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과 서사 사이, 리암 니슨 표 액션의 정수 만나다
▲ 영화 <아이스 로드> 포스터.? ⓒ 스튜디오산타클로스
우리나라 나이로 올해 70이 되는 배우 '리암 니슨', 1980년대 배우로 본격 데뷔하기 전 연극 무대에서 활약했고 교사와 복서로서의 직업을 갖기도 했다고 한다. 그는 80년대 <미션> 등 이런저런 영화에 얼굴을 내밀었지만 이름을 알리지 못했고, 90년대 들어 <다크맨>으로 이름을 알리더니 1993년 대망의 <쉰들러 리스트>로 단번에 대배우 반열에 올랐다. 이후 <마이클 콜린스>로 베니스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스타워즈> 시리즈의 새로운 시작과 함께했다.
2000년대 들어 전성기가 시작되는데, <러브 액츄얼리> <킹덤 오브 헤븐> <배트맨 비긴즈> 등에 주연으로 나왔다. 그리고, 2008년 대망의 <테이큰>으로 제2의 전성기 아니, 제1의 전성기를 열어젖혔다. 2010년대 내내 5060 중년 나이에 '액션 장인'으로서 수많은 액션 영화에 원톱 주연으로 극을 이끈 것이다. 여전히 괜찮은 연기 실력, 중후한 분위기, 특유의 액션까지 어울어져 리암 니슨만의 액션 장르를 개척해 냈다. 비록 거대한 성공을 거둔 <테이큰>의 아류 같은 작품이 많았지만 그래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2010년대 들어 리암 니슨은 한 해도 거르지 않은 건 물론 한 해에 많게는 다섯 작품씩 출연한 적도 있을 정도로 정력적으로 연기에 임했는데, 2020년대에 들어서서도 다름 없었다. 한국 기준으로 2021년에만 세 작품에 출연했는데, <아이스 로드>가 최신작이다. 미국에선 넷플릭스로 영국에선 아마존 프라임으로 공개된 이 작품은, 우리나라에선 극장 개봉을 택했다. 그의 마지막일지 모르는 액션 영화 <아이스 로드>는 어떤 작품일까.
해빙기의 빙판 길을 달려 광부들을 구출하라!
미국과 인접한 캐나다 중앙의 매니토바주, 다이아몬드 광산 폭발로 광부 8명이 숨지고 26명이 갱도에 갇힌다. 이들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뿐. 대형 트럭이 구조용 파이프를 싣고 30시간 안에 해빙기에 접어든 4월의 위니펙 호수 482km를 주파해야 한다. 너무 빠르지도 너무 늦지도 않게 일정한 속도로 가야 한다. 32.5톤의 트럭 3대로 말이다.
운전사 마이크는 이라크 파병 후유증으로 실어증을 얻게 된 정비사 동생 커티와 함께 8년 동안 11번 직장을 옮겨 가며 연명하고 있다. 위험하기 이를 데 없지만 큰돈을 얻을 수 있기에 이들 형제는 구조팀에 지원했다. 그들은 세 트럭 중 한 대를 맡고, 다른 한 대는 수송회사 오너 골든로드가 맡았으며 또 다른 한 대는 여성 멤버 타투와 광산 회사 쪽 사람이 맡기로 했다.
그런데 아이스 로드를 달리는 세 트럭에 사고가 속출한다. 해빙기에 접어든 빙판 길이 제대로 버텨 줄 리가 만무하지 않는가. 그런가 하면, 함께하는 사람들 사이도 크게 틀어진다. 누군가가 배신 또는 계획에 의한 의도적 술수를 쓴 것이다. 한편, 갱도에 갇혀 목숨이 경각에 달린 26명의 광부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을 두고 둘로 갈라선다. 과연, 마이크와 일행은 아이스 로드를 무사히 건너 26명의 광부를 살릴 수 있을까.
은근히 괜찮은, 킬링 타임 영화
막상 뚜껑을 여니, '반드시 아무 생각 없이 봐야만 하는 킬링 타임 영화'의 전형이자 대명사에 가까웠다. 미덕이라면, 듣기만 해도 흥미진진한 설정을 꽤 잘 살렸다는 점과 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어느 정도 충분한 리암 니슨의 존재와 숨조차 잘 쉬어지지 않는 한여름의 초입에 영하 50도에 달하는 아이스 로드 위에서의 사투를 그린 작품을 개봉시켰다는 점 등이다.
반드시 시간 내에 지나가야 하는데, 한 번 빠지면 영원히 나오기 힘들 지 모를 호수 위 방핀의 두께는 불과 75cm 빙판이다. 하필 슬슬 빙판이 녹기 시작하는 4월에 말이다. 무조건 사건 사고가 벌어지기 마련, 어떤 식일지는 상상이 가니 어떻게 그려 낼지가 관건이겠다.
그럴 때 필요한 게 리암 니슨의 존재가 아닌가 싶다. 포커스를 그에게로 쏠리게 하여, 재난 상황을 헤쳐 나가는 믿음직한 인간상의 사투를 보여 주면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재난은, 자연재해뿐만 아니라 나쁜 인간의 출현도 있을 테다.
아쉬운 점은 뛰어난 액션의 부재와 가끔씩 개연성이 급격히 무너지는 전개에 있다. 하여, 설정의 잠재력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채 액션과 서사와 재난 어느 한 면에서도 특출나지 못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이 있지만, 적어도 이 영화를 볼 땐 숲을 보지 말고 나무를 보길 권한다. 흥미진진한 재미를 유발하는 장면장면에 충실히 몰입하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면에 다다라 있을 것이다. 이런 종류의 리암 니슨 표 영화를 다음에 또다시 볼 거라고 생각되진 않지만, 이 작품이 여러 모로 매력적이었다는 건 인정하고 지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