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영화 '소울' 인정한 것"… 윤여정, 오스카 수상 특별한 의미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먼저 문을 연 덕분에 미국인들이 아시아적인 것에 익숙해졌다”(피어스 콘란)
한국 거주 영화평론가 콘란·베셔베이스
"기생충이 문 열어 아시아 문턱 낮아져"
"봉준호·윤여정 개인 캐릭터 힘" 분석도
“한국영화의 기술적 뛰어남이 먼저 알려졌는데, 이젠 한국배우의 연기와 소울(영혼)도 알아본 결과다”(제이슨 베셔베이스)
지난 25일(현지시간) 제93회 아카데미 영화상 시상식에서 ‘미나리’의 배우 윤여정(74)이 한국인 첫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여진이 거세다. 뉴욕타임스(NYT)가 이날 최고의 수상 소감으로 꼽는가 하면 트위터에선 윤여정 수상 트윗이 최다 리트윗되는(3만9000회) 등 관련 트윗이 총 66만건 쏟아졌다. 지난해 영화 ‘기생충’의 작품상 수상을 알린 트윗이 총 17만 번 리트윗된 데 이어 2년 연속 한국 영화‧영화인이 오스카 최대 화젯거리가 됐다.
‘미나리’는 재미교포 2세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이 쓰고 연출한 미국 독립영화. 한국 가족이야기에다 한국 배우가 출연했다고 이를 ‘기생충’의 쾌거에 이은 ‘한국영화의 저력’으로 볼 수 있을까. 국내에서 오랜 기간 영화 비평을 해온 두 외국인은 “우연한 연속성이지만 그렇다고 전혀 별개 사건도 아니다”고 했다. 최근 전화로 각각 만난 아일랜드 출신의 피어스 콘란(영화평론가)과 영국 출신 제이슨 베셔베이스(숭실사이버대 교수)다. 이들은 아리랑TV의 데일리 영화 프로그램 ‘1DAY 1FILM K-CINEFLEX’를 공동 진행하고 있는 한국영화 전문가다. 특히 콘란은 이경미 감독(‘미쓰 홍당무’)의 남편이기도 하다.
두 사람은 저예산영화 ‘미나리’가 총 6개 부문 후보에 지명되고 윤여정이 36년 만에 아시아배우로서 연기상을 탄 게 미국 내 아시아 혐오 범죄가 들끓는 시점에서 아카데미가 던진 일종의 메시지란 데 의견을 같이 했다. 나아가 아카데미 자체의 변화도 주목했다.
“지난 몇 년간 ‘오스카가 너무 하얗다’(#OscarsSoWhite) 캠페인에 따라 아카데미 투표 회원의 인종‧성별 분포가 대폭 개선됐다. 주요 후보‧수상자에 흑인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아시안도 거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시상 기준에 ‘다양성’이 추가됐고 이에 따라 자연스레 다양한 영화들을 눈여겨보게 됐다. 게다가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대형 영화 개봉이 드물었고, 그 틈새를 ‘노매드랜드’ ‘미나리’ 같은 영화들이 파고들 수 있었다.”(콘란)
지난해 ‘기생충’에 이어 한국어가 주언어인 ‘미나리’가 주목받은 건 우연이지만 동떨어진 사건은 아니라고 봤다. “방탄소년단과 K팝 돌풍, 그리고 넷플릭스 같은 OTT 덕에 K드라마를 보는 인구가 늘었다. ‘빈센조’를 보는 게 트렌디한 느낌이다. 이렇게 아시안 페이스(face), 그들의 드러남(representation)이 자연스러워졌다.”(콘란)
윤여정의 연기상 수상은 이 지점에서 특히 의미가 있다. “아카데미가 외국영화를 볼 땐 감독, 각본, 촬영, 음악 같은 기술(craft)을 추켜세우지 연기는 잘 안 봤다. 장르 색깔이 강한 ‘기생충’도 그랬다. 반면 정이삭은 감독 성향이 일종의 ‘소울 메이커’에 가깝고 그 덕에 윤여정‧스티븐 연 등의 연기‧소울이 잘 드러났다. 물론 50여년간 연기에 매진해온 윤여정의 저력 덕에 가능했다.”(베셔베이스)
이들은 한국영화가 수십년 간 독보적으로 발전한 건 인정하면서도 연이은 아카데미 낭보는 봉준호‧윤여정 개인 캐릭터의 힘이 크다고 분석했다. “봉준호는 똑똑하고 웃기고 말을 아주 잘 한다. 모든 사람이 그에게 빠졌다. 올해 윤여정도 매력적인 사람이다. 미국에선 아시안이 진지하다(serious)고 여기는데 그 느낌을 바꿔놨다.”(콘란), “윤여정은 독립적이고 솔직하다. 나이 든 배우가 리드하는 모습도 대단하다. 외국인에게 어떻게 보일까가 아니라 자기 자신(be yourself)인 데 충실하다.”(베셔베이스)
영국 출신인 콘란은 특히 윤여정의 영국아카데미(BAFTA) 수상 소감으로 화제가 된 ‘스노비쉬(snobbish)’를 재치 있다고 돌아봤다. “한국말로 ‘콧대 높은’ ‘고상한 체하는’ 등으로 풀이되는데 좀 비꼬는 의미가 있다. 그런데 윤여정 같은 나이 많은 할머니가 TV에서 대놓고 말하니 통쾌했다. 내가 영국인이라서 확실히 말할 수 있다. 마치 영국의 대배우 헬렌 미렌 같은 포스였다.”
이들은 한국 배우의 할리우드 진출과 관련한 조언도 내놨다. 주인공을 고집해 허술한 영화를 찍기보다 ‘미나리’처럼 가능성 있는 작품의 작은 배역이라도 충실히 해서 이름을 알리라는 것. “이미 감독, 각본. 음악 같은 기술적인 것들은 문이 열렸고 배우도 윤여정을 계기로 한층 문호가 열릴 것이다. OTT는 특히 큰 기회가 될 거다. 윤여정도 애플TV의 ‘파친코’를 찍지 않았느냐. 기대가 크다.”(콘란)
한국영화의 발전에 대한 기대와 함께 우려도 비쳤다.
“지금 이름 날리는 박찬욱‧봉준호‧홍상수 등이 모두 1960년대생이다. 이들이 데뷔한 90년대 한국영화계는 정부의 영화진흥정책에 기대어 대기업 자본이 제작에 뛰어들었고 창의적인 감독을 키웠다. 지금은 다르다. 젊은 감독들은 대기업에 거의 고용된 상태로 찍는다. 촬영, 조명, 의상, 미술 등에서 훌륭한 기술자들(craftmen)이 축적됐고 배우들도 훨씬 안정된 매니지먼트 시스템 속에서 연기하지만, 80년대생 감독들이 선배들만큼 큰 작품을 창의적으로 할 기회가 많지 않다. 이런 게 개선되지 않는다면 내년 이후 오스카에서 또 한국영화를 만날 수 있을지 낙관하기 어렵다.”(베셔베이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韓영화 '소울' 인정한 것"… 윤여정, 오스카 수상 특별한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