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라는 커튼에 가려진 로마 가톨릭의 위기
▲ 산책하는 베네딕토 16세와 베르골리오 산책하며 대화를 나누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베르골리오 추기경 ⓒ 넷플릭스
지난 2013년 2월 11일,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고령이라 체력이 약해 직무를 감당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추기경 회의에서 자진 퇴위 의사를 밝혔습니다. 실제로 그는 당시 여든 여섯이었고 걸을 때 지팡이를 짚어야 하였으며 뇌졸증을 겪은 뒤 왼쪽 시력을 거의 잃은 상태로 알려졌습니다. 종신직인 교황의 '자진 퇴위'는 그레고리오 12세 이후 598년 만에 발생한 매우 이례적인 사건이라 세상을 놀라게 하였습니다.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감독의 영화 '두 교황'은 베네딕토 16세의 자진 퇴위라는 기이한 사건을 배경으로 신임 프란치스코와의 배턴터치 과정을 다룹니다. 영화에서 아르헨티나 교회 추기경 베르골리오는 콘클라베(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들의 회의)에서 베네딕토 16세가 교황으로 뽑힐 무렵 그와 경쟁한 후보로 나옵니다. 그는 베네딕토 16세가 자진 퇴위를 발표하기 전 '추기경에서 물러나고 싶다'며 교황에게 편지를 보낸 뒤 로마 바티칸을 방문합니다. 두 사람은 꼬박 사흘 간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차츰 서로를 이해하고 가까워집니다.
▲ 두 사람의 밀담 귀속말을 나누는 베네딕토 16세와 베르골리오 ⓒ 넷플릭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이혼, 피임, 동성애 같은 사회 변화 이슈에 보수적이고 완고한 입장을 견지하는데 비해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개혁적이고 유연한 태도를 보여 줍니다. 언뜻 두 사람 성향은 너무도 달라 보입니다. 하지만 급변하는 세속의 여러 도전 속에서 '교회를 수호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서로 일치합니다. 접근 방법은 서로 다르지만 궁극적 목표는 동일하다는 이야기입니다.
▲ 교황 프란치스코와 베네딕토 16세의 월드컵 관전 2014년 월드컵 결승전을 관전하는 교황 프란치스코와 베네딕토 16세 ⓒ 넷플릭스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은 신학적 견해 차이로 아슬아슬한 언쟁을 벌입니다. 하나 어느덧 단짝 친구가 되어 피자를 시켜 함께 먹고 베르골리오는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피아노 연주를 청해 듣기도 하며, 헤어질 때는 교황청 마당에서 교황에게 탱고를 가르쳐 주기도합니다. 베네딕토 16세가 퇴위하고 프란치스코가 교황에 오른 뒤인 2014년 월드컵 독일-아르헨티나 결승전 때는 함께 TV 앞에 앉아 자국을 응원하는 장면도 나옵니다. 교회의 최고 수장인 두 사람의 이 같은 파격 행보 장면들은 낡고 보수적인 가톨릭 이미지를 다시 생각게 하는 데 기여할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의 많은 장면은 감독이 허구적으로 창작해낸 것이지 실제 벌어진 일은 아닙니다. 가령 베르골리오는 추기경 사직을 위해 바티칸을 방문한 적이 없다고 합니다. 또한 2014년 월드컵에서 독일과 아르헨티나가 맞붙었을 때 두 교황은 경기를 함께 관전하지도 않았습니다. 물론 베네딕토 16세가 갑작스레 자진 퇴위를 하고 프란치스코가 그의 뒤를 이어 교황이 된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이 만나 서로 고해 성사를 하고 퇴위 문제를 두고 내밀히 의논한 적도 없어 보입니다.
▲ 탱고를 추는 두 사람 교황청 마당에서 교황에게 탱고를 가르치는 베르골리오 추기경 ⓒ 넷플릭스
말하자면 이 영화는 이미 알려진 두 사람에 대한 몇 가지 사실을 근거로 거기에 드라마틱한 허구적 일화들을 섞어 만든 '팩션'(Faction) 작품입니다. 실제로는 두 교황의 승계 과정이 영화에서처럼 아름답고 절묘하진 않았을 겁니다. 베네딕토 16세의 퇴위 발표문만 해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들이 있습니다.
그의 측근 중 한 사람이 2012년 교황청의 기밀문서 일부를 유출해 '바티리크스 스캔들'이란 큰 파문을 낳았습니다. 더욱이 베네딕토 16세는 뮌헨 추기경 시절 두 사제의 아동 성추행 사제를 알고도 그들을 병원 치료를 받게 한 뒤 복직시켜 추가 피해를 낳았음이 드러나 공신력에 큰 타격을 입은 상태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영화는 베네딕토 16세의 나치 부역과 사제 성추문 은폐 혐의를 간간이 보여줍니다. 베르골리오 추기경은 아르헨티나의 '더러운 전쟁' 시기(1976~1983), 자신의 수하에 있던 예수회 신부 두 사람의 납치·구금·고문을 방조하고 묵인하였다는 의혹도 다룹니다. 이처럼 영화는 두 교황의 어두운 이력을 드러냈다는 사실에선 평가할 만합니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 고해성사를 통해 '용서'를 선포함으로써 지난날 과오에 따른 죄책감에서 벗어나려는 장면은 비난받을 소지가 있어 보입니다. 영화 <밀양>에 나오는 유괴 살인범이 교도소 안에서 독실한 신자가 되어 신의 용서를 받았다고 자부하는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제라 할지라도 용서는 피해 당사자에게 먼저 받아야 하고 그 다음 신에게 은밀히 구해야 하는 게 순리일 것입니다.
이 영화는 로마 가톨릭 최고 수장인 교황들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그들이 얼마나 교회를 사랑하는지 드러내고자 힘쓴 걸로 보입니다. 내용만 보면 비단 가톨릭 신자만이 아니라 개신교인, 비종교인들에 이르기까지 영화 <두 교황>은 잔잔한 감동과 공감을 불러올 만한 영화입니다. 감독의 의도가 무엇이었든 이 영화는 가톨릭 수장에 대한 존경과 호감을 낳아 그의 리더십을 강화하는데 기여할 게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영화는 오히려 가톨릭교회의 개혁을 더욱 더디게 만들지 않을까 우려스럽습니다. 당면한 심각한 위기를 직시해 과감히 대수술을 해야 함에도 대증요법 정도로 교묘히 은폐하는 걸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가톨릭의 여성사제 거부나 아동성추문, 독신사제 따위의 산적한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어물쩍 덮고 넘어갈 사안이 아닙니다. 기술적 이미지 쇄신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결단과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