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나도 시즌제 드라마, 얘깃거리 없으면 역효과
민경원 기자
시즌제 드라마가 쏟아진다. 최근 한 달 동안 새로운 시즌에 돌입한 작품만도 SBS ‘펜트하우스 3’,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 2’, tvN ‘슬기로운 의사생활 2’와 ‘보이스 4’등 4편이다. 이 중 ‘보이스’는 2017~2019년 OCN 방영 당시 구축한 팬덤을 바탕으로 이번 시즌 tvN으로 채널을 옮겼다.
시즌3까지 제작한 펜트하우스
충격적 전개 남발, 시청률 반토막
다양한 에피소드 갖춘 ‘슬의생’
새 인물, 풍성한 이야기로 순항
이런 추리물이나 지난해 의학물 SBS ‘낭만닥터 김사부 2’처럼 시즌제는 특정 장르에만 통한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전방위로 확대하고 있다. 시청 층을 이미 확보한 만큼 시청률·화제성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지표로 보면 ‘펜트하우스’는 시즌3 시청률이 1회 19.5%(닐슨코리아 기준)로 시작해 5회(7월 2일) 16.5%로 하향 곡선이다. 지난 시즌1과 시즌2에서 각각 29.2%, 28.8%까지 오른 시청률이 반 토막 난 셈. 시즌을 거듭할수록 팬층이 확대하는 것과 달리 비난 여론이 드세지는 점도 눈에 띈다. 심수련(이지아), 주혜인(나소예), 배로나(김현수) 등의 죽은 캐릭터가 차례로 살아나며 이번 시즌에서 죽은 로건 리(박은석)와 오윤희(유진)도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시청자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간 충격적인 전개가 많아 이제 어떤 충격적 전개가 이어져도 아무도 믿지 않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피비(임성한) 작가의 복귀작이자 ‘펜트하우스’ 김순옥 작가와의 맞대결로도 화제를 모은 TV조선 ‘결혼작사 이혼작곡 2’는 반대로 지지부진한 전개에 발목을 잡혔다. 30대, 40대, 50대 부부의 불륜을 고루 내세웠지만 현재와 과거 시점을 오가며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서 지나치게 늘어진다는 평이다. 초반, 완벽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이를 전복하는 전개를 즐겨 보여주는 작가 특성상 이상향을 너무 세세하게 풀어내 완급 조절에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시즌2는 1회 시청률 4.9%로 시작해 7회 8.9%로 조금씩 오르지만, 시즌1 최고 시청률(9.7%)은 회복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시즌제 드라마에 대한 이해 및 준비 부족”이라고 분석한다. 넷플릭스·웨이브·티빙 등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보편화하면서 방송사마다 앞다퉈 시즌제 제작을 예고했지만 그에 걸맞은 이야기는 마련하지 못했다는 것.
공희정 드라마평론가는 “‘펜트하우스’와 ‘결혼작사 이혼작곡’ 모두 40~50부작 드라마를 편의상 잘라놓은 것에 불과하다”며 “‘펜트하우스’는 변칙 편성으로 제작 편의를 높였을 뿐 이야기가 확장된다거나 변화된 시대상을 반영하는 시즌제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펜트하우스’는 시즌마다 한두 달 간격을 두고 21부작 월화, 13부작 금토, 12부작 금요드라마 등으로 편성을 바꿨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펜트하우스’가 죽은 사람을 무리하게 계속 살리는 것도 그 뒤로 뻗어 나갈 이야기가 준비되지 않은 탓”이라고 짚었다. 반면 ‘슬기로운 의사생활’(이하 ‘슬의생’)의 경우 율제병원 배경의 의학 드라마를 토대로 극 중 의사인 99학번 동기 5명, 이른바 ‘99즈’의 사랑과 우정 등 주변 인물로 다양하게 관계가 확장돼 이야기가 풍성해진 점을 평가했다. 정 평론가는 “99즈는 병원 내에서도 각자 일하는 분야가 달라 환자 에피소드도 다양하고 밴드 활동 등 여러 줄기를 갖고 있다. 미드 ‘프렌즈’처럼 충분히 장수할 수 있는 포맷”이라고 평가했다. ‘슬의생’ 시즌 2는 tvN 드라마 첫방 최고 시청률(10.0%)로 시작해 순항 중이다.
국내 시즌제 드라마 도입이 초기인 만큼 더 많은 실험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CJ ENM 김종훈 IP사업부장은 “‘슬의생’은 기획 단계부터 시즌제를 염두에 둔 첫 사례”라며 “이전에는 tvN ‘응답하라’처럼 동일 브랜드 안에 있는 시리즈나 ‘비밀의 숲’처럼 시청률은 낮아도 화제성·충성층을 보고 추후 결정된 시즌제가 대부분이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슬의생’ ‘응답하라’ 시리즈의 신원호 PD와 이우정 작가처럼 꾸준히 프랜차이즈를 만들어가는 크리에이터가 나온다면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히트 IP(지적재산)가 쌓일수록 더욱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어 ‘보이스’같은 히트IP는 tvN으로 모으고 OCN에선 새로운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며 채널 전략도 전했다.
TV와 OTT의 경계가 사라지면서 시즌제 시도는 더 가속할 것으로 보인다. 정덕현 평론가는 “플랫폼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장르물이 대폭 늘었는데 반드시 시즌제에 유리한 것은 아니다. ‘보이스’ 의 경우는 뒤로 갈수록 더 센 악역이 등장해야 해 부담이 있다. 반면 tvN ‘마우스’는 되려 시즌제로 했으면 복잡한 이야기를 보다 간결하고 밀도 있게 풀어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희정 평론가는 “몰아보기가 보편적인 시청 방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무작정 회차를 늘리기보다는 이야기에 맞는 형태를 찾는 게 더 중요해졌다”고 짚었다. 그는 12부작으로 주1회 목요일 방송하는 ‘슬의생’, 10부작으로 주1회 토요일에 방송하는 JTBC ‘알고 있지만’ 등 편성 다양화를 언급하며 “기존에는 드라마로 제작하기 힘들었던 소재도 담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출처: 중앙일보] 너도나도 시즌제 드라마, 얘깃거리 없으면 역효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