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2관왕’ 中 클로이 자오, 중국에선 사라졌다
입력 2021.04.26 21:06 | 수정 2021.04.26 21:06
중국 국적으로 미국에서 활동 중인 클로이 자오(중국명 趙婷) 감독이 25일(현지 시각)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노매드랜드(Nomadland)’로 감독상, 작품상을 받았다. 하지만 중국 소셜미디어에서는 자오 감독 관련 기사와 영상은 찾기 힘들다. 검열 당국에 의해 삭제되는 것으로 보인다. 자오 감독이 8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 중국 당국을 비판한 사실과 관련됐다는 해석이다.
홍콩 주재 미국 총영사관은 26일 오전 중국 소셜미디어인 웨이보 계정에 “축하합니다”라는 글과 함께 자오 감독의 수상 소식을 담은 중국어 인터넷 기사를 게시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총영사관이 올린 글은 삭제됐다. 한 네티즌은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자오 감독 수상 소식뿐만 아니라 오스카 관련 글도 삭제되고 있다”며 “(그녀의 수상에) 중국이 침묵을 선물했다”고 했다. 삭제 논란이 커지자 이날 오후 늦게 중국 관영 환구시보 영문판이 자오 감독을 수상 소식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영화가 너무 미국적이어서 중국 시장에선 성공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 2월 자오 감독이 같은 영화로 골든글로브 작품상, 감독상을 받았을 때와 딴판이다. 당시 중국 매체와 네티즌들은 세계 영화계가 주목한 중국 감독에게 환호했다. 하지만 2013년 자오 감독이 한 매체와 한 인터뷰가 뒤늦게 알려지며 평가는 급반전했다. 자오 감독은 당시 인터뷰에서 중국에 대해 “거짓말이 곳곳에 널려 있는 곳”이라고 했다. 자오 감독은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났지만 영국과 미국에서 학교를 다녔다.
논란이 커지면서 중국 본토는 물론 홍콩 일부 TV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을 중계하지 않기로 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21일 중국의 아카데미 시상식 보이콧을 전하면서 자오 감독의 발언뿐만 아니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집권 이후 미국 문화에 대한 중국 내 견제 움직임이 원인이 됐다고 보도했다.
노매드랜드 ‘3관왕’… 아시아계 여성 첫 감독상
“이번 아카데미는 수상자 면면에서 새로 발견된 다양성(newfound diversity)을 보여줬다. 유례 없이 다양한 인종이 제작하고 주연을 맡은 영화가 집중 조명됐다.(워싱턴포스트)”
올해 아카데미 영화제는 아시아계 여성 감독이 처음으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았다. ‘최고령’ 남우주연상이 탄생했고, 가난한 백인 노동 여성의 삶을 연기한 배우가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아카데미 93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한국인 윤여정이 여우조연상을 받았고, 흑인인 대니얼 칼루야가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지난해는 연기상 넷 모두 백인 배우의 차지였다. 여성 후보 지명자와 수상자 모두 가장 많이 배출된 해였다. 여성 70명이 76건의 후보 지명을 받아 역대 최다였고, 본상에서도 여성 15명이 17개 부문에서 수상해 기록을 세웠다. ‘화이트 오스카’란 비판에 늘 취약했던 아카데미가 지난해 아시아 영화 ‘기생충’과 봉준호 감독에게 4관왕을 안긴 데 이어, 올해는 좀 더 다양한 주제와 배경을 지닌 작품과 영화인에게 시선을 돌렸다는 평가다.
영화 ‘노매드랜드’는 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까지 3관왕을 차지했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아카데미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받은 최초의 아시아계 여성으로 이름을 올렸다. ‘노매드랜드’는 경제가 몰락한 도시에서 남편을 잃은 중년 여성이 홀로 밴을 타고 방랑자(노매드)의 삶을 시작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 방랑자는 2008년 금융 위기로 삶이 무너진 노동자들을 가리키는 은유이기도 하다. 클로이 자오 감독은 수상 소감으로 “중국에서 자랄 때 아버지와 나눴던 시(詩) 구절 ‘사람들이 태어날 땐 선하다’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며 “믿음과 용기를 가지고 선함을 유지하는 모든 이에게 상을 돌리고 싶다”고 밝혔다. 주연을 맡은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파고’(1996) ‘스리 빌보드’(2018)에 이어 세 번째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받게 됐다. 제작자이기도 한 그는 자오 감독과 함께 무대에 서서 “주변의 모든 분을 데리고 극장에 가셔서 함께 영화를 보시기 바란다”며 방랑자를 상징하는 늑대 울음소리를 흉내 냈다. 여우주연상 시상대에선 “나는 일을 사랑한다. 그걸 알게 해줘서 감사하다”는 짧은 소감을 전했다.
나이 여든넷의 앤서니 홉킨스는 ‘더 파더’에서 기억력 감퇴와 싸우면서 딸과 새로운 일상을 보내는 노인을 연기하며 역대 최고령 오스카 남우주연상 주인공이 됐다. 1992년 ‘양들의 침묵'에 이어 29년 만의 두 번째 오스카 남우주연상이다. ‘마 레이니, 그녀가 블루스’로 이미 골든글로브에서 남우주연상 트로피를 수상한 흑인 배우 고(故) 채드윅 보즈먼이 유력 수상자로 점쳐지던 상황에서 벌어진 ‘가벼운 놀라움'(워싱턴포스트)이었다. 미국 정부에 암살당한 흑인 인권운동가의 삶을 그린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메시아’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대니얼 칼루야는 “우리 흑인 공동체, 단합의 힘을 배웠다”며 ‘블랙 라이브스 매터(Black Lives Matter(BLM),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로 대표되는 흑인 인권운동 지지를 암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