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토바이 타고 플로리다까지…잡히지 마, 청춘 악당 ‘웨인’
등록 :2021-05-21 19:04
사르트르가 ‘20세기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했던 체 게바라는 23살이던 1951년에 친구와 함께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1년 동안 남미대륙을 여행한다. 그 당시 체 게바라는 혁명이나 사회주의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그냥 객기 넘치는 아르헨티나의 중산층 의대생이었다. 출발 후 곧바로 얼마 지나지 않아 오토바이는 길에서 퍼져 버렸지만, 그들의 낭만적인 여행은 계속되었다. 남미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힘들게 사는 보통사람들의 현실을 보게 된 체 게바라가 여행 후에 다른 사람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여기 체 게바라와는 전혀 다른 오토바이 여행이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주에 사는 16살 고등학생 웨인은 평소에는 과묵하지만, 욱하면 종잡을 수 없는 ‘돌아이’다. 웨인의 아버지는 일하다가 암에 걸렸지만 산재 처리가 되지 못한 채 돈 한푼 없이 죽고 만다. 웨인은 집에 불을 지르고, 방금 여자친구가 된 델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무작정 플로리다로 떠난다. 체 게바라의 여행과는 전혀 다른 오토바이 여행이지만 소년도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된다. 2019년 유튜브 오리지널 드라마로 세계적인 호평을 받았고 지금은 왓챠에서 볼 수 있는 <웨인>이다.
영화 <데드풀>의 작가 폴 워닉이 <웨인>의 대본을 썼다. 오늘날 가장 첨단을 달리는 플랫폼인 유튜브와 가장 첨단의 4차원 작가가 만났으니 이 드라마를 기존의 장르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액션이면서 청춘 로맨스이고 무엇보다 블랙코미디다. 기발하게 창의적이며 신박하게 잔인하다. ‘핏빛 가득한 하이틴 로맨스 청불 로드무비’ 정도로 정리해보자. 영국에서 만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빌어먹을 세상 따위>와도 종종 비교된다. <웨인>은 세상의 악당들과 맞서 싸운다는 점에서 히어로물의 모든 요소를 갖췄지만 <데드풀>과 달리 웨인은 작은 망치를 하나 가지고 다니는 것 이외에 별다른 무기도 없고 초능력도 없다. 어떤 히어로보다 정의롭지만, 현실에서는 방화범이며 고등학생 여자친구를 데리고 도망친 탈주범이다. 거리에서 만나는 수많은 나쁜 사람을 응징했으니 폭행범이다.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두 청춘을 쫓는다. 웨인이 더 나쁜 길로 가지 않기를 바라는 경찰들과 교장 선생님과 친구들. 웨인에게 코를 물어뜯긴 여자친구의 아버지, 덤앤더머 오빠들이 각기 다른 목적으로 이들을 추격한다.
밑바닥 삶을 살던 두 청춘이 플로리다까지 가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미국 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상징한다. 불법 이민자를 등쳐먹는 악덕 업주, 교통사고로 남편을 잃었지만 장례식 비용도 없는 모녀가 등장한다. 일용직 건설노동자가 되어 돈을 벌러 가는 웨인에게 동료들이 주는 모자에는 역설적이게도 ‘부동산의 왕’이라고 쓰여 있다.
두 청춘 남녀를 추격하는 경찰들은 어느 순간 웨인이 로빈 후드와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세상에 도움이 되고 싶은 두 사람은 불의를 보고 참지 않으며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이 한번도 두 청춘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 그래서 정작 웨인을 잡아야 하는 자신들의 역할이 세상으로부터 웨인을 구하는 건지, 웨인으로부터 세상을 구하는 건지 헷갈린다. 이쯤에서 작가가 주인공의 이름을 웨인으로 지은 이유를 서부영화에서 악당들을 한 방에 보내버린 존 웨인과 배트맨의 본명인 브루스 웨인에서 따왔을 거라는 합리적 의심을 해본다.
웨인 역을 맡은 마크 매케나는 아일랜드 출신으로 영화 <싱 스트리트>에서 ‘기타 치던 그 녀석’이다. 토끼 키우던 그 친구 맞다. 실제로 자신의 밴드에서 보컬을 맡고 있다. 델 역의 배우 시애라 브라보도 밴드 이야기를 다룬 미국 드라마 <빅 타임 러쉬>에서 본 기억이 난다. 거칠지만 사랑스러운 두 사람이다. 드라마 내내 적재적소의 멋진 음악들이 흐른다. 하드록 음악의 장편 뮤직비디오를 보는 느낌이 있다. 과거 <엠티브이>(MTV)가 처음 나왔을 때 대중문화에 준 충격처럼 유튜브도 자신들만의 세련된 영상문법을 만들고 싶었을 것 같다.
느낌은 많이 다르지만, 어쨌든 <웨인>은 하이틴 청춘 로맨스이기도 하다. 피가 튀고 폭력이 난무해도 두 사람이 조금씩 가까워지고 서로를 챙기는 모습에 ‘심쿵’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웨인과 델은 무사히 플로리다에 도착할 수 있을까? 플로리다에 도착한 다음 이들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 걸까? 아니 그 전에 청춘들을 추적하는 사람에게 잡혀서 다시 시궁창 같은 세상으로 돌아가야 할까? 델마와 루이스가 그랬고 보니와 클라이드가 그랬던 것처럼 두 악당의 여행이 끝나지 않기를 기원해보자.
박상혁 씨제이이엔엠 예능 피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