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현의 엔터인사이드] 틀면 나오는 백종원, 전성기 vs 위기
일주일 내내 백종원 콘텐츠, 대세인걸까 쏠림일까
바야흐로 백종원 전성시대다. 거의 일주일 내내 백종원이 출연하는 이른바 '백종원 콘텐츠'가 방영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런데 이건 과연 전성시대를 말해주는 지표일까. 아니면 지나친 쏠림과 소비 과잉으로 인한 위기의 징후일까.
◆백종원 콘텐츠, 일주일 내내 갖가지 플랫폼 차지
백종원이 방송에 처음 모습을 보인 건 2010년 즈음이다. 하지만 그가 본격적인 방송의 아이콘이 된 건 2015년이다. 그 해에 그는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과 SBS '백종원의 3대천왕' 그리고 tvN '집밥 백선생'으로 단 1년 만에 확고한 자신의 존재감을 세웠다.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 그가 요리연구가만이 아닌 방송인으로서도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는 걸 보여줬다면, '백종원의 3대천왕'은 먹방, '집밥 백선생'은 쿡방으로 그를 음식 관련 콘텐츠의 '블루칩'으로 등극시켰다.
이후 SBS '백종원의 푸드트럭'에 이은 '백종원의 골목식당'으로 그의 또 하나의 전문분야라 할 수 있는 음식점 솔루션 프로그램을 세웠고, tvN '스트리트 푸드 파이터'는 글로벌 푸드로까지 그 영역을 넓혔다. 이제 우리는 이른바 '백종원 콘텐츠'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그의 다양한 음식 관련 콘텐츠들에 익숙해졌다. 그가 출연하면 어떤 특별한 기대감이 생겨날 정도다.
그래서일까. 최근 방송가를 들여다보면 백종원 콘텐츠는 일주일 내내 갖가지 플랫폼을 섭렵하고 있다는 걸 발견하게 된다. 월요일에 KBS '백종원 클라쓰', 수요일과 목요일에 SBS '백종원의 골목식당'과 '맛남의 광장', 금요일에 JTBC '백종원의 국민음식'이 방영되고 있다. 지금은 종영했지만 한때는 토요일에 MBC '백파더'도 시청자들의 시선을 끌었다.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도 예외는 아니다. 티빙에서는 '백종원의 사계'라는 오리지널 콘텐츠를 선보이고 있고, 넷플릭스 역시 '백스피릿'이라는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이러니 '백종원의 전성시대'라는 이야기가 적잖게 들려온다. 양적으로 보면 거의 매일 TV에 그 얼굴이 보이고, 그가 먹는 음식들이나, 요리하는 음식들이 시청자들의 식욕을 자극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건 과연 그의 전성시대를 말해주는 걸까. 양적으로 팽창한 '백종원 콘텐츠'가 너무 비슷한 내용과 소재를 반복하고 있다는 비판적인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런 방식의 양적 팽창은 백종원 콘텐츠의 빠른 소비로 이어져 결국 모든 콘텐츠들이 식상해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다. 무엇이 이런 상반된 관점을 만들고 있는 걸까.
◆'골목식당', '맛남의 광장', 이미 정체된 기존 예능의 한계
백종원 콘텐츠의 위기설이 솔솔 피어나는 가장 큰 원인은 기존에 그가 하고 있던 예능 프로그램들이 새로운 동력을 찾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다는 점이다. '백종원의 골목식당'과 '맛남의 광장'은 대표적이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골목상권을 살린다는 좋은 취지에 '솔루션 프로그램'이라는 색다른 관전 포인트로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굉장히 뜨거운 프로그램으로 자리했다. 포방터 시장 편에서 돈가스 장인의 미담과 홍탁집 아들의 개과천선 스토리는 가장 강력한 이 프로그램의 성공요인이 됐다.
하지만 그 후로 '백종원의 골목식당'은 유사한 스토리의 패턴에 갇혀가는 모습을 보였다. 미담과 빌런이라는 양극단의 스토리가 반복되면서, 예상 가능한 테두리 안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들은 흥미를 잃어버렸다. MC 정인선을 금새록으로 교체하면서 무언가 일신하려는 노력을 보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새로운 이야기나 동력을 찾지는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코로나19도 '백종원 콘텐츠'에 미친 영향이 컸다. '백종원의 골목식당'도 소비자들의 참여가 쉽지 않은 코로나19로 상황으로 어려움을 겪었지만, 특히 '맛남의 광장'처럼 아예 '광장'에서의 만남을 추구했던 프로그램은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지역 특산물을 살리겠다는 좋은 취지와 유통까지 연결해 소비자들이 집 근처에서 그 특산물을 바로바로 소비할 수 있게 해준 '좋은 의도'는, 그러나 광장에서 더 이상 모일 수 없는 코로나19 시국을 맞아 한계를 드러냈다.
결국 특산물로 만드는 레시피 대결이나 온라인 판매 등으로 이 한계를 극복하려 했지만, 역시 직접 소비자와의 대면이 주는 감흥을 대체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 역시 출연자를 대거 교체했지만 역시 그 효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백파더'처럼 요리를 전혀 모르는 이들을 위해 가장 쉽게 레시피를 알려주는 프로그램이 등장하긴 했지만, 이미 레시피들이 인터넷에 넘쳐나는 시국에 굳이 왜 이 프로그램을 봐야하는가에 대한 이유를 제시하진 못했다. 결국 생방송이라는 초강수를 뒀지만, 결국 '절반의 실패'로 끝나버렸다. 백종원 콘텐츠가 가진 위기감은 매주 방송을 하면서 비슷비슷한 내용들이 빠른 속도로 소비된 것과,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성공사례가 나오지 않으면서 생겨난 결과다.
◆'백종원 클라쓰', '백종원의 국민음식'의 익숙함
이런 사정은 최근에 새로 시작한 KBS '백종원 클라쓰'와 JTBC '백종원의 국민음식'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애초 KBS 첫 출격이라는 기대감을 줬던 '백종원 클라쓰'는 K콘텐츠가 글로벌한 인기를 끌고 있는 현재 K푸드와 요리를 외국인들에게 알려준다는 콘셉트로 시작했지만, 막상 방송은 생각만큼 신선하게 다가오지 못했다.
마치 '백파더'의 외국인 버전을 보는 듯한 이 프로그램은 방송의 재미 측면에서도 잘 만들어진 구성을 보여주지 못했고, 함께 하는 MC 성시경과 백종원의 합도 어딘가 시너지를 내지 못했다. 특히 외국인들에게는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우리네 시청자들에게는 너무 익숙한 요리 레시피들을 알려준다는 점이 큰 매력이 될 수 없었다.
'백종원의 국민음식'은 잘 만들어진 교양 프로그램이지만, 역시 이미 어디선가 봤었던 기시감이 드는 한계를 드러냈다. 이미 JTBC에서 방영된 바 있던 '양식의 양식' 같은 프로그램이나, '백종원의 골목식당' 등에서 가끔 소개되곤 했던 음식의 유래나 역사를 더한 먹방 같은 느낌이랄까. 우리나라에 정착해 독특한 K푸드로의 성장을 한 7개의 글로벌 푸드를 소개한다는 소재적 차원의 차별화는 있었지만, 그 이상의 색다른 매력을 찾기는 어려운 프로그램이었다.
한편 티빙이 오리지널 프로그램으로 방영하고 있는 '백종원의 사계'도 마찬가지의 한계를 드러낸다. 그가 늘 보여주던 먹방을 계절 음식 정도로 재구성한 프로그램이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넷플릭스가 오리지널 시리즈로 준비하고 있는 '백스피릿'은 술이라는 새로운 소재가 등장하고 '명사들과의 인생 토크'가 더해진다는 점이 기대감을 만들고 있지만 이 역시 그 결과를 장담하긴 어렵다.
대부분의 위기는 가장 전성기 때 생겨난다고 한다. 그것은 특히 우리네 방송가에서 자주 벌어지는 일이다. 누군가 한 명이 뜬다 싶으면 모든 방송사들이 그를 끌어다 프로그램들을 기획해 만들어내고 그러다 보니 비슷비슷한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그 콘텐츠 소비를 가속화하는 게 우리네 방송가의 현실이 아닌가.
그래서 틀면 나오는 백종원의 전성시대는 거꾸로 말해 그가 마주한 위기의 징후로도 읽힌다. 지금처럼 더 많이 등장하면 할수록 콘텐츠는 점점 식상해질 수 있는 상황을 맞고 있다. 이럴 경우 방송가에서 백종원에게 내릴 수 있는 솔루션은 잠시 쉬어가라는 것이다. 그것이 길게 보면 오히려 자기 브랜드를 더 오래 끌고 갈 수 있는 길이니까.
문화부 jebo@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