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은 ‘킹덤’, 韓은 ‘바람의 검심’ 1위… 콘텐츠 한일戰 ‘윈윈’
넷플릭스 인기 콘텐츠, 양국 순위 살펴보니…
올림픽은 끝났지만 한·일전은 계속된다. 스포츠가 아니라 콘텐츠 업계에서 벌어지는 얘기다.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 넷플릭스는 두 오리지널 콘텐츠를 연이어 공개했다. 지난달 23일 한국에서 만든 ‘킹덤: 아신전’을 공개했고 딱 1주일 뒤 일본 영화 ‘바람의 검심 최종장: 더 비기닝’을 전 세계에 상영했다. 국적은 다르지만 두 작품 모두 만화를 원작으로 한 판타지 사극이란 공통점이 있다. 성적도 비슷했다. 넷플릭스 순위 집계 사이트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공개 첫 주 ‘킹덤’은 넷플릭스 전 세계 영화 순위 2위를 기록했다. ‘바람의 검심’은 4위였다. 근소한 차이로 한국이 이긴 것 같지만 데이터를 자세히 분석해보면 이번 콘텐츠 한·일전이 승패의 문제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한국은 아시아, 일본은 유럽서 우위
지역별 인기 순위를 보면 ‘킹덤’은 대만·베트남 등 동남아시아와 인도·중동 지역에서 1~5위를 기록하며 우위를 보였다. 반면 ‘바람의 검심’은 독일과 스페인을 중심으로 한 유럽 지역에서 대체로 ‘킹덤’보다 2~3위가량 순위가 높았다. 남미의 두 대국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에선 두 작품 모두 나란히 3위에 올랐다. 넷플릭스 관계자는 “남미 지역은 일본 문화 마니아층이 원래 두터웠는데, 최근 몇 년간 K팝을 중심으로 한 한류 팬덤도 급성장했다”며 “인구도 많고 콘텐츠 소비도 왕성한 남미 지역에서 ‘킹덤’과 ‘바람의 검심’ 모두 인기를 끈 덕분에 전 세계 순위에서도 선전한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일본 만화 고정팬층이 두꺼운 미국에선 ‘바람의 검심’ 순위가 더 높았지만, 한인 교민이 많은 캐나다에선 ‘킹덤’이 압도적으로 인기가 많았다. 재밌는 건 킹덤은 일본에서 인기 순위 1~2위를 기록했고, 바람의 검심도 한국에서 1~2위를 다퉜단 점이다. 일본에 10년 이상 쌓인 한류 팬덤이 있는 것처럼, 한국 역시 10대 때부터 일본 문화 콘텐츠를 보고 자란 30~40대까지 두꺼운 고정 팬층이 형성된 덕분이다.
‘결사곡’ ‘무라니시’ 등은 동조 현상... 경쟁 아니라 윈윈 관계
‘킹덤’과 ‘바람의 검심’ 시청 데이터를 보면 차이점보다는 비슷한 점이 더 많다. 국가 별로 2~3위가량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체로 ‘킹덤’이 인기를 끈 지역에선 ‘바람의 검심’도 흥행에 성공했다. 두 작품 모두 80여 국가에서 10위권에 들었는데 그 중 79국이 겹쳤다. 자연히 인기를 끌지 못한 지역도 겹쳤다. 대표적인 국가가 영국. 둘 다 공개 이후 11일 현재까지 한 번도 인기 순위 10위 안에 들지 못했다. 영국에 4년째 거주 중인 이연수씨는 “영국에서 일본 만화나 K팝 모두 주류 문화라기보다는 소수의 팬층이 열광하는 ‘서브컬처’로 보는 분위기가 강해서 일본과 한국 콘텐츠 모두 큰 관심은 끌지 못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좀 더 시청 주기가 긴 TV드라마에서도 한·일 콘텐츠 간 동조 현상이 뚜렷하다. 최근 종영한 TV조선 드라마 ‘결혼 작사 이혼 작곡’은 일본을 비롯, 홍콩, 싱가포르, 대만, 베트남 등 11국에서 시청 순위 10위 안에 들었다. 일본 드라마 ‘살색의 감독 무라니시’가 10위 안에 든 국가도 거의 비슷했다. 지난달 가장 인기 있었던 한국 드라마 5편과 일본 드라마 5편을 비교한 결과 인기를 끈 나라의 80%가량이 겹쳤다. 한국 드라마 중에는 중동에서도 인기를 끈 작품들이 있었지만, 한·일 양국의 드라마 모두 유럽이나 미주 대륙 공략에는 실패했다. 지난 주에 넷플릭스에서 전 세계 드라마 시청 순위 8위에 오른 한국 드라마 ‘알고있지만’도 미국이나 유럽 등 서구 국가 중에서 10위 안에 든 나라는 없었다. 문화평론가 김헌식씨는 “한국과 일본이 대외적으로 라이벌 의식을 가질지 몰라도 제 3자의 시선에서 보면 문화적 이질성보단 동질성이 더 큰 나라들”이라며 “한·일 콘텐츠 업계는 미국이나 유럽의 한류 팬덤이 일본 콘텐츠도 함께 소비하고, 일본 문화 마니아들이 한국 콘텐츠를 찾는 상호보완적인 ‘윈윈(win-win) 관계’에 가깝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