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디즈니도 있는데 … CJ는 왜 OTT에 풀베팅할까
- 기자명 이혁기 기자
- 입력 2021.06.24 11:49
- 호수 446
CJ ENM이 OTT에 힘 쏟는 이유
뛰어난 콘텐츠 제작능력 입증
무궁무진한 OTT 가능성 내다봤나
CJ ENM이 OTT 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하겠다고 나섰습니다. 향후 5년간 5조원을 투입할 정도로 공격적인데, 세계 OTT 1위 기업 넷플릭스를 상대로 무모하게 도전하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나옵니다. 하지만 여기엔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콘텐츠 싸움에서 밀리지 않을 만한 제작능력을 갖췄기 때문입니다. OTT 산업의 잠재력을 내다본 혜안이란 분석도 있습니다. 더스쿠프(The SCOOP)가 CJ ENM의 투자 이유를 살펴봤습니다.
국내에서 예능·드라마·영화를 모두, 그리고 잘 만들 수 있는 제작사는 어디일까요? 이 질문에 업계 관계자들은 주저하지 않고 CJ ENM을 꼽습니다. ‘신서유기 시리즈(예능)’ ‘미스터 션샤인(드라마)’ ‘설국열차(영화)’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CJ ENM은 다방면에서 흥행작을 대거 보유하고 있습니다. 명실공히 국내 1위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죠.
이런 CJ ENM이 최근 ‘통 큰 투자’를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5월 31일 열린 간담회에서 강호성 CJ ENM 대표는 “국내 1위 엔터테인먼트 기업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적인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면서 콘텐츠 제작에만 5년간 총 5조원을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내비쳤습니다.
흥미로운 건 CJ ENM이 투자를 약속하면서 같은 CJ그룹 계열사인 OTT 기업 ‘티빙’을 콘텐츠 유통 플랫폼으로 내세웠다는 겁니다. 올해부터 3년간 4000억원을 티빙에 투입하겠다고 밝혔는데, 지난해 CJ ENM의 영업이익이 2721억원이었다는 점을 비교해 보면 투자 규모가 상당합니다. CJ ENM이 OTT 서비스를 키우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걸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죠.
하지만 국내 OTT 시장의 상황은 그리 녹록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해외 공룡 OTT 서비스인 ‘넷플릭스’의 장악력이 어마어마합니다. 2016년 1월 한국 시장의 문을 두드린 지 5년 5개월 만에 넷플릭스는 한국 시장에 깊게 뿌리내리는 데 성공했습니다. 지난해 국내에서만 4154억원의 매출을 올렸죠.
이용자 수도 압도적입니다. 시장조사업체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한달에 한번 이상 넷플릭스를 방문한 이용자 수는 1001만명에 달합니다(2월 기준). 티빙은 265만명에 그쳤죠. 넷플릭스에 대항하기 위해 SK텔레콤에 방송3사까지 모여 만든 웨이브(395만명)도 넷플릭스를 막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어디 넷플릭스뿐만인가요? ‘애니메이션 왕국’ 디즈니의 OTT 서비스 ‘디즈니 플러스’도 국내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흥행 콘텐츠를 어마어마하게 보유하고 있는 디즈니가 국내 시장에 발을 들인다면 토종 OTT 서비스들의 입지는 그만큼 더 좁아질 게 분명합니다.
이처럼 패색이 짙은 분위기인데도 CJ ENM이 OTT 사업에 승부수를 띄우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업계 관계자들은 “CJ ENM이 그만큼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OTT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훌륭한 독점 콘텐츠를 꾸준히 공급해야 하는데, CJ ENM은 장르를 가리지 않는 풍부한 제작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콘텐츠 제작능력 입증해
실제로도 올 상반기 CJ ENM이 내놓은 콘텐츠 대부분이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예능 부문에선 ‘신서유기 스페셜 스프링 캠프’ ‘백종원의 사계 봄’ 등 흥행성이 담보된 프로그램들이 제작돼 인기를 끌었습니다. 3월 방송된 드라마 ‘마우스’는 평균 시청률 5.5%(닐슨코리안클릭)를 기록하면서 시청자들 사이에서 ‘웰메이드 드라마’란 평을 받았습니다.
영화로는 4월엔 인기 배우 공유·박보검 주연의 ‘서복’을 제작했죠. 극장에선 관객수 37만명에 그쳐 흥행에 실패했지만 이 부분만 보고 속단하긴 이릅니다. 코로나19를 염려해 티빙에서도 동시에 상영됐기 때문입니다. 서복은 평점 사이트인 네이버 영화에서 10점 만점에 9.5점을 받으며 뒤늦게 입소문을 타기도 했습니다.
경쟁사인 넷플릭스에 콘텐츠를 수출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가령, CJ ENM의 자회사인 스튜디오드래곤이 제작한 드라마 ‘비밀의 숲’은 종영 이후 넷플릭스에서 방영됐는데, 해외 넷플릭스 이용자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어 2017년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최고의 인터내셔널 TV쇼’ 톱10에 지목되기도 했었죠. CJ ENM이 콘텐츠 싸움에서 뒤처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CJ ENM이 거금을 들여 OTT 서비스를 키우려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최근 OTT 서비스의 파급력이 콘텐츠 영역을 뛰어넘으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어서입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쿠팡의 OTT 서비스인 ‘쿠팡플레이’입니다. 쿠팡플레이는 지난 4월 축구선수 손흥민 경기의 생중계를 시작으로 6월 5일 열린 국가대표 축구 평가전까지 독점 생중계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쿠팡은 현재 도쿄올림픽 중계권을 두고 네이버·카카오와 쟁탈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올림픽 중계권료가 일반 OTT 기업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는 점입니다. 미국 중계를 맡은 NBC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지불한 금액만 14억5000만 달러(1조6417억원)에 달할 정도니까요.
그럼에도 쿠팡이 스포츠 중계에 목을 매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지금까지 스포츠 중계는 대형 포털 사이트들의 전유물이었는데, 이를 독점해 쿠팡플레이가 이들 플랫폼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플랫폼이 되도록 성장시키겠다는 겁니다.
OTT 가능성 무궁무진해
업계의 한 관계자의 설명을 들어보시죠. “요즘 젊은 세대는 궁금한 것이 있으면 네이버 대신 유튜브에 검색한다. 유튜브에 네이버보다 풍부한 콘텐츠가 있어서인데, 유튜브가 포털 사이트의 역할도 하게 된 셈이다. 뛰어난 콘텐츠로 무장한다면 OTT의 사업 영역도 다양하게 확장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CJ ENM이 투자할 이유가 충분하다고 볼 수 있겠죠.
물론 티빙이 곧바로 넷플릭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는 확신하기 어렵습니다. 넷플릭스도 천문학적인 금액을 국내에 투자하기로 밝혔기 때문입니다. 올해 한국 콘텐츠에만 5500억원을 투자할 예정인데, 이는 2016~2020년간 누적 투자금(7700억원)의 71.4%에 달합니다. 그만큼 넷플릭스도 한국 시장 공략에 ‘진심’을 다하고 있다는 얘기죠. 국내 진출 초읽기에 들어간 디즈니플러스와의 경쟁도 어떻게 흘러갈지는 예측하기 힘듭니다. 과연 CJ ENM은 OTT 시장에서 선전할 수 있을까요?
이혁기 더스쿠프 기자
lhk@thescoop.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