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 톱배우 황정민도 못 살린 아마추어 탈출극 [쿡리뷰]
영화 '인질' 포스터
[쿠키뉴스] 이준범 기자 = 황정민으로 시작해서 황정민으로 끝난다. 영화 ‘인질’(감독 필감성)은 현실에 존재하는 배우를 그대로 극중 인물로 등장시켜 혼란을 준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 황정민은 우리가 아는 배우 황정민이다. 황정민으로 만든 리얼리티 위에서 목숨이 위태로운 스릴러와 탈출하는 과정을 담은 액션이 펼쳐지는 독특한 설정이 돋보인다. 좋은 출발로 품은 기대감은 영화가 향하는 구태의연한 방향성에 묻혀 열기가 빠르게 식는다.
서울 한복판에서 톱스타가 납치됐다. ‘인질’은 신작 제작보고회 행사를 마치고 홀로 퇴근하는 배우 황정민(황정민)의 발걸음에서 시작한다. 편의점에서 마주친 불량한 청년들이 문제였다. 비틀거리며 골목길을 걷는 황정민을 납치해 자신들의 아지트로 데려간 이들의 정체는 같은 교도소 출신 살인범 집단이다. 의자에 묶여 거액을 입금하라고 협박받는 황정민은 그곳을 탈출할 수 있을까.
처음부터 끝까지 황정민에게 기대는 영화다. 그가 현실에서 쌓아온 출연작과 각종 명대사는 물론 유명세와 존재감, 연기력이 영화의 상당 부분을 담당한다. 그렇다고 그의 시점을 따라가는 원톱 주인공 영화는 아니다. 인질범 무리의 분량과 스토리가 상당하고 경찰의 모습도 계속 조명된다. 황정민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 위에서 탄생한 영화고, 그가 깔아준 판에서 다른 배우들과 이야기가 뛰어 논다. 늘 그랬듯 영화에 집중시키는 연기력만큼은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황정민이 프로페셔널한 모습으로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것과 달리 인질범들은 아마추어다. 양 쪽의 밸런스가 무너져 김이 빠진다. 인질범들이 황정민을 납치한 이유는 황당하고 그 이후 대처는 실망을 자아낸다. 경찰을 따돌리는 솜씨는 뛰어나지만, 행동을 저지르고 수습하는 논리가 얄팍하고 충동적이다. 거기에 영화는 황정민보다는 인질범들의 사연과 관계를 보여주는 것에 긴 시간을 할애한다. 별로 궁금하지 않을 뿐 아니라, 범죄자 옹호를 이렇게 열심히 할 일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현실을 반영해 황정민이 연기력과 액션 경력을 무기로 영리하고 긴장감 넘치는 탈출극을 벌이는 이야기가 더 재밌지 않았을까.
유능한 경찰과 무능한 경찰이 벌이는 수사 과정까지 이르면, 관객은 길을 잃는다. 이입할 대상이 없다. 애초에 톱스타인 황정민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먼 존재고, 이 장르극에서 경찰이 범인을 잡을 거라 믿는 관객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범죄자 편을 들 수도 없는 상황. 할 수 있는 건 그저 이야기를 멀리서 지켜보는 것뿐이다.
현재 관객들이 공감할 만한 주제의식과 트렌드는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생계형 범죄자들이 아무 계획 없이 유명인을 납치하는 안일한 장르극을 보고 있으면 10년 전 개봉한 영화라고 해도 믿을 법하다. 몇 없는 여성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 아무 잘못 없이 고통 받고 소비되는 모습을 우린 2021년 여름에 보고 있다. 유명 배우를 실제 이름으로 등장시킨 넷플릭스 ‘차인표’와 끔찍한 살인범이 동네를 뛰어다니는 영화 ‘추격자’(감독 나홍진)가 떠오르는 영화다. ‘추격자’는 2008년 영화다. 김재범, 류경수, 이유미, 이호정 등 관객들에게 낯선 젊은 배우들에게 과감하게 기회를 준 건 의미가 있다.
오는 18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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