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1.07.31 11:00
- 호수 1659
《킹덤: 아신전》과 《방법: 재차의》
좀비가 콘텐츠의 중심 소재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한국에 대중적 좀비 열풍을 불러온 천만 영화 《부산행》(2016), 최근 몇 년 사이 빠르게 자리 잡은 OTT 서비스의 영향이 크다. 특히 2019년 첫 시즌을 선보인 넷플릭스 《킹덤》 시리즈는 역병이 창궐한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K좀비’의 위상을 세계에 알린 일등공신이다. 이제 좀비 콘텐츠는 단순히 개별 작품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지난 7월23일 넷플릭스에서 공개한 《킹덤: 아신전》(이하 《아신전》)과 28일 극장 개봉한 《방법: 재차의》(이하 《재차의》)가 그 예다. 두 편 다 스핀오프(오리지널 콘텐츠를 바탕으로 새롭게 파생돼 나온 작품) 형태다. 전자는 《킹덤》의 두 번째 시즌 말미에 등장한 인물 아신(전지현)의 92분 분량 외전이며, 후자는 지난해 tvN에서 방영했던 12부작 드라마 《방법》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각각 극장용 영화와 TV 드라마 등 경계를 구분 짓지 않고 폭넓은 세계관을 그려 간다는 점에서 인상적인 시도지만, 아쉬움도 적지 않다.
시리즈의 가교에 그친 《아신전》
《아신전》의 주인공 아신(전지현)은 《킹덤 2》의 마지막 장면에서 처음 등장했다. 역병을 일으키는 생사초의 기원을 쫓던 이창(주지훈)과 서비(배두나)가 당도한 북녘땅, 그곳에서 일행이 마주친 인물이 바로 아신이다. 단 한 장면뿐이었지만 톱스타 전지현의 출연만으로도 엄청난 화제가 됐다. 그리고 그 존재감 넘치는 등장은 《아신전》을 향한 기대로 고스란히 이어졌다. 생사초의 비밀은 무엇인가. 아신이라는 인물은 시리즈와 어떻게 연결될 것인가.
시간 순으로 시리즈를 배열하면 《아신전》은 가장 앞에 놓인다. 조선에 역병이 퍼지기 한참 전의 일이다. 이야기는 아신의 어린 시절부터 출발한다. 소녀 아신(김시아)은 ‘성저야인’이라 불리는 부락의 아이다. 압록강을 기점으로 조선군과 여진족이 대치하던 때, 야인들은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폐사군이라는 출입금지 지역 주변에 살고 있다. 백정으로 살아가는 아신의 아버지 타합(김뢰하)은 조선의 밀정으로, 압록강 일대에서 조선의 치안을 담당하는 북방의 수문장 민치록(박병은)의 소식통 노릇을 한다.
아신은 죽어가는 어머니를 살리기 위한 방편을 고심하다 우연히 벽화에서 생사초를 발견하게 된다. 죽은 자를 되살린다는 풀. 아신은 생사초를 구하기 위해 폐사군에 드나들기 시작하고, 그 즈음 동물들 사이에서 먼저 역병이 퍼진다. 괴물이 된 호랑이가 조선족과 여진족 모두를 위협하는 사이, 아신은 정치적 이해관계의 음모 안에서 아버지와 부족 모두를 잃고 혼자가 된다. 이후 그는 조선군의 노역을 담당하는 삶을 살기 시작한다.
《아신전》의 진짜 이야기는 성인이 된 아신의 각성으로부터 나온다. 아신은 시리즈의 기존 인물들과는 욕망이 확연하게 다르다. 그는 이창과 서비처럼 세상을 구하려는 영웅이 아니며, 조씨 가문처럼 권력을 탐하지도 않는다. 아신을 움직이는 동력은 복수심이다. 굴욕적인 세월을 견뎌왔던 아신은 부족 몰락의 진실을 접한 후 전사가 된다. 생사초의 비밀을 알고 있는 그의 분노가 가서 닿는 곳은 결국 조선 전체다. 그렇게 《아신전》의 이야기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역병이 돌기 시작했던 《킹덤》의 시작점과 맞물리게 된다.
복수심에 불타는 여성 안티 히어로의 탄생은 흥미롭다. 일말의 동정 없이 살육자가 된 그가 지붕 위에 우뚝 서서 화살을 겨누는 풍경은, 이후 그가 걸어갈 길에서 생길 수많은 충돌을 기대하게 한다.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다뤄진 적 없는 북방민족들의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각본의 시도 역시 눈길을 끈다. 다만 《아신전》은 새로운 인물의 배경을 소개하고 이후 상황을 예고하는 차원에 그치고 만다. 특유의 액션 시퀀스 쾌감은 덜하고, 분량과 활약 면에서 전지현의 등장 역시 예상보다 소극적이다. 외전이라기보다 오히려 새로운 시즌의 오프닝 에피소드로 더욱 적절해 보이는 인상이다. 이 작품의 진정한 평가는 이후 찾아올 시즌 3에 이르러 더 확실해질 것 같다. 아신을 포함한 여진족의 부족 ‘타저위’의 족장 아이다간(구교환) 등의 인물을 어떻게 활용하며 기존 세계관과 연결하느냐의 숙제가 남는다.
세계관 넓힌 《재차의》의 한계
지난해 방영한 드라마 《방법》은 한자 이름과 사진, 소지품만으로 상대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저주인 방법(謗法)을 다뤘다. 이 오컬트 스릴러가 좀비 소재를 만나 확장한 것이 바로 영화 《재차의》다.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기에 주인공도 동일하다.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기자 진희(엄지원)와 몸에 악귀를 가둔 채 종적을 감춘 방법사 소진(정지소)이 서사의 중심에 있다. 한 남자가 되살아난 시체를 뜻하는 재차의(在此矣)를 통해 세 번의 살인을 예고하고, 진희는 이 모든 사건에 굴지의 제약회사가 숨기고 있는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아낸다.
《부산행》을 연출하고 《방법》의 극본을 썼던 연상호 감독이 이번 영화 역시 시나리오를 담당했고, 드라마에 이어 김용완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조선 중기의 고서 《용재총화》에 등장하는 요괴의 일종인 재차의는 엄밀히 말해 좀비와 구분되지만, 시체가 괴물의 형태로 되살아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다. 감당할 수 없는 힘을 지닌 존재들 앞에서 칼과 총 같은 인간의 무기는 무력하다. 방법에 대항할 수 있는 건 오직 방법뿐이다.
방법사 캐릭터를 통해 아시아의 괴담을 다루는 연상호의 극본은 《방법》 세계관의 중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웹툰으로 커리어를 시작한 것은 그의 장점이다. 만화적 상상력이 영상으로 펼쳐지는 순간, 어디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시각적 쾌감이 연출된다. 이번 영화에서는 도로를 내달리는 차 위로 날아들 듯 공격하는 재차의 무리를 보여주는 장면이 탄생하는 식이다. 하지만 그 외의 뚜렷한 장점은 찾아보기 어렵다. 선택의 딜레마 없이 단선적으로 연출된 행동 범위 안에서 인물들이 제각각의 톤으로 각자의 사연을 펼치는 탓이 크다. 이야기의 밀도 자체가 떨어진다는 얘기다. 기존 팬들에게는 나름 반가운 작품이 되겠지만, 이 영화로 새로운 팬층의 유입이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결국 《재차의》 역시 플랫폼의 벽을 넘어 세계관을 확장했다는 의의 정도에 그치고 만다.
아쉬운 시도들에도 좀비 콘텐츠는 계속해서 폭넓은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일종의 바이러스에 의한 전염을 다룬다는 점, 비뚤어진 욕망으로 가득한 사회의 천박한 면을 은유해 고발한다는 장르적 특징은 불확실한 타인을 향한 불안이 점점 더 커지는 시대를 정면으로 관통하기 때문이다. 좀비라는 판타지 캐릭터가 아이러니하게도 실제 세계의 불안과 혼란을 가장 정확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치가 되고 있는 셈이다.
이하 원문 기사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