 절절히 사랑하는 이 작품 속 교수들은 잘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부분이 종종 '더 체어'를 작품 속 영문학과처럼 보이게도 한다. 어떤 시각은 새롭지만 또 다른 관점은 매우 낡았고, 성차별과 인종차별을 주제로 삼고 있으면서도 백인 남성의 낭만적이고 순진한 진심을 꼭 전해야만 하는 드라마가 '더 체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이 작품의 "복잡하지만 진심 어린 관계"를 지켜볼 가치가 있다는 쪽이다. 폭탄이 터지는 순간에도 '치울 권력'을 여성 동료에게 넘기고, 자신이 떠내려가는 와중에도 건져 올려야 할 사람들을 끌어와 구명보트에 태워주며, 할 수 있는 최선의 실패를 받아들이는, 우리와 닮은 여자가 거기 있다는 이유면 설명이 될까. 나는 그 정도면 3시간을 투자할 이유로도, 콘텐츠가 하는 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