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언론 재갈 물리려던 대통령의 최후는 [왓칭]
언론과 권력의 불편한 관계
재갈 물리는 게 최선일까?
청와대·민주당에 추천한다
영화 ‘더 포스트’
민주당이 지난 25일 새벽 단독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면서, 논란의 법안은 결국 국회 본회의 의결만 남겨두게 됐다. 언론사에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를 쉽게 하는 방향으로 수정된 이번 개정안은 ‘언론재갈법’이라고도 불린다. 명백한 증거를 확보하지 않고선 보도를 어렵게 만든다는 점에서 ‘미투금지법’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내외 언론단체와 야당, 심지어 일부 여당 의원들까지 언론의 자유를 훼손할 수 있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지만, 청와대와 여당 주류 진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법 통과를 밀어붙이고 있다.
권력과 언론 관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요즘 시국에 볼만한 영화를 한 편 소개한다.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 한 언론의 싸움은 처절하다. 권력은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언론을 압박할 수 있다. 그럼에도 권력에 굴종하지 않고 끝내 진실을 파헤쳐 워터게이트 사건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던 한 언론사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다. 바로 2017년 개봉한 ‘더 포스트’다. 특히 청와대와 민주당에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선 일개 언론사
영화는 1971년 닉슨 행정부와 신문사 워싱턴포스트가 겪었던 실제 갈등을 다룬다. 베트남 전쟁을 둘러싼 정부의 각종 거짓말을 다룬 ‘펜타곤 문건’이 문제였다. 이 문건의 존재를 처음 세상에 알린 것은 경쟁 언론사인 뉴욕타임즈였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도 취재 경쟁에 돌입하면서 고생 끝에 문건을 손에 넣게 된다. 정권이 국민을 기만했다는 강력한 증거였던 만큼, 정권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었다.
하지만 살아있는 권력을 상대로 쉽게 보도를 결정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닉슨 행정부는 앞서서 보도한 뉴욕타임즈를 상대로 ‘보도금지 가처분’ 소송을 내고, 베트남 전쟁 관련 보도를 아예 발행 금지하는 등 강경 대응에 들어갔다. 게다가 워싱턴포스트는 경영난에 시달리면서 기업공개를 통해 투자 유치에 나선 상황이었다. 보도를 터뜨린다면 정부 눈치를 보는 은행과 투자자들이 투자를 철회할 수도 있었다. 그야말로 워싱턴포스트는 존폐의 갈림길에 서 있던 셈이다.
보도를 앞두고는 인간적인 고뇌도 개입했다. 당시 워싱턴포스트 사주(社主)였던 캐서린 그레이엄은 ‘펜타곤 문건’을 만든 장본인인 로버트 맥나마라 전 국방부 장관과 가까운 사이였다.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는 캐서린에게 “문건을 확보하더라도 이 친분관계 때문에 보도를 주저하는 것 아니냐”고 따진다. 그러자 캐서린은 “나는 로버트 맥나마라를 보호하려는 게 아니다”면서도 “당신도 케네디(전 대통령)와 친하지 않았느냐”고 받아친다. 문건이 공개되면 여러 사람의 인생이 끝장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던 것이다.
◇존폐 위기에서 내린 선택은
결국 기자들의 치열한 취재 끝에 워싱턴 포스트는 문건을 손에 넣는다. 케서린과 벤은 선택을 내려야 했다. 벤은 늦은 저녁 생일 파티가 한창이던 캐서린의 집으로 들이닥친다. 그는 보도를 고민하던 캐서린에게 “우리가 정권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가 하겠느냐”고 묻는다. 그러자 캐서린은 “신문사가 없다면 어떻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느냐”고 반박한다. 기자인 벤은 최악의 경우에라도 다른 언론사로 이직해 업을 이어갈 수 있다. 하지만 워싱턴 포스트는 잘못하면 문을 닫아야 할 수도 있었기에, 사주인 캐서린이 짊어져야 했던 선택의 무게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
실제 사건을 다룬 만큼 스포일러라고 할 것도 없다. 워싱턴포스트는 결국 캐서린의 결단으로 펜타곤 문건 보도를 강행한다. 다행히 법원은 “언론은 통치받는 국민을 위한 것이지 통치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라며 언론사의 손을 들어줬다. 영화는 마지막에 워터게이트 호텔에서 도청 작업을 위해 잠입한 요원들의 실루엣을 통해 그 유명한 워터게이트 사건을 암시하면서 마무리 짓는다. 기어이 펜타곤 문건을 터뜨렸던 워싱턴포스트의 결단이 있었기에, 워터게이트 보도도 나올 수 있지 않았을까. 언론과 미국 국민의 관점에서 보면 해피엔딩이었다.
◇현실에서 항상 해피엔딩일 수 있을까
그 유명한 스티븐 스필버그가 감독을 맡았다. 대배우 톰 행크스가 편집국장 벤 브래들리, 메릴 스트립이 워싱턴 포스트 사주 캐서린 그레이엄 역을 맡았다. 이 조합만 봐도 작품성에는 의심의 여지가 사라진다. 실제로 잘 만든 영화다. 아카데미 작품상도 받았다. 피 튀기는 싸움, 숨 막히는 추격전은 없지만, 영화는 배우들의 눈빛 하나, 말 한마디로 팽팽한 긴장감을 살려낸다. 영화가 다루는 실제 사건의 무게감이나 관객에게 던지는 거창한 메시지를 떠나 작품성만으로도 충분히 재밌게 볼 수 있는 영화다.
그럼에도 여운은 남는다. 현실에선 해피엔딩이 보장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끝자락에서 캐서린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항상 옳을 수 없어요. 완벽하지도 않아요. 그래도 계속 쓰는 거죠.” 그랬기에 끝내 추악한 정권의 민낯을 폭로할 수 있었다. 민감한 진실은 언제나 가려져 있다. 완벽하지 않다고 입을 다물라 한다면, 끄집어 낼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개요 영화 l 미국 l 2017년 l 1시간56분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특징 권력을 상대로 한 언론의 이상적인 모습
평점 IMDB 7.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