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손 잡을까” OTT 동맹의 경제학
디즈니플러스 협상 중
SKT 일단 배제...애플과 협력?
토종 OTT 활로 찾을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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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4.22 11:39
[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국내 OTT 시장에 합종연횡의 바람이 거세게 불어오고 있다. 특히 글로벌 시장에서 넷플릭스의 시장 점유율을 잠식하고 있는 디즈니플러스의 국내 시장 진입이 초읽기에 돌입한 가운데 주요 사업자들의 속내도 복잡해지는 중이다.
디즈니의 오리지널 콘텐츠 뮬란. 출처=디즈니
“누구와 손 잡나”
22일 업계 등에 따르면 디즈니플러스는 오는 9월 국내 OTT 시장에 정식으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준비작업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최근 월트디즈니컴퍼니 아시아태평양지역(APAC)은 디즈니코리아 대표로 오상호 전 디즈니스튜디오 사업부 전무를 선임하는 한편 소연 전 소비재 사업부 상무를 다이렉트 투 컨슈머(DTC·Direct-to-Consumer) 사업부 총괄로 임명하기도 했다. 오리지널 콘텐츠 전략을 가동하며 ‘매끄럽게’ 국내 OTT 시장에 진입하겠다는 각오다.
넷플릭스에 이어 또 하나의 대형 플레이어가 국내 시장 진입을 타진하자 통신3사의 셈법도 복잡해지고 있다. 넷플릭스가 국내 시장에 진출할 당시 가장 먼저 손을 잡았던 LG유플러스가 단숨에 IPTV 가입자 상승률 20%를 확보하며 판은 흔들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디즈니플러스와 누가 손을 잡을 것인지를 두고 국내 미디어 시장의 지형이 출렁일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통신3사의 치열한 눈치싸움이 전개되는 중이다.
일단 SK텔레콤은 디즈니플러스와 손을 잡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정호 SK텔레콤 사장이 지난 주주총회에서 명확하게 디즈니플러스를 웨이브의 경쟁자로 선언한 가운데, 2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개막한 월드IT쇼에서 “협력은 없다”고 못을 박았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올해 초만해도 SK텔레콤이 디즈니플러스와 협력과 관련된 논의를 했으나 최근 극적으로 기류가 달라졌다고 본다. 넷플릭스에 비결될 수 있는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디즈니플러스와 무리하게 손을 잡으며 상당부분 사업적 대가를 양보하는 것보다 오히려 영향력이 다소 떨어지는 애플과 협력하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다는 설명이다. 박 사장도 월드IT쇼 현장에서 이를 일정부분 인정했다.
애플TV를 내세운 애플과의 협력만 선택지가 아니다. 넷플릭스와 아마존프라임비디오와의 연대 가능성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사장은 애플은 물론 아마존과의 협력 가능성에 대해 “당연히 있다”면서 조만간 리드 헤이팅스 넷플릭스 CEO와 만날 것이라 밝혔다.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의 망 이용료 분쟁과는 별도로 미디어 콘텐츠 시장에서 협력할 수 있는 부분은 협력하겠다는 의지다.
그런 이유로 업계에서는 KT와 LG유플러스가 디즈니플러스와 협력할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KT는 최근 콘텐츠 전문기업인 KT스튜디오지니를 설립하는 한편 2023년까지 콘텐츠에 4000억원 이상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디지코’로의 전환을 빠르게 추진하는 상황에서 미디어 콘텐츠 전략을 날카롭게 가다듬는 한편 디즈니플러스와의 연대를 통해 다양한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무엇보다 뒤늦게 넷플릭스와 연대하며 미디어 콘텐츠 시장의 성장을 도모하는 상황이라 KT가 디즈니플러스와 손을 잡을 경우 상당한 시너지가 창출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다만 업계 취재를 종합한 결과 현 상황에서는 LG유플러스가 더 적극적인 것으로 보인다. 당장 황현식 LG유플러스 부회장은 지난 15일 여의도 켄싱턴 호텔에서 열린 농어촌 5G 공동이용 계획을 위한 업무협약식에 참석해 디즈니플러스와의 연대 가능성을 두고 “대화를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유플러스는 넷플릭스의 국내 시장 진출 당시 협력을 선언하며 상당한 성과를 거둔 사례가 있다. 비록 영업익을 나누는 과정에서 넷플릭스에게 필요이상 양보했다는 지적이 나왔으나 결론적으로 넷플릭스와의 연대는 대성공이다. 심지어 다른 기업과의 협력을 통해 시장의 점유율을 키우는 것은 LG그룹 차원의 로드맵이기도 하다. 그 연장선에서 디즈니플러스와 적극적으로 협의하고 있다는 말이 나온다.
출처=갈무리
동맹의 경제학, 그리고 후폭풍
디즈니플러스 ‘발’ 폭풍이 예고되는 가운데 국내 OTT 시장 재편 가능성도 제기된다.
현 상황에서 넷플릭스의 성장세는 탄탄하다.
넷플릭스는 20일(현지시간) 전년동기대비 24% 증가한 71억 6,300만달러의 매출을 기록했으며 영업이익은 19억 6,000만달러, 영업 이익률은 27.4%를 기록했다 밝혔다. 나아가 넷플릭스 이사회는 500억달러에 달하는 자사주 매입 프로그램을 승인해 외부 자금 조달 없이 다양한 가능성을 타진할 것이라 강조했다. 아직 기초체력 자체가 탄탄하다는 뜻이다.
국내 시장에서도 탄탄대로다. 넷플릭스(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의 지난해 국내 매출은 4155억원, 영업이익은 88억원을 기록하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다만 글로벌 1분기 기준 넷플릭스의 전 세계 유료 구독 가구는 2억 800만명에 그쳤다. 지난해 4분기 대비 400만명의 구독자수 증가가 이뤄진 가운데 기대치 620만명에는 미치지 못했다. 아태지역의 유료 구독 가구는 전 분기 대비 136만 증가해 2,685만명을 기록했으며 넷플릭스의 한국 유료 구독 가구는 2020년 말 기준 380만명에 이르지만 이 역시 시장의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아직 넷플릭스의 존재감이 강하지만 코로나19가 진정세로 돌아서며 조금씩 성장세가 꺾이고 있다는 평가다. 이런 상황에서 넷플릭스는 올 한 해 약 5,500억원가량을 한국 창작 생태계에 투자해 액션, 스릴러, SF, 스탠드업 코미디, 시트콤 등 다양한 장르의 한국 오리지널 작품들을 제작할 예정이지만 지금까지 보여주지 못한 ‘빈 틈’을 보여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그 간극을 디즈니플러스가 파고들 경우, 무엇보다 KT나 LG유플러스 등 통신사와의 협력으로 미디어 시장의 판을 흔든다면 규모의 경제를 전면에 건 치열한 샅바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디즈니플러스와의 연대 가능성에 선을 그은 SK텔레콤은 중간지주사 설립을 통해 미디어 사업에 방점을 찍는 전략으로 나설 것으로 보인다.
SK텔레콤이 AI & Digital Infra 컴퍼니(SK텔레콤 존속회사), ICT 투자전문회사(SK텔레콤 신설회사)로 인적분할을 시작한 가운데 신설회사에 웨이브가 편입되는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 SK텔레콤이 IPTV 미디어 자회사인 SK브로드밴드를 존속회사에 두면서도 웨이브를 신설회사로 옮긴 배경은 역시 기존 IPTV와 OTT를 다르게 생각한다는 의미며, OTT인 웨이브에 선택과 집중을 단행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SK텔레콤은 지난 3월말 이사회를 통해 웨이브를 운영하는 콘텐츠웨이브에 오는 2025년까지 총 1조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는 한편 콘텐츠 제작 분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최고콘텐츠책임자(CCO)를 영입하겠다 밝힌 바 있다. 여세를 몰아 기획 스튜디오 설립을 통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도 속도를 내며 800억원의 자금을 투입한다는 방침이다. 웨이브도 막대한 자금을 움직여 오리지널 콘텐츠 승부수를 던질 것으로 보인다.
KT는 디즈니플러스와의 연대 가능성을 염두에 둔 상태에서 KT지니스튜디오 등을 바탕에 둔 미디어 콘텐츠 밸류체인 구축에 속도를 낼 전망이다. KT의 OTT인 시즌이 아직은 큰 존재감을 자랑하지 못하고 있으나 KT 차원에서 벌어지는 미디어 콘텐츠 밸류체인이 일정궤도에 올라올 경우 자연스럽게 OTT 시장에서 일발역전을 노릴 수 있다.
LG유플러스는 상대적으로 선택지가 좁다. 아직 미디어 콘텐츠 측면에서 의미있는 전략을 보여주지 못하는 가운데 IPTV 활성화 측면에서 디즈니플러스와 연대하는 그림에 집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OTT 시장 측면의 접근이 아니라 철저하게 전체 IPTV 시장 가입자 순증을 노리는 행보다.
디즈니플러스의 진출로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는 왓챠, 티빙 등은 일단 자생력 강화에 집중하고 있다. 일단 티빙은 네이버와의 연대를 중심으로 전열을 가다듬고 있으며 왓챠도 막대한 투자 유치를 통해 콘텐츠 플랫폼의 존재감을 지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출처=갈무리
승산있는 싸움일까
디즈니플러스와 통신사들과의 연대는 OTT 시장 자체에 대한 변화도 일으키지만, IPTV와 연계된 전체 미디어 콘텐츠 시장에 미치는 충격파가 더 크다.
국내 2위 OTT인 웨이브를 가동하는 SK텔레콤이 디즈니플러스와의 연대를 당장 추진하지 않는 이유도 이번 사안을 OTT 시장의 현안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반면 웨이브 수준의 의미있는 OTT 존재감이 없는 KT와 LG유플러스는 일단 IPTV 시장에서의 존재감 강화 측면에서 디즈니플러스와 협상하고 있다. 여기서 대규모 미디어 콘텐츠 전략을 발표한 KT보다 아직은 전체 미디어, 나아가 OTT에서 별다른 강점을 보여주지 못한 LG유플러스가 넷플릭스와의 최초 연대가 선사한 ‘IPTV 시장 점유율 확대의 추억’에 더 매진하는 분위기다.
이런 가운데 디즈니플러스의 국내 시장 진입을 OTT 시장 측면에서 판단한다면, 토종 OTT 시장의 위기감이 고조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가뜩이나 넷플릭스라는 막강한 글로벌 플레이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규모의 경제를 기대할 수 있는 통신3사 외 왓챠 등 토종 OTT들은 더욱 어려운 싸움을 이어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난관을 해결할 수 있는 동력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웨이브는 SK텔레콤의 지원을 받아 국내 OTT 시장에서 홀로서기에 나설 수 있으나 그 외 토종 OTT들은 별다른 방법이 없다. 이런 가운데 넷플릭스가 성공시킨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우후죽순 가동하고 있지만 이 역시 규모의 경제를 가동하는 글로벌 기업들에게 얼마나 효과적인 대응무기가 될 수 있을지 미지수다.
그렇다고 일각에서 제기하는 콘텐츠 제휴, 나아가 플랫폼의 전격적인 합병도 어렵다. 지상파 3사가 이미 웨이브와 논의없이 다른 OTT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상황에서 각 플랫폼들이 자체적으로 대규모 투자를 받는 등 이해관계자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전격적인 합병에 따른 새판짜기를 시도하기에는 각 토종 OTT들이 너무 먼 길을 걸어왔다. 티빙과 네이버와의 연대 등 OTT와 다른 IT 플랫폼의 결합도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카드 중 하나지만 이 역시 콘텐츠 IP에 집중하는 거대 IT 플랫폼의 자체적인 행보를 고려하면 승부를 걸어볼 가치가 떨어진다.
장기적 관점에서 정부의 안정적인 지원책과 더불어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의 함정에서 나와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무엇보다 특화된 콘텐츠 전략으로 나아가면서 큰 자금을 들여 오리지널 콘텐츠만 제작하면 모든 플랫폼 전쟁에서 승리할 것이라는 ‘미몽’에서 깨어날 필요가 있다. 지나친 국수주의를 배제하면서도 뉴 미디어 플랫폼인 OTT 시장의 다양성을 제고하는 차원의 대승적 전략이 필요하다는 말이 나온다.
출처 : 이코노믹리뷰(https://www.econovil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