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원·동영상 구독하다보니 어느새 月 10만원
소비자들 “디지털 알뜰소비인줄 알았더니 지출 급증”
입력 2021.08.23 03:00
직장인 박정민(30)씨는 최근 자신의 카드 결제 내역을 정리하다가 깜짝 놀랐다. 매월 정기 결제되는 ‘디지털 구독 서비스’로 나가는 비용만 10만원이 넘었기 때문이다. 박씨가 가입한 서비스는 총 15건. 그 중엔 분야가 겹치거나, 쓰지 않는 서비스도 많았다. 실제로 박씨는 음원 스트리밍 3종(멜론·스포티파이·유튜브뮤직),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2종(넷플릭스·왓챠)을 동시에 쓰고 있다. 쇼핑 혜택을 위해 쿠팡 ‘로켓와우’와 네이버의 ‘네이버플러스’도 구독하지만, 이들 서비스가 부가적으로 제공하는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쿠팡플레이’와 ‘티빙’을 사용한 경우는 거의 없다. 박씨는 “가입한 뒤 잊어버린 서비스도 많은데 가랑비에 옷 젖은 꼴이 됐다”고 말했다.
‘디지털 구독 경제’가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구독 서비스에 대한 반감을 호소하는 이용자들이 많아지고 있다. 최근 수년간 IT 업체들의 구독 서비스가 과하게 세분화되고 온갖 산업으로 확산되면서 “나도 모르는 새 지출이 급증했다”는 이용자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이다.
◇디지털 구독은 ‘알뜰 소비’가 아니다
디지털 구독 서비스는 원래 소비자의 편의성을 극대화한다는 점 때문에 인기를 모았다. 음원을 한 곡씩 결제해서 구매하는 것보다 매달 1만원 안팎에 무제한으로 음원을 듣는 것이 합리적인 소비라는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구독 서비스가 난립하면서 오히려 알뜰 소비가 아니라 과소비를 부르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
신문·우유 구독 같은 이전 모델은 소비자가 원하는 서비스를 직접 찾아 신청하고 가격도 비교적 명확하다. 반면 IT 기업이 주도하는 ‘디지털 구독 서비스’는 웹사이트나 모바일 앱에서 끊임없이 구독을 권유하는 식으로 운영된다. ‘무료 체험’이나 ‘언제든 해지 가능’ 같은 문구를 따라 두어번 클릭하다 보면 결제 정보까지 입력하게 된다. 하지만 그 효용은 천차만별이다. 헬스장 정기권을 끊어놓고 한 달에 겨우 한두번 가는 것처럼 디지털 구독도 불필요한 지출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뉴욕타임스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미국 구독 서비스 이용자들은 연평균 640달러(약 75만원·2019년)를, 영국은 620파운드(약 100만원·올해)를 구독에 쓴다. 국내에선 아직 정식 통계가 없지만, IT 업계에선 “적어도 이용자 1인당 월 3만~5만원은 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구독 서비스가 너무 파편적으로 성장한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OTT 구독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 서비스하는 넷플릭스·웨이브·왓챠·티빙이나 곧 서비스를 시작하는 디즈니플러스는 한 가지만 구독해서는 만족하기 어렵다. 넷플릭스를 구독하면 디즈니 영화를 못 보고, 웨이브를 구독하면 tvN·Mnet 같은 CJ ENM 콘텐츠를 볼 수 없다. 소비자가 중복 구독을 피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최근엔 무료 앱에 구독형 유료 서비스가 추가되는 경우도 많다. 무료 앱인 카카오톡은 지난 1월부터 한 달 무료 체험 기간을 내세워 이모티콘을 무제한으로 쓸 수 있는 구독 서비스 ‘이모티콘 플러스’를 출시했다.
◇일부 업체 ‘구독료 다이어트’ 나서
IT 업체들이 구독을 끊기 어렵게 만드는 것도 문제이다. 넷플릭스와 스포티파이 등 글로벌 기업들은 PC 홈페이지에서만 구독 취소가 가능하다. 대부분 이용자가 모바일 앱으로 서비스를 쓰는데, PC 접속이라는 장벽을 만들어 구독 해지를 어렵게 만든 것이다.
이용자들의 반발을 의식한 일부 업체는 ‘구독료 다이어트’에 나서기도 한다. 구글은 최근 유럽 일부 국가에서 ‘유튜브 프리미엄 라이트’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원래 유튜브 프리미엄은 월 1만원 수준(지난해 신규 회원 가격 인상 후 국내 기준)에 광고 없이 동영상과 자체 음악 앱 유튜브 뮤직을 쓸 수 있게 해주는 서비스였다. 하지만 “유튜브 뮤직은 필요 없는 서비스”라는 원성이 커지자 뮤직을 제외하고 가격을 40% 내린 ‘라이트’ 서비스를 선보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