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객을 사냥하는 살인마, 그를 조ㅊ는 외교관
- 입력 2021.05.22
편집자주
극장 대신 집에서 즐길 수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 작품을 김봉석 문화평론가와 윤이나 칼럼니스트가 번갈아가며 소개합니다. 매주 토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됩니다.
1975년, 태국을 여행 중인 네덜란드 커플의 실종 신고가 들어온다. 태국의 수도 방콕 주재 네덜란드 대사관의 3등 서기관 헤르만 크니펜베르흐는 커플의 행방을 수소문하지만 찾지 못한다. 프랑스 국적의 보석중개인 알랭 고티에를 수상하게 여기지만 구체적인 증거는 찾을 수 없다. 태국 경찰은 헤르만의 수사 의뢰를 거절하고, 네덜란드 대사는 오히려 대사관 업무에나 집중하라며 경고한다. 헤르만은 아내인 앙겔라와 함께 알랭의 행적을 파헤치다가 다른 여행자의 실종과 살인에도 알랭이 연루되어 있다는 심증을 갖는다.
넷플릭스 8부작 드라마 '더 서펀트'는 실제 일어난 사건을 바탕으로 한다. 프랑스 국적의 연쇄 살인범 샤를 소브라즈는 캐나다인 여자친구 마리, 인도인 아제이와 함께 태국, 네팔, 인도, 홍콩 등에서 서양 여행자를 약물에 중독시켜 금품을 빼앗고 살인하는 등 많은 범죄를 저질렀다. 당시 동남아를 여행하는 서양인들은 히피족인 경우가 많아 고국의 가족에게 연락도 없이 오랜 기간 떠도는 일이 잦았고, 약물에도 쉽게 취했다. 샤를과 마리는 여행객들의 편의를 봐주면서 친해진 후에 잔혹한 범죄를 저질렀다.
평범한 일상에 갈증을 느끼던 마리는 인도 여행에서 한 남자를 만난다. 베트남에서 사진작가였다는 남자. 야성적이며 거침없는 샤를에게 빨려든 마리는 캐나다에 갔다가 그를 만나러 돌아온다. 그들은 알랭과 모니크가 되고, 수완 좋은 방콕의 보석중개인으로 알려진다. 아파트에서 파티를 자주 하며 이웃에게도 친절하다. 인도에서 아제이를 데리고 온 알랭은 이제 본격적으로 여행자들을 사냥하기 시작한다. 술집에서, 카페에서 만난 여행객을 데리고 와서 약에 취하게 하고, 그들의 돈과 물건을 빼앗고 죽인다.
'더 서펀트' 1화가 시작되면, 1997년 파리에서 샤를이 TV 인터뷰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강도와 살인 등의 범죄를 저지르고도 처벌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범죄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자유인으로 평범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는 것일까. 어떻게 된 일일까.
샤를의 아버지는 인도인이고, 어머니는 인도네시아인이다. 국적은 프랑스이지만, 피부색과 외모 때문에 어릴 때부터 차별을 받았다. 영리하고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는데도 프랑스에서의 성공은 쉽지 않았다. 그는 인도로 가서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다. 보석 강도를 했다가 경찰에 체포된 뒤 투옥되지만 탈옥에 성공한다. 샤를은 원하는 것이 있다면 어떻게든 손에 넣고, 태연하게 범죄를 저지르는 인물이다.
'더 서펀트'는 샤를의 무자비한 범죄행각을 그리면서, 마리가 조금씩 범죄에 스며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샤를을 사랑했기 때문에, 아니 사랑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마리는 헤어날 수 없다. 이곳에 있으면, 언젠가 버려질지라도 샤를이 자신을 보고 있는 한 자신은 여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자기 자신을 버리고, 샤를에게 종속되면서 마리는 점점 피폐해지고 생기를 잃어 간다. 샤를을 사랑하는 것은 저주라고 생각하면서도, 결국 도망치지 못한다.
'더 서펀트'가 샤를과 마리의 범죄 행각, 그들의 악행과 혼란에만 집중했다면 다소 뻔한 범죄 드라마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서펀트'는 그들을 쫓는 헤르만을 이야기의 중심에 둔다. 모든 사람이 그만하라고 하지만 헤르만은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열정이 아니라 집착이고 강박일 수도 있다. 오로지 사건에만 집착하면서 헤르만의 일도, 가정도 엉망이 된다. 회의에 늦거나 제대로 업무 처리를 하지 못하고, 휴가도 가지 못하며 샤를을 추적하는 것에만 매달린다.
부패가 심한 태국 경찰은 물론 네덜란드를 포함한 유럽의 외교관들은 샤를의 범죄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범죄자 한 명을 잡는 것보다는 동남아에서 유럽으로 넘어오는 마약 거래 조직을 적발하는 일이 훨씬 중요하고, 공산주의의 폭력에서 도망치는 베트남 사람들을 돕는 일이 시급하다 여겼다. 노골적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다른 이유도 있다. 어차피 동남아로 여행 오는 젊은이들은 국가와 체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어리석고 방탕한 히피족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헤르만은 동의할 수 없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헤르만의 가정형편은 좋지 않았다. 어머니가 혼자 생계를 책임지는 힘든 상황에서 헤르만은 책과 자전거만 있으면 좋다고 생각했다. 자유가 가장 중요했으니까. 샤를은 젊은이들의 생명을, 인생을, 자유를 처참하게 빼앗았다. 네덜란드 커플이 불에 타 죽은 것을 알았을 때, 사체의 사진을 보았을 때 헤르만은 절망하고 분노한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결국 헤르만의 노력으로 샤를과 마리는 태국 경찰에 체포되지만 어이없게도 부패한 경찰이 그냥 풀어준다. 그들은 바로 방콕에서 사라진다. 하지만 헤르만은 포기하지 않는다. 언론에 제보하면서 마침내 인터폴에서 수사를 시작한다. 국제 공조가 이루어지고, 인도에서 다시 범죄를 저지르던 샤를과 마리가 체포된다. 이대로라면 그나마 만족스러운 결말일 것이다. 하지만 샤를은 정말 교활한 악당이다. 인도에서 저지른 강도죄의 형기를 마치고 나면 살인을 저지른 태국으로 이송될 것임을 알고 탈옥을 감행한다. 모든 형기를 마치고 나니, 태국에서 저지른 살인의 공소시효가 지나버렸다. 1997년, 샤를 소브라즈가 파리에서 태연하게 TV 인터뷰를 할 수 있었던 이유다.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없는 나라가 아니라면 샤를 소브라즈를 기소할 수 없다. 당신은 무죄냐고 묻는 기자에게 샤를은 담담하게 법적으로 자신은 무죄라고 말한다. 샤를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을 무한정 희생시킬 수 있는 사이코패스다. 또한 희생자에 대한 아무런 가책이나 연민이 없는 소시오패스다. 이왕 범죄가 드러났다면, 모든 이가 자신의 영리함을 숭배하고 주목해야 한다고 믿는 관심병 환자다. 법의 구멍을 빠져나온 범죄자는 자신이 법만이 아니라 타락한 사회의 위에 존재한다고 믿는다. 세상은 공평하지 않고, 사회에는 비합리적인 부분이 언제나, 많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 혼돈 위에 자신이 존재한다고 믿는 자아도취.
그러나 '더 서펀트'가 비관적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샤를이 풀려난 것을 알고, 더 이상 그를 감옥에 넣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후에도 헤르만은 자신이 모았던 범죄 증거를 버리지 않았다. 이혼을 하고, 먼 이국을 떠돌아 다닐 때에도 가지고 다녔다. 그것이 자신의 사회적 책무라고 여긴 것일 수 있다.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정의가 실현되는 날을 보게 된다. 그것도 자신의 노력과 힘을 통해서.
어떻게 진정한 정의가 구현되었는지는 밝히지 않겠다. '더 서펀트'를 마지막 회까지 보면 가슴이 뜨거워진다. 그래도 세상의 정의가 구현되는 경우가 있음을 알고, 느끼게 된다. 헤르만이라는 개인이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세상의 정의가 구현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