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6.28ㅣ주간경향 1433호
[방구석 극장전]팬데믹 아포칼립스와 환상동화의 결합
‘포스트 아포칼립스’, 종말 이후란 뜻이다. 종말 이후 살아남은 인간 소수가 겪는 극한상황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대중문화 속 인류 종말의 원인은 다양하다. 냉전 시대에는 핵전쟁으로 인한 뉴클리어 아포칼립스가 첫 손에 꼽혔고, 요즘에는 환경 재앙이나 좀비 창궐이 인기 소재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이유라면 전염병에 의한 팬데믹 아포칼립스가 될 것이다.
<스위트 투스: 사슴뿔을 가진 소년>의 한 장면 / 넷플릭스
넷플릭스에서 6월 4일부터 서비스 중인 미드 <스위트 투스>는 익숙한 팬데믹 아포칼립스에 어른들을 위한 환상동화를 결합한 시리즈다. 빅 히트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시즌1은 40~60분 분량의 8부작으로, 거대한 서사에서 서론 격에 해당한다. 즉 ‘이제 시작이다!’ 하고 뚝 끝나버리는 식이다. 그럼에도 흥미로운 떡밥이 큰 화제를 불러왔다.
정체불명의 H5G9 바이러스가 창궐해 인류 대부분이 사라졌다. 살아남은 이들 또한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바이러스 유행을 두려워하며 ‘멸종’의 공포 속에 살아간다. 안전지대가 드문드문 존재하지만 군벌이 철도나 생필품과 의료용품 배급 같은 기간 서비스를 통제해 최소한의 기능만 유지되고 문명은 쇠퇴한 상태다. 바이러스 창궐과 함께 혼란을 부추긴 건 ‘하이브리드’라 불리는 반인반수 신인류다. 소수의 사람은 이들에게 바이러스 퇴치의 열쇠가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고 보호하거나 동등한 생명으로 존중하지만, 대부분은 그들을 박해하거나 치료제 개발을 위한 실험대상으로 여겨 ‘사냥’할 뿐이다.
아포칼립스 장르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재앙의 발단은 천재지변이지만 위기를 심화시키는 건 고삐 풀린 인간들의 상호불신에서 비롯된 이기심이다. <스위트 투스>에서 가장 끔찍한 장면은 함께 어울리던 이웃이 바이러스에 감염되자 순식간에 태세를 전환해 산 채로 불태우며 ‘올드 랭 사인’을 부르는 주민들의 풍경이다. 그리고 치료제 개발을 명목으로 하이브리드에 대한 생체실험 장면 역시 인간성 상실의 단면을 드러낸다. 특히 주인공을 비롯한 하이브리드들이 ‘인간’의 면모를 드러내는 장면과 기존의 인류 중 군벌 지도자 ‘장군’과 치료제 개발 책임자 의사 부부가 각자의 명분으로 잔혹해지는 대조적 장면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스위트 투스>는 해당 장르의 전통적으로 익숙한 소재를 조합해 선보인다. 하나하나 떼어놓고 보면 크게 새로울 건 없다. 하지만 제작을 맡은 ‘아이언맨’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정교한 구성과 연출은 보는 이를 몰입하게 만든다. 제목처럼 달콤한 것에 사족을 못 쓰는 ‘설탕쟁이’ 사슴소년이 다양한 사연을 간직한 친구들과 함께 어머니를 찾는 여정은 이제 시작일 뿐이지만, 실마리를 쥔 이들이 하나둘 한곳에 모이는 1부 결말은 제대로 감질난다. 과연 다음 이야기는 어떻게 전개될까? 그걸 확인할 때쯤엔 코로나19가 잦아들었으면 하는 소망과 함께 시즌2가 벌써 기다려진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