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의 재판' SK브로드밴드 vs 넷플릭스 1심...쟁점은?
- 기자명 백연식 기자
- 입력 2021.06.25 07:30
접속료와 전송료의 개념 제시한 넷플릭스
SK브로드밴드 "접속 · 전송 구분 무의미"
[디지털투데이 백연식 기자]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망 사용료 분쟁에 대한 1심 판결이 25일 나온다.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2심 소송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망이용료 무임승차 논란을 겪고 있는 넷플릭스가 승소할 경우 통신요금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고, SK브로드밴드가 승소하면 넷플릭스는 물론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들이 구독료 인상으로 맞대응할 가능성이 있다.
SK브로드밴드 등 인터넷서비스제공사업자(ISP, Internet Service Provider)와 넷플릭스·페이스북 등 콘텐츠제공사업자(CP, Contents Provider)가 망이용료를 두고 갈등을 빚는 상황에서 이번 판결은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라 정보통신기술(ICT) 업계에서는 세기의 판결이라 불리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합의20부에 따르면 재판부는 25일 오후 넷플릭스 인코퍼레이티드 및 한국법인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가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낸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에 대해 선고할 예정이다. 선고 결과가 연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지난 7일 SK브로드밴드측이 법원에 변론재개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3차 변론기일에서 넷플릭스가 접속료와 전송료의 개념을 새롭게 제시했다.
넷플릭스의 법률 대리인을 맡은 법무법인 김앤장은 최근 변론기일에서 콘텐츠 전송은 통신사의 의무이기 때문에 자신들과 같은 CP는 ‘전송료’를 지불할 필요가 없고 자신들은 ‘접속료’만 지불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넷플릭스가 주장하는 접속료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콘텐츠를 업로드할 때 지불하는 금액이고 전송료는 도쿄의 오픈커넥트(Open Connect Appliances, OCA)에서 SK브로드밴드 망 이용자에게 전달될 때 발생하는 금액이다.
오픈커넥트란 ISP의 네트워크에 캐시 서버를 설치하고 인기 있는 콘텐츠를 새벽 시간대에 미리 저장해두는 방식이다. 넷플릭스는 일본, 홍콩 등 해외에서 한국으로 콘텐츠를 미리 옮겨두는 오픈커넥트를 활용하고 있어 국내 통신망에서 발생하는 이슈에 대한 추가적인 책임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에 대해 SK브로드밴드의 변론을 맡은 법무법인 세종은 접속과 전송은 분리할 수 없는 개념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애초에 ‘접속료’라는 개념 자체가 넷플릭스가 새롭게 만들어낸 것이라는 주장이다. 넷플리스의 접속과 전송의 구분 주장은 인위적이며, 인터넷망(사유재산)의 사용은 유상이 원칙이라는 입장이다. 국내·국제를 불문하고, 인터넷 서비스에 연결하는 것이 모두 접속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마치 고속도로에서도 경차와 덤프트럭의 통행료가 다른데 대량의 트래픽을 유발한 넷플릭스가 망 이용대가를 내지 않는다면 국내 이용자에게 네트워크 설비 투자비용이 전가되는 결과를 낳는다는 논리다. 또한 미국·프랑스 등에서도 망 사용료를 내고 있는데 국내에선 무료로 사용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국내 네이버나 카카오도 내고 있는 망 이용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있어 역차별이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넷플릭스측이 접속료와 전송료 분리라는 새로운 논리를 주장하면서 SK브로드밴드 역시 분주하게 맞대응에 나섰지만 3차 변론이 끝난 이후 제출하는 설명자료는 재판의 참고자료로만 활용될 수 있다.
SK브로드밴드 관계자는 “원고(넷플릭스)의 새로운 주장에 대한 반박 및 민사소송 절차상 필요에 따라 부득이 변론재개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변론 과정에서 넷플릭스 측의 법률 대리인인 김앤장은 ▲망중립성 원칙에 따라 망 이용은 무상이라고 주장하다가 ▲접속은 유상, 전송은 무상이라고 논리를 바꿨고 ▲마지막 공판에서는 인터넷 접속이라 하려면 글로벌 연결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SK브로드밴드 측의 법률 대리인인 세종은 ▲망중립성은 콘텐츠를 차별 없이 다뤄야 한다는 원칙이고 ▲국내외에서 접속과 전송을 구분한 사례는 없으며(캘리포니아주법만 예외) ▲접속의 유형은 다양하고 그 중 직접접속의 방식으로 SK브로드밴드의 전용회선을 이용하니 망이용 대가를 내는 것이 맞다고 반박했다.
다만, 어느 쪽이 승소하든 소비자에게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넷플릭스가 승소하면 앞으로 ISP가 넷플릭스 등 CP에게서 망 이용료 대가를 받지 못하면서 통신료 상승이 불가피할 수 있다.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시대가 오면서 국내의 경우도 넷플릭스 가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트래픽이 기하급수적으로 늘면서 ISP들의 망 설치 부담이 커지고 있다. 그 연장선상에서 이번 소송이 진행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SK브로드밴드는 넷플릭스로 인한 통신망 관리 어려움을 지속 호소해왔다. 앞서 SK브로드밴드는 2019년 11월 방송통신위원회에 넷플릭스와의 망사용료 갈등을 중재해달라는 재정신청을 냈다. 지난해에는 폭증하는 넷플릭스 트래픽을 감당하기 위해 3차례의 해외 망 증설에 나섰다. 반면 SK브로드밴드가 이기면 국내 통신사에 망 전송료를 내야 하는 넷플릭스가 보여주기 식으로 우리나라에서만 구독료를 올리는 방식을 취할 가능성이 높다.
만약 넷플릭스가 승소할 경우 이번 판결의 영향으로 넷플릭스뿐 아니라 유튜브 등 국내 통신사 트래픽의 70%가량을 차지하는 해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사업자들의 무임승차가 본격화 될 수 있다. 조만간 디즈니플러스, 아마존프라임 등까지 국내 OTT 시장에 들어올 경우 해외 OTT로 인한 막대한 트래픽이 발생하고, 이 과정에서 국내 통신사만 품질 유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존재한다.
법원이 넷플릭스 손을 들어줄 경우 문제는 ISP 전용회선을 쓰거나 인터넷데이터센터(IDC)에 입주한 국내 CP들도 ‘망 대가를 낼 필요가 없다’는 논리가 성립한다는 점에 있다. 이리되면 통신사로선 한 해에 1조 7400억 원(전용회선 4400억 원, IDC 1조 3000억 원, 2019년) 가량의 매출이 감소한다. 2019년 기준으로 초고속인터넷 매출이 4조7000억 원임을 고려했을 때, 최대 40%까지 초고속인터넷요금이 오를 수 있는 논리가 제기된다.
그러나 SK브로드밴드가 소송에서 이기면 네이버 등 국내 CP들은 지금과 차이가 없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제대로 된 비용 부담을 지지 않았던 넷플릭스 등 글로벌 콘텐츠사업자에 대해 통신 업계가 사용료 재협상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또 글로벌 콘텐츠사업자들이 재협상에 응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일명 ‘넷플릭스 망 무임승차 방지법(이하, 넷플릭스법)’ 재개정도 필요할 전망이다.
넷플릭스법의 현재 기준 대상 사업자는 구글, 넷플릭스,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 , 웨이브 등 6개 사업자로 이들 CP들이 서비스 장애를 일으킬 경우 정부는 해당 법을 적용해 ▲서비스 망안정성 확보 및 ▲이용자 보호 관련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정부는 현재 서비스 망안정성 의무를 부과하는 넷플릭스법을 만든데 이어 세부적인 가이드라인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다만, SK브로드밴드가 승소해도 넷플릭스가 부담해야 할 국제 회선 비용과 국내 망 이용 대가 규모는 넷플릭스의 국내 가입자(380만명 추정) 매출(4155억원 추정) 규모 대비 매우 미미한 수준일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지난해 10월 진행된 1차 변론기일에서 SK브로드밴드측은 넷플릭스가 제기한 ‘채무부존재 확인소송’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내용 등을 포함한 반소를 진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1심 선고 결과에 따라 항소 여부를 결정하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