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도, 그만둬도 지옥"…사형선고 야쿠자에게 내린 저주[도쿄B화]
입력 2021.08.28 05:00
'아니키(형님)'의 죄를 뒤집어쓰고 감옥에 14년이나 갇혀있었습니다. 이십대 청년이 중년이 돼 출소하고 보니 한때 지역을 주름잡던 조직에는 '오야붕(두목)' 이하 어르신 6명만 남았습니다. 돈을 벌 길 없는 노인들이 찬 바다에 들어가 장어 치어를 몰래 잡아 조직을 유지합니다. 보통 사람처럼 살고 싶지만, '야쿠자'로 등록된 탓에 집을 구하는 것도, 휴대전화도 만드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지난 달 넷플릭스에 공개된 '야쿠자와 가족'은 살아보기 위해 폭력조직에 발을 들인 주인공 겐지(아야노 고)가 주인공인 독특한 야쿠자 영화입니다. 몸 전체에 문신을 하고 유흥업소에서 돈을 갈취하는 야쿠자들의 모습이야 그동안 일본 영화에서 수없이 그려졌죠. 하지만 이 영화는 다릅니다.
일본아카데미에서 최우수 작품상과 여우·남우주연상을 휩쓴 영화 '신문기자'를 만든 후지이 미치히토(藤井道人) 감독은 현직·전직 야쿠자들의 삶을 꼼꼼히 취재해 영화에 담았다고 합니다. 뿌리 없는 삶에서 벗어나고자 '폭력'이라는 잘못된 선택을 한 이들이 시대 변화에 따라 진짜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습을 연민이 담긴 시선으로 그립니다.
한때는 일본 경제 주름잡던 '큰손'
'야쿠자'로 불리는 일본의 폭력조직은 에도(江戶) 시대 몰락한 무사들으로부터 시작됐다고 하죠. 이후 도시 빈민을 흡수하며 세를 불렸고, 일본의 고도 성장기엔 각종 이권에 개입해 돈을 쓸어모았습니다.
수십조원의 돈을 굴리며 일본 지하경제를 쥐락펴락한 야쿠자는 한때 '총을 든 골드만삭스'로 불리기도 했죠. 3대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구미(山口組)·스미요시카이(住吉会)·이나가와카이(稲川会)를 중심으로 대규모 항쟁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모두 옛날 얘기입니다. 90년대 들어 거품 경제가 꺼지면서 일본 정부는 '검은 돈 철폐'를 내걸고 야쿠자 소탕작전에 나섭니다.
시작은 1992년의 '폭력단 대책법'이었습니다. 전국 22개 조직을 '지정폭력단'으로 규정해 경찰과 공안이 철저히 관리하기 시작합니다. 술집이나 음식점에 대한 보호비 갈취 등 각종 불법 행위를 집중 처벌해 이들의 돈줄을 막았죠.
2011년 전국 지자체에 도입된 '폭력단 배재조례'는 야쿠자 몰락의 쐐기를 박습니다. 지자체에 야쿠자 조직원으로 등록이 되면 본인 명의로 휴대폰 개설, 은행 거래도 안되고, 집을 사고 빌려주는 행위도 할 수 없습니다. 아예 정상적인 생활을 불가능하게 만들었죠. 거기에 조직에서 탈퇴했어도 5년이 지나야 제한을 풀어주는 '5년 룰'까지 생겨 목을 조입니다.
"야쿠자 계속해도 지옥, 그만둬도 지옥"
이후 빈궁해진 야쿠자 조직은 대거 해산했고, "먹고 살 길이 없다"며 떠나는 젊은 조직원이 줄을 이었습니다. 한때 전국적으로 20만명 가까이 됐던 야쿠자의 수는 2019년 말엔 1만 4400명으로 줄었다고 하네요. 더구나 이 중 절반 이상이 50대 이상으로, '떠나고 싶어도 갈 데 없는' 노인들만 남게 된 겁니다.
최근 몇년 사이 일본에서 나오는 야쿠자 관련 뉴스는 대부분 이런 겁니다. 생활고에 시달린 60대 야쿠자가 과수원에서 멜론과 망고를 훔쳤다, 한밤 중 바다에서 몰래 해삼을 따던 야쿠자와 순찰선의 추격전이 벌어졌다, 50대 야쿠자가 슈퍼에서 수박과 쌀을 훔치다 잡혔다 등등.
지난해부터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더 힘들어졌다고 합니다. 감염병 유행으로 벚꽃놀이도, 마을 축제도 취소되면서 그나마 야쿠자들의 남아있는 돈벌이였던 노점상 수익까지 사라진 겁니다. 사회 빈민층으로 전락한 늙은 야쿠자들 사이에선 "(야쿠자를) 계속해도 지옥, 그만둬도 지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죠.
"판사 너, 평생 후회할거다"
지난 24일엔 또 하나의 야쿠자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일본서 '가장 악랄한 폭력집단'로 불렸던 '구도카이(工藤会)'의 두목 노무라 사토루(野村悟·74)가 법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다는 뉴스입니다. 야쿠자와 감옥은 익숙한 조합이지만, 현직 야쿠자 두목에게 사형이 선고된 건 일본에서 이번이 처음이라고 하네요.
구도카이는 야쿠자의 영향력이 거의 소멸한 일본에서 각종 폭력 사건으로 악한 존재감(?)을 보여주던 집단이었습니다. 하지만 두목에게 내려진 사형 판결로 빠른 소멸의 길을 걷게될 것으로 보입니다. 아마 여생을 감옥에서 보내게 될 노무라는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한 판사에게 "너, 평생 후회할거다"라는 협박을 남기기도 했죠.
야쿠자의 소멸을 보는 일본인들의 심경은 복잡한 것 같습니다. 영화 '야쿠자와 가족'은 주인공의 삶을 통해 '한번 잘못된 선택을 한 사람은 영원히 그 굴레에 묶여 있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실제로 일본에선 전직 야쿠자들의 사회 복귀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움직임이 시작됐지만, 아직은 찬반이 팽팽하게 갈리고 있습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