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아버지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때
김현주
[더,오래] 김현주의 즐거운 갱년기(69)
퇴근길, 집에 오는 지하철 안에서 넷플릭스를 열었다. 새로 올라온 작품을 둘러보고 있었는데, ‘무비: 우리가 사랑한 영화’라는 TV 프로그램이 눈에 들어왔다. ‘다이하드’부터 ‘귀여운 여인’까지 80, 90년대를 대표하는 할리우드 영화의 뒷이야기를 한 회당 한 편씩 다루는 다큐멘터리였는데, 첫 회에 실린 영화가 ‘더티댄싱’이었다. 세상에 얼마 만에 들어 본 영화 타이틀인지, 반가움에 망설임 없이 시청하기를 클릭했다. 1988년 겨울이었을 거다. 대학입학 학력고사를 끝내고 극장에서 본 영화였는데, 음악과 춤 그리고 ‘베이비’(제니퍼 그레이)라 불리는 또래 여자아이가 경험하는 사랑의 감정에 이입되어 내 생애 처음으로 극장에서 n차 관람을 했다. 자니(패트릭 스웨이즈)가 베이비를 번쩍 들어 올리는 마지막 댄스 신에 열광하며 3번 정도 극장에 갔던 것 같다.
OST에도 푹 빠져 수록곡들의 가사를 외울 정도였다. 대학입학을 앞두고 있는 19세의 로맨틱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스토리 때문이었을 거다. 부모의 ‘베이비’에서 스스로 책임지고 행동하고 사랑을 하게 되는 경험을 동경하면서 말이다. 여성작가가 쓴 시나리오에 여성 제작자가 어렵게 만든 영화라는 제작후기를 영화 장면과 함께 다시 보는데, 가슴 들떠 환호했던 10대의 내 모습이 생각나 웃음이 났다.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은 장면들에 그렇게 마음을 실었다니.
그러다 한 장면에 숨을 멈추고 집중하게 되었다. 호숫가에 혼자 앉아 있는 아버지 옆에 다가온 베이비가 “(아버지 눈에 눈물이 맺혀 있었다)사랑해요, 아빠. 실망하게 해서 죄송해요”라며 울먹이는 장면이었다. 품 안의 자식,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딸이 예상하지 못한 선택을 했을 때, 그럼에도 이제 딸의 성장과 선택을 인정해주어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이 흔들리는 눈빛에 잘 드러났다. 나도 비슷한 말을 아버지에게 했던 것 같은데, 아주 오래전에 말이다. 그때 아버지의 눈빛이 어땠는지 희미하게 기억이 났다.
마침 이번 여름 휴가에 아버지에 관한 책을 읽었다. 신경숙 작가가 올해 출간한 장편소설 『아버지에게 갔었어』(창비)였다. 아버지의 삶을 들여다보게 된 딸의 이야기라는 소개 글에 자연스레 집게 되었다.
작가는 “우리에게 익숙한 듯한 이 허름한 아버지는 처음 보는 아버지이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가 아버지를 개별자로 생각하는 일에 인색해 그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하지 않았으니까요”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인생을 그 사람의 입장에서 들여다보는 일은 쉽지 않다. 특히나 아버지의 시간은 딸의 입장에서 가늠할 엄두도, 의지도 잘 생기지 않는다(어머니는 조금 다르다. 여성으로 비슷한 경험을 하게 될수록 이해하게 되고, 그래야겠다는 마음이 자연스레 생긴다).
소설 속 자식들도 마찬가지였다. 자식들은 아버지를 열심히 일하시며 6남매를 대학까지 보낸 분, 고향을 떠나지 않고 지금까지 정 깊게 마을 사람들과 지낸 분, 어릴 적 부모를 역병으로 잃고 가장으로 힘들게 살아온 분 등 몇 줄의 설명으로 이해했다고 생각한다. 마음속에 담아둔 한과 후회로 오랜 기간 심각한 수면 장애를 겪고 있다는 것도 몰랐고, 지금까지 살아오며 왜 그런 선택을 해왔는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작품 속 주인공(아버지가 특히 자랑했던 넷째딸로 작가다)은 아픈 아버지 곁에 머물며 “나는 아버지를 한 번도 개별적 인간으로 보지 않았다는 것도 그제야 깨달았다. 아버지를 농부로, 전쟁을 겪은 세대로, 소를 기르는 사람으로 뭉뚱그려 생각하는 버릇이 들어 아버지 개인에 대해서는 정확히 아는 게 없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고 고백한다.
소설 속 아버지는 자식 교육시키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여겨 6남매가 학사모를 쓰고 찍은 사진들을 일렬로 걸어 놓고 바라보곤 하는데, 그러고 보니 친정집 한쪽 벽면에도 나와 내 동생의 대학 졸업사진과 둘의 결혼 후 온 가족이 함께 찍은 가족사진이 걸려있다. 벽 사이즈에 비해 커 보이는 이 액자들이 아버지의 지난 인생을 기리는 상장일 수 있겠다 싶었다. 소설 속 아버지를 알아가며 나의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자연스레 중첩됐다.
“미루야, 저기 저 산이 할아버지가 어렸을 때 자주 가던 곳이었는데. 이 동네는 진짜 할아버지가 잘 알았는데 말이다. 그렇게 많이 바뀐 것 같지는 않네.”
지난 주말 모처럼 아이와 함께 아버지와 어머니를 만났다. 차로 댁에 모셔다드리는 중이었는데, 창밖을 보며 오랜만에 옛 정취에 잠기셨는지 혼잣말처럼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할아버지가 이 동네는 꽉 잡고 있었거든. 할아버지가 공부는 열심히 안 했지만, 운동부에서 운동은 열심히 했다. 할아버지 학교에 럭비부가 있었거든. 그때는 참 잘 뛰었는데.”
어깨 넓은 보호 장비를 하고 스크럼을 짜며 달리는 10대 때의 아버지 모습을 떠올려 봤다. 나팔바지를 멋지게 차려입고 친구들과 사진을 찍던 젊은 아버지, 피곤하면 수염이 많이 자라던 30, 40대 아버지, 10년 전 병원에 입원하셨던 때의 아버지….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버지의 모습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품 안의 ‘베이비’에서 성년의 자식으로 인정해 주신 아버지처럼 나의 아버지에서 ‘단독자’로서의 아버지를 들여다보고 싶어졌다.
[출처: 중앙일보] [더오래]아버지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어봐야 할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