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최고의 산드라 오_요주의 여성 #27
산드라 오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체어>에서 ‘김지윤’을 연기하게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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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드라 오가 출연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체어〉가 오는 20일 공개를 앞두고 있습니다. 명망 높은 대학의 영문학과 최초의 유색인종 여성 학과장이 된 ‘김지윤’이 여러 난관을 헤쳐가며 펼쳐지는 이야기. 오랜 시간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아시안계 배우로서 선구적인 발자취를 이어온 산드라 오가 주류 플랫폼에서 한국 이름을 지닌 주인공을 맡게 된 것은 또 하나의 사건이라 할 수 있겠죠. 미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TV 시리즈의 얼굴이자 골든 글로브 트로피를 두 번이나 수상한 배우, 변화의 순간을 목도하며 전진해 온 아름다운 배우 산드라 오의 기념비적인 순간들.
#매력 폭발 ‘최애캐’ 크리스티나 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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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한국인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산드라 오는 의사나 변호사가 되길 바라는 부모님의 뜻과 달리 배우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1993년 몬트리올에 있는 캐나다 국립 연극 학교를 졸업하고 연기 경력을 쌓던 산드라 오는 2005년 드디어 〈그레이 아나토미〉를 만나게 됩니다. 올가을 18시즌을 앞두고 있는 최장수 의학 드라마의 원년 멤버인 ‘크리스티나 양’은 사실 시청자가 사랑하기 어려운 점을 많이 지니고 있죠. 엄청나게 똑똑하고 이기적이며 경쟁심 강한, 이 단점 많은 캐릭터에 산드라 오는 생명력과 깊이를 더했습니다. 그리하여 동양인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TV 시리즈에서 가장 개성 있고 복합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낸 것. 산드라 오는 10시즌을 끝으로 시리즈를 떠나며 “이처럼 오랜 시간 한 역할을 맡아 함께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엄청난 행운이다”라는 소회를 남겼습니다.
#이브로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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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그레이 아나토미〉를 떠나 보내고 산드라 오는 한동안 정체기를 맞았습니다. 몇 편의 영화와 TV 시리즈에 출연했지만 진정 그가 원하는 역할은 쉽게 오지 않았습니다. 5년의 기다림 끝에 찾아온 작품이 바로 BBC 아메리카의 〈킬링 이브〉. 대본을 처음 받아 들고는 자신의 역할이 뭔지 혼란스러웠다는 이야기는 많이 알려져 있죠. 소속사를 통해 주인공 역할을 제안받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는, 그간 자신이 유색인종을 향한 업계의 차별적인 시선에 익숙해져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는 산드라 오. 기존 첩보 스릴러물의 클리셰를 깨부순 이 참신하고 감각적인 작품에서 그는 사이코패스 킬러를 쫓으며 묘한 교감을 느끼는 중년의 영국정보국 요원 ‘이브 폴라스트리’ 역을 맡아 또 한 번 전형성을 벗어난 독자적이고 매력적인 캐릭터를 선보였습니다.
#최초의, 최고의 산드라 오
2019년은 산드라 오의 커리어에서 잊지 못할 한 해로 기억될 만합니다. 제 76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호스트로 선정되어 앤디 샘버그와 함께 공동 진행을 맡은 것.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블랙팬서〉 〈로마〉 등 전과 달리 다양한 인종의 배우들이 참여한 작품이 후보작에 올랐던 해, 산드라 오는 “이 무대에 서는 게 처음에는 겁이 났지만, 변화의 순간을 목격하기 위해 여기 왔다”라는 인상적인 스피치로 시상식을 열었습니다. 게다가 〈킬링 이브〉로 TV 드라마 부문 여우주연상까지 거머쥐었으니, 이 역시 아시안 배우로는 최초로 골든 글로브 2관왕(2006년 〈그레이 아나토미〉로 여우조연상 수상)을 기록하게 된 것.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트로피를 들고 한국말로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외쳤던 순간까지, 산드라 오는 골든 글로브의 새 역사가 쓰이는 날의 당당한 주인공이었습니다.
#연대와 연결의 메시지
지난 7월 20일, 산드라 오는 만 50세 생일을 맞아 인스타그램에 미소를 띄운 ‘셀피’와 함께 가족과 협력자, 자신의 뮤즈(지난 캐릭터들)에 감사를 표했습니다. ‘아시안 캐나디언’ ‘아시안 아메리칸’을 대표하는 존경받는 배우이자 선구자인 산드라 오는 자신이 원하는 역할을 선택할 수 있게 되기까지 “30년이 걸렸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시아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 기꺼이 손을 잡고 목소리를 보태고자 합니다. 올해 미국 애틀란타에서 아시안 혐오 총기 사건이 벌어지자 본인의 SNS에 ‘Stop Asian Hate’ 해시태그를 올리는가 하면, 〈더 체어〉 촬영 차 머물고 있던 피츠버그에서 열린 거리 시위에 등장해 직접 마이크를 잡고 열띤 연설을 하기도 했습니다.
변화를 만들고 연대하고자 하는 산드라 오의 의지는 무엇보다 작품에서 드러납니다. 〈더 체어〉에서 여성 최초이자 유색인종 최초로 학과장 자리에 오른 주인공 ‘김지윤’은 배우 산드라 오의 삶의 궤적과 닮아 있습니다. 차기작으로는 한국계 미국인 아이리스 심(Iris Shim)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호러 영화 〈Umma 엄마〉의 제작과 출연에 참여할 예정.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각본상을 수상하자 폴짝폴짝 뛰며 기뻐하는 산드라 오의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죠. 저 멀리 있지만 어쩐지 ‘연결’되어 있는 느낌을 주는 배우 산드라 오. 지혜롭고 슬기로운 그의 걸음걸음을 앞으로도 응원하고 싶습니다.
https://www.elle.co.kr/article/576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