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숏폼을 주목하는 이유
지난해를 강타했던 지코의 ‘아무노래’ 챌린지의 인기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여러 요인이 있지만 ‘누구나 따라할 수 있는 쉬운 동작’과 ‘1분을 넘지 않는 러닝타임’으로 구성된 캠페인, 그리고 틱톡과의 시너지가 성공 요인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에 몰입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MZ세대를 자극했다. 해당 챌린지는 틱톡의 국내 첫 인기 사례로, 이를 계기로 국내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다. 틱톡은 아무노래 챌린지같이 시청자가 싫증을 느낄 새도 없이 한순간에 매료시키는 ‘숏폼’이란 분야를 개척한 플랫폼이다. 틱톡이 개척한 이 분야는 대세가 됐다.
글. 김성지 기자 jerome@ditoday.com
틱톡이 쏘아올린 작은 공
빠르게 변화하는 디지털 환경. 이제는 영상이 변하고 있다. 그동안 영상은 16:9 중심의 가로 형태, 10분의 런닝타임이 디폴트였다. 어느 순간 여러 플랫폼에서 1분 미만의 세로 영상이 늘어나고 있다. 문자 그대로 ‘짧은 동영상’을 뜻하는 숏폼은(Short Form)은 평균 15~60초, 최대 10분을 넘기지 않는 동영상 콘텐츠다. 틱톡이 불러일으킨 숏폼 열풍은 지나가는 유행일까? 앞으로의 기준이 될까? 글로벌 기업들의 움직임을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인스타그램·유튜브·넷플릭스·네이버 등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글로벌 플랫폼은 연이어 숏폼 콘텐츠를 론칭하고 있다.
연령별 선호하는 영상 길이(출처. 메조미디어)
틱톡 사용자의 연령별 분포(출처. 메조미디어)
이들이 숏폼에 주목하는 이유가 있다. 주요 소비층으로 떠오른 MZ세대를 사로잡기 위함이다. 틱톡 사용자의 51%는 MZ세대라는 틱톡의 발표, 연령층이 낮아질수록 짧은 길이의 영상을 선호한다는 메조 미디어의 리포트 등 여러 조사에 따르면 MZ세대는 숏폼 콘텐츠에 열광하고 있다.
TV만 보는 세대는 이미 지났다.
-나영석 PD(CJ E&M)-
요즘 프로그램은 너무 길다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라면 대하드라마 같더라.
가벼운 숏폼을 하고 싶다.
숏폼의 인기비결
첫 번째, 세로 형식
우리는 보통 영상과의 첫 만남은 TV를 통해 이뤄졌다. 이후 PC가 보급되며 우리는 TV와 PC를 통해 영상을 접할 수 있었다. 4:3(1.33:1)이었던 표준 비율은 16:9(1.77:1)로 변화했다. 일부 대형 디스플레이는 영화관 비율인 21:9(2.33:1)로 제작되기도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영상은 가로 사이즈 중심이었다. 인간의 세로 인지 시야는 가로에 비해 한정적이다. 기술적·미학적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이것이 새로운 디스플레이가 출시될 때마다 가로로 길어지는 주된 이유다. 영상을 담아내는 틀이 가로로 긴 형태였기 때문에, 그에 맞춰 영상이 제작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TV와 PC가 독점하던 디스플레이 시장에 스마트폰이 등장했다. 사용자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영상을 시청할 수 있음에 감탄했다. 비록 화면을 전환한 후, 가로로 눕혀 시청하는 작업이 번거롭게 UI를 거쳐야 했지만. 우리의 삶의 필수가 된 스마트폰에게 휴대성은 요소이기에 한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정도가 돼야 한다. 따라서 세로 길이에 제약이 있던 TV나 PC와는 가로 길이가 제약됐다. 스마트폰 규격에 맞는 영상은 세로중심의 형태다.
점차 스마트폰이 보급되며, 자연스레 세로 영상이 등장했다. 세로 영상은 오직 스마트폰에서만 적합한 형태로, 숏폼 콘텐츠를 시작으로 ‘영상은 가로 형태로 제작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났다. 이후 라이브커머스, 아이폰11 프로로 촬영한 영화 <스턴트 더블> 등 시청자를 번거롭게 만들지 않는 세로 포맷의 영상이 등장하고 있다.
두 번째, 짧은 러닝타임
디지털 세상은 우리에게 편리함 등 많은 면에서 효율을 높여줬다. 디지털에 익숙해진 사람에게 ‘가성비’ 추구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여러 가치 중 경험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MZ세대에게 숏폼의 짧은 러닝타임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1분만 투자하더라도 여러 개의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각 영상은 불과 몇 초 안에 자신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를 강력하게 전달한다.
MZ세대에게 스마트폰은 신체의 일부라 하더라도 과언이 아니다. 나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즉시 해결한다. 이렇게 강력한 스마트폰으로 인해 MZ세대뿐만 아니라 현대인의 ‘주의집중 시간’이 감소했다. 어느 순간부터 10분에서 1시간 내외의 영상에서도 피로감을 느낀다. 이러한 현대인의 특성이 반영되며 영상은 마침내 10초 내외로 짧아지며, 숏폼이 탄생했다.
세 번째, 접근성
숏폼은 다른 콘텐츠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접근성을 자랑한다. 생산자와 시청자, 모두에게 진입장벽이 낮다. 앞서 언급한 두 장점에서 파생된 이유로 시청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세로 형태의 영상이라 한 손으로 편하게 시청할 수 있고, 짧은 러닝타임으로 인해 긴 시청 시간을 요하지 않는다. 여가 시간을 활용할 수도 있고, 대중교통을 기다리는 시간 등 틈새 시간에 숏폼 콘텐츠를 시청할 수도 있다.
숏폼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딱 한 가지다. 바로 스마트폰이다. 별다른 촬영 장비나 편집 작업은 투머치다. 숙련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편집 과정에서 1분의 영상을 제작하는 데 1시간이 소요된다. 기존 유튜브 영상은 보통 10분 내외의 영상이 많은 것을 고려한다면, 하나의 유튜브 영상을 편집하는 데 10시간이 소요됨을 예측할 수 있다. 그런데 숏폼은 이러한 과정이 필요하지 않다. 단지 생산자는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후, 업로드하면 된다. 제작하고 싶은 콘텐츠가 있다면 몇 번의 터치만으로 모든 작업을 완료할 수 있다.
이미지. Men Can’t Do 챌린지이렇게 간단한 과정으로 생산자의 진입장벽이 낮아, 시청자는 쉽게 생산자가 되기도 한다. 이에 단편적인 예가 ‘지코의 아무 노래 챌린지’다. 지코를 시작으로 이효리·지석진·박신혜 등 유명인이 참여, 유명세를 타며 한국을 넘어 세계의 챌린지가 됐다. 숏폼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시청자가 될 수 있고, 누구나 생산자가 될 수 있다.
무한 경쟁 돌입한 숏폼
1. 숏폼을 만든 틱톡(Tiktok)
2016년 9월 론칭한 틱톡은 숏폼의 대표주자를 넘어 숏폼의 창시자라 수식어를 붙여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숏폼 기준에 포함되는 15~60초 이내의 짧은 동영상을 제작하고 공유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틱톡 앱 내에서 소리·화면 등 간단하게 영상 편집이 가능하다. 또한 반응·듀엣 기능처럼 다른 사용자와 함께 할 수 있는 기능도 있다. ‘디지털 네이티브’라 불리는 Z세대를 중심으로, MZ세대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초기부터 150개국에서 75개 언어로 시작해, 론칭 2년 만에 유니콘 기업에 등극했다. 지난 3월, 미국 경제 매체 ‘블룸버그’에 따르면 ‘바이트댄스(틱톡의 모회사)의 자산가치는 넷플릭스를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출시부터 승승장구한 틱톡이지만, 최근 위기를 느낀 듯하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개인정보 논란 관련 틱톡 사용금지’ ‘마이크로소프트에 틱톡 인수 관련’ 등 여러 마찰을 빚기도 했다. 또한 15~60초라는 시간에서 많은 장점이 파생했지만, 콘텐츠를 제약한다고 생각해 범위를 늘렸다. 이제 3초~3분 내에서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 많은 숏폼 플랫폼이 론칭되며 많은 도전을 받고 있다.
2. 미국판 틱톡? 인스타그램의 릴스(Reels)
SNS 강자 페이스북도 숏폼 시장에 진출했다. 2020년 8월, 인스타그램 앱 내 ‘릴스’라는 기능 추가했다. 릴스는 출시되자마자 비판이 있었다. 기존 사진이나 동영상을 게시하던 기능이 있던 인스타그램 앱 내에 별도의 동영상을 올리는 기능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15초에서 1분의 영상길이, BGM·특수효과 등을 간편하게 추가 등 릴스의 UI는 틱톡을 떠올리게 하기 충분했다. 릴스의 출시를 본 틱톡 측은 “릴스는 틱톡의 모조품에 불과하다”라고 비판했고, 이에 비샬 샤아 인스타그램 부사장은 “틱톡이 숏폼 분야 발전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나, 최초는 틱톡이 아닌 바인(Vine)이나 뮤지컬리(Musical.ly)였다”라며 대응했다. 비판과 함께 시작했지만, 그동안 터를 잘 닦아놓은 인스타그램 내에서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모양새다. 릴스가 지닌 차별성은 연예인·인플루언서의 접근성이다. 인기 숏폼 콘텐츠는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가 중심이 되는 경우가 많기에 릴스의 성장은 틱톡 입장에서 달갑지 않을 수 있다.
3. 혁명가 유튜브의 새로운 발걸음, 쇼츠(Shorts)
유튜브는 최초 TV와 방송사 중심이던 영상 시장을 ‘다양한 디바이스’와 ‘1인 크리에이터’도 참여할 수 있도록 새롭게 재편했다. 현재, 50억 명이 사용하는 세계 최대 동영상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이러한 유튜브도 미디어 시장의 변화를 감지하며, 60초 이내의 세로 동영상을 지원하는 ‘쇼츠’ 베타버전을 출시했다. 블로그를 통해 “틱톡이 제공하는 모든 기능을 포함하고 있다”며 틱톡을 견제하고 있는 속내를 드러냈다. 쇼츠의 가장 큰 강점은 ‘저작권’이다. 유튜브가 보유한 라이선스 음원을 활용할 수 있다. 이는 저작권 문제로 논란이 잦은 틱톡에 비해 상당한 이점이며, 50억 명의 기존 사용자에게 자연스레 눈도장을 찍고 있다. 현재 쇼츠는 유튜브 내에서 베타 서비스 중이며, 올 하반기에 단독 앱으로 출시될 예정이다.
4. MZ세대와 친해지고 싶은 네이버, 블로그 모먼트(Blog Moments)
네이버는 대한민국 국민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웹사이트지만 한 가지 고민을 안고 있다. 연령층이 낮아질수록 사용자가 감소한다는 점이다. 영상 콘텐츠가 보편화되기 전까지는 네이버는 가히 완벽했다. 가장 생생하고 자세한 정보를 담은 네이버 블로그가 있었기 때문이다. 텍스트와 사진 위주의 블로그는 영상으로 특화된 유튜브, 특유의 감성으로 어필하는 인스타그램과의 경쟁에서 밀려나고 있다. 그래서 네이버는 블로그용 동영상 편집기인 ‘블로그 모먼트’를 출시했다. 편집과정에서 지도, 쇼핑 등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정보를 추가할 수 있다.
5.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싶은 넷플릭스, 패스트 래프(Fast Laughs)
코드커팅(Cord Cutting)을 이끌며 스트리밍 라이프를 보급했던 OTT 서비스들도 숏폼 플랫폼을 출시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숏폼 서비스 ‘패스트 래프’를 론칭했다. 넷플릭스가 선별한 최대 1분 길이의 세로 영상을 시청할 수 있다. 각 영상에 대한 반응을 표시할 수 있으며, SNS에 롱폼(Long Form) 콘텐츠의 대표주자인 넷플릭스의 이러한 행보는 숏폼을 통해 자사의 콘텐츠를 홍보하며 기존 사용자 이탈을 방지하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관심은 있었지만 긴 호흡으로 넷플릭스 시리즈가 부담됐던 사람들에겐 패스트 래프의 등장은 반가울 것이다.
*코드커팅: 기존 케이블 TV 이용자가 케이블 코드를 끊어버리는 현상으로, 코드커팅은 자연스레 OTT서비스의 유입으로 이어진다.
짧지만 강렬하다, 최고의 광고 수단
동원F&B는 MZ세대를 겨냥해 ‘맛의 대참치’ 캠페인을 진행했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가공 참치 레시피를 흥겨운 CM송과 함께 소개했을 뿐인데, 1,540만 조회수를 기록하며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했다. 빙그레는 손흥민에게 축구공이 아닌 슈퍼콘을 건네줬고, 그는 리듬에 맞춰 다소 엉성한(?) 막춤을 선보였다. 이미 한국에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한 슈퍼콘은 그 입지를 더욱 굳건히 했고, 세계인에게도 강렬한 인상을 심어줬다.
- 아무노래 챌린지
- ‘맛의 대참치’ 캠페인
- 슈퍼콘 광고
동원F&B와 빙그레의 캠페인의 성공사례를 시작으로 광고 업계에서도 대세로 떠오르며, 주요 광고 상품을 숏폼 형태로 출시하고 있다. 두 사례도 1분이 안 되는 형태지만, 시청자에게는 길게 느껴질 수도 있다. 시청자는 브랜드 이미지 및 정보 전달 측면에서는 15초 이내의 광고를 선호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광고는 중독성 있는 멜로디나 대사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아, 숏폼 콘텐츠로 바이럴 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MZ세대는 원하는 것에 빠르게 몰입하지만,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빠르게 타오르고 빠르게 식는다. 이것은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들이 몰입하고 싶은 콘텐츠는 많지만, 그에 걸맞은 시간은 허락되지 않기 때문이다. 15초라는 짧은 시간에 핵심만 간결하게 전달하는 숏폼의 등장에 그들은 환호하며, 그들의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틱톡이 불러온 숏폼 열풍. 인스타그램 유튜브 네이버 등 여러 플랫폼이 가세하며 그 기세가 사그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