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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소식[왓칭] 멋모르고 야쿠자 들어갔다가... 인생 나락 떨어진 한 남자 이야기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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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숲속의새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신고 회원메모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movieli.st 작성일21.07.15 17:35 5,001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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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칭] 멋모르고 야쿠자 들어갔다가... 인생 나락 떨어진 한 남자 이야기

  

영화 '야쿠자와 가족'./넷플릭스
 
 영화 '야쿠자와 가족'./넷플릭스

한때 일본 마피아 조직을 ‘총을 든 골드만삭스(Goldman Sachs with guns)’라 불렀다. 연 수입만 800억 달러(2014년 기준·한화 86조 840억원)를 굴리며 글로벌 폭력배로 군림하던 시절 얘기다. 조직원 십수 만명을 이끌던 1960~80년대의 최전성기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지하 경제를 주름잡고 도박하듯 일본 주식시장을 쥐락펴락하며 세계 5대 범죄조직 중 가장 큰 경제규모로 성장하기도 했다.

제아무리 위세 당당한 야쿠자라도 흘러가는 시간 앞에선 속절없다. 밖에선 맹렬하게 위상을 과시했지만, 내부에선 정부 제재와 고령화로 위기감이 팽배했다. 2004년에 이미 최대 야쿠자 조직 ‘야마구치구미’의 하위조직 두목 평균 연령이 62세에 달해 퇴직금 조달에 비상이 걸렸단 보도가 나올 정도였다. 2015년엔 처음으로 일본 전역 야쿠자 조직원이 5만명 아래로 떨어졌고, 50대 이상 조직원이 30%를 넘었다.

일본에서 야쿠자는 더 이상 젊은이들에게 동경이나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다. 대담한 범죄행각으론 이미 MZ세대 폭력배인 한구레(半グレ)에 밀렸고, 각종 규제로 손발이 묶여 끌려 다니는 신세다. 지난해 야마구치구미 두목의 집에 몰래 잠입한 킬러는 일흔여섯의 노인이었다. 젊은 야쿠자가 워낙 귀하다 보니 감옥에서 생을 마감할 수 있는 초고령 조직원들을 킬러로 쓴다. 일본 경시청 발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일본 열도 전역에 야쿠자는 약 1만 4400명뿐이다. 최근엔 코로나로 조직이 더 위축됐다.


영화 '야쿠자와 가족'의 일본 3대 야쿠자 하위조직 '시바자키구미'./넷플릭스
 
 영화 '야쿠자와 가족'의 일본 3대 야쿠자 하위조직 '시바자키구미'./넷플릭스

올해 1월 일본에서 개봉한
 영화 ‘야쿠자와 가족’은 현 시점 야쿠자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춘 영화다. 야쿠자의 전성기를 기억하는 1999년, 과도기인 2015년, 늙고 쇠퇴해 겨우 명맥을 유지하는 2019년에서 현재까지. 세 세대를 야쿠자로 살아온 한 남성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에서 배제된 이들의 현실을 차분하게 그렸다.

배우 심은경이 출연했던 영화 ‘신문기자’의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과 연출부가 다시 뭉쳐 화제를 모았다. 일본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과 여우·남우주연상 등을 휩쓴 그 영화다. 후지이 미치히토 감독은 “‘신문기자'의 성공이 어떤 의미에서 서프라이즈였다면, 이 작품 ‘야쿠자와 가족’은 진짜 승부”라고 했다. 사회 고발 성격을 띤 전작처럼 이번 작품도 야쿠자 출신 작가의 도움을 받아 논픽션에 가깝게 고증했다.

‘의리없는 전쟁’ 시리즈나 ‘아웃레이지’처럼 무자비하고 격렬한 폭력, 배신에서 복수로 이어지는 잔혹함을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 있다. 그보다 후반부에서 폭발하는 처량하고 쓸쓸한 정서가 주를 이룬다. 주연배우들의 연기도 일본 배우들 특유의 허공에 붕 뜬듯한 느낌 없이 묵직하다.

※이 글엔 영화 ‘야쿠자와 가족’의 약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넷플릭스 '야쿠자와 가족'. 1999년 야쿠자 두목을 만난 야마모토 겐지./넷플릭스
 넷플릭스 '야쿠자와 가족'. 1999년 야쿠자 두목을 만난 야마모토 겐지./넷플릭스

1999년, 이 시점 야마모토 겐지(아야노 고)는 당장 폭발할 듯 위태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어머니는 원래 없고, 증권맨이던 아버지는 버블 붕괴 후 마약에 손을 댔다가 목숨을 잃었다. 홀로 된 그에게 손을 내민 건 일본 3대 야쿠자 쇼오카이의 하위 조직 ‘시바자키구미’의 두목 히로시(타치 히로시). 겐지는 그와 부자의 연을 맺기로 다짐한다. 그에게 야쿠자는 가족이자 삶의 방식이다.

2005년 등 뒤에 야쿠자 문신을 새긴 겐은 이제 시바자키구미의 중간보스다. 일본 경제는 회복 중이고, 사업도 순탄하게 굴러간다. 자신처럼 가족이 없는 술집 호스티스와 마음이 통해 평범한 가정을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행복은 짧았다. 형제 같던 조직원이 살해당하며 겐지의 인생에도 큰 균열이 생긴다.

2019년, 조직을 위해 14년간 복역한 겐은 어느새 중년 남성이다. 차를 타고 도시를 지나며 그가 본 세상은 높고 화려한데, 그가 몸담았던 시바자키구미의 건물은 14년 전 모습 그대로다. 금박 칠이 벗겨져 흔적만 남은 대문은 상징적이다. 조직엔 나이 든 원로들만 남았다.

영화 '야쿠자와 가족'. 2005년의 야쿠자 중간 보스가 된 야마모토 겐지./넷플릭스
 영화 '야쿠자와 가족'. 2005년의 야쿠자 중간 보스가 된 야마모토 겐지./넷플릭스

영화 러닝타임의 절반이 2019년에 몰려 있다. 1999년과 2015년은 2019년의 묘사를 위한 발판이다. 영화는 버블 붕괴 후
1992년 시행된 폭력단 대책법(이하 폭대법)이 야쿠자의 생태계에 미친 영향을 충실히 그려낸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폭력단 배제 조례가 전국에 완비되면서 야쿠자는 사회적으로 철저하게 고립된다.

이젠 야쿠자에 한 번이라도 발 담갔던 이들은 정상적인 사회인으로 뿌리내릴 수 없게 됐다. 전진해도 죽고 물러서도 죽는 처지다. 정부의 야쿠자 명단에 이름이 오르면 휴대폰도 개통할 수 없고, 은행 계좌 개설이나 부동산 계약, 보험 가입 등이 모두 금지된다. 야쿠자를 탈퇴해도 5년간 조직원으로 간주한다. 야쿠자의 아이는 유치원에도 들어갈 수 없고, 야쿠자란 사실이 적발되면 부모와 처까지 직장을 다닐 수 없다.

영화 '야쿠자와 가족'에서 아마추어 격투기 선수로 '한구레' 생활을 하는 츠바사./넷플릭스
 영화 '야쿠자와 가족'에서 아마추어 격투기 선수로 '한구레' 생활을 하는 츠바사./넷플릭스

영화에서 위풍당당하던 조직원들이 몰래 마약을 팔거나 늦은 밤 바다에서 이마에 후레쉬를 달고 장어 치어를 몰래 잡아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모습은 씁쓸한 웃음을 남긴다. 우스꽝스럽게 묘사됐지만 모두 현실이다. 실제 일본에선 야쿠자 조직원들의 불법 어로와 관련해 두목을 어업법 위반으로 체포하는 일이 종종 있다. 100만원을 벌기 위해 멜론 서리를 하거나 슈퍼마켓에서 쌀을 훔친 야쿠자 이야기도 뉴스에 나온다.

“아저씨, 이제 당신들 세상이 아냐”. 영화 속 야쿠자는 새파란 MZ세대 폭력배들에게도 대놓고 무시당하지만 갚아줄 방법이 없다. 야쿠자는 정부의 ‘지정 폭력단’으로 지정돼 문신을 보여주며 위협하기만 해도 현장에서 체포된다. 반면 일본의 새로운 폭력 세력 ‘한구레(半グレ)’는 점조직으로 운영돼 잡기 어렵고 법적 제약이 없어 무적이다. 한 세대가 저물어가는 모습은 비단 야쿠자만의 일은 아닌듯하다.


영화 '야쿠자와 가족'에서 야마모토 겐지의 연인 '유카' 역을 맡은 오노 마치코./넷플릭스
 영화 '야쿠자와 가족'에서 야마모토 겐지의 연인 '유카' 역을 맡은 오노 마치코./넷플릭스

영화는 이들의 이야기를 ‘가족’으로 풀어낸다. 사회에 복귀한 겐이 원하는 건 그저 성실하게 일하고 정직한 인간이 되는 것이었다. 과거 연인을 찾아가 참회하고 가정을 꾸리려던 겐은 의도치 않게 그들을 나락으로 내몬다. 어느 곳에도 가족으로 뿌리내릴 수 없는 야쿠자의 현실이다. ‘인과응보’지만, 가혹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영화에서 야쿠자 특유의 문화와 범죄를 미화하거나 낭만적으로 포장하려는 시도는 보이지 않는다. 감독은 “야쿠자는 현대 사회의 리얼한 축소판으로 지금이야말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안 되는 테마”라고 했다. 다만 영화에서 야쿠자 조직이 폭력배보단 단란한 ‘가족’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지점은 불편할 수 있다.

한번 야쿠자에 발들인 사람은 가족까지 갱생 불가의 굴레에 묶여야 하는가. 감독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진다. 그는 “사람은 얼마든지 몇 번이고 원하는 만큼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자신의 인생을 가지고 구현하려는 사람들을 배제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실제 일본 일부 도시에선 야쿠자들에게 사회 재진입의 기회를 주는 각종 복지 제도를 운영하고 있지만, 여전히 반대가 많다.

영화 '야쿠자와 가족'./넷플릭스
 영화 '야쿠자와 가족'./넷플릭스

주연배우 아야노 고는 드라마 ‘최고의 이혼’과 영화 ‘크로우즈 제로2’ ‘분노’ ‘립반 윙클의 신부’ 등으로 알려진 배우다. 이번 영화에서 그는 눈빛, 걸음걸이, 어깨의 높이로 20대와 40대의 주인공을 완벽하게 분리했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 ‘분노’에서 아야노 고의 연기를 보고 내뱉은 표현을 빌리고 싶다. 그는 이 영화에서도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상처’같다.

일본 야쿠자 영화의 전형을 벗어나는 전개를 보이면서도 여성 캐릭터들에게 전혀 서사를 부여하지 않은 점은 아쉽다. 여성을 전형적인 술집 여자, 한때 인연을 맺은 야쿠자 남성을 무한히 품어주는 모성애적 이미지로만 활용한 점은 영화의 한계다.

개요 영화 l 일본 l 2021 l 2시간 15분

등급 18세 관람가

특징 미화 없는 현실, 일본은 어떻게 야쿠자의 씨를 말렸나

평점 로튼토마토?86% IMDb⭐7.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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