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추리 소설은? 누구나 바로 셜록 홈즈를 떠올릴 것이다. 타고난 지성과 섬세한 관찰력, 논리력으로 아무도 해결하지 못하는 사건을 척척 풀어내는 셜록의 수사는 짜릿하기까지 하다. 셜록 옆에는 차분하게 그를 도우며 사건을 기록하고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존 왓슨이 있다. 무능한 경찰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어려운 난제들을 명쾌하게 풀어내는 탓에 수사가 재밌게 느껴지게 한다. 셜록 핵심 매력은 냉철함과 지성이다.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팩트 속에서 피어나는 논리 구조는 아름다울 지경이다. 범인을 찾아낸 뒤에 풀어내는 그의 추론 과정은 참 재미있다.
이레귤러스에서는 조금 다른 셜록을 만날 수 있다. 명석한 두뇌는 잠시 꺼두고 두려움과 괴로움을 잊으려 술과 약에 쩔어 있다. 깔끔한 스타일이 아닌 히피 같은 스타일에 타투도 하고 귀걸이도 했다. 수사관보다는 연예인에 가까운 비주얼이라고 하겠다. 게다가 이렇게까지 나락으로 떨어져 안타까운 셜록은 본 적이 없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그 무덤에 와서 맨날 운다. 셜록은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고 한 치의 실수도 인정하지 않는 철저함이 매력인데 말이다. 단짝 왓슨은 과거의 슈퍼스타 셜록을 사랑하고 기억하기에 셜록을 지키고 싶다. 셜록의 빈자리 때문에 세계를 대신 구해야 한다는 의무감에 시달린다. 이승과 저승의 틈이 조금씩 벌어지면서 어둠의 기운이 넘쳐나는 시기, 이 세계를 지키지 못하면 어둠에 완전히 먹혀버리게 된다.
이레귤러스의 배경은 역동적으로 사회 전체가 변해가고 있는 빅토리아 시대이다. 인류 문명 전체가 한 단계 올라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전의 세계는 무너지고 사회, 경제, 기술 등이 새롭게 등장하던 시절이다.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서 미래의 밝은 빛이 비치는가 했지만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여기저기서 발생한다. 이 사건들은 셜록의 부재로 왓슨이 이끌어가게 되며 왓슨은 부족한 일손을 틴에이저들에게서 빌린다. 틴에이저로 꾸린 수사대는 도움을 줄 수 있을까? .
▲ 사진 제공= ⓒ IMDb
주인공은 비어트리스(이하 비)라는 소녀다. 거리 뒷편에서 배고프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어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동생과 구빈 원에 맡겨졌다. 구빈원에서 도망쳐 자립적으로 살고 있던 비어트리스와 친구들은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기가 힘들다. 비와 친구들은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착하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왓슨은 비에게 다가와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가난한 생활 탓에 한 푼이라도 더 벌고 싶었던 비는 제안을 받아들인다.
가난하고 가족이 없다는 것이 가장 힘든 점인 줄 알았던 비는 이제껏 본 적 없는 위험한 일에 뛰어들게 된다. 하늘을 새까많게 뒤덮는 까마귀 떼나 가짜 이빨요정으로 아이들의 이를 가져가서 사람을 복제하는 여인도 있다. 얼굴을 훔쳐 가는 범죄도 나왔다. 동물 박제를 잘하는 사람이 범인이었는데 제일 끔찍했던 범죄였다. 얼굴을 훔치고 다니다 보니 결국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게 되었다. 그녀의 도움을 받아 제시는 틈이 생겨나는 곳, 힘이 발생하는 곳을 들여다볼 수 있기는 했지만, 에피소드 자체가 으스스했다.
몸의 일부를 훔쳐 가는 사람도 있다. 신체가 사라지는 현상을 겪는 에피소드에서 나오는 이디스와 남편 새미도 인상적이었다. 새미는 병이 있어 괴로웠지만 현명한 자로 나중에 부인의 미치광이 짓으로 신체를 얻었을 때 제일 먼저 한 말이 “왜 나의 죽음을 니가 가로채!”였다. 죽음을 맞이했지만, 부인의 욕심으로 죽어도 죽지 못했따. 15년 동안이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지옥 생활을 한 것이었다. 범인들 모두 잘못된 욕심으로 힘을 원하게 되고 어둠의 힘을 얻게 된다. 초능력이 아니어도 잘못된 욕망은 범죄를 불러일으킨다.
각 에피소드에서 나오는 범죄들은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 겪기에 무시무시한 일들이다. 때때로 정당방위라는 이유로 살인도 하게 된다. 비는 청소년이라는 특징답게 친구들을 모두 끌어들여 힘을 모은다. 어려울 것만 같았던 사건들은 집단지성으로 잘 해결되어 간다.
▲ 사진 제공= ⓒ IMDb
여기에 여리고 자존감 낮은 왕자님 리오폴드가 등장한다. 병약한 왕자는 궁궐 밖에는 나가는 적이 없고 사람 만나는 것도 조심해야 한다. 밤마실을 나온 어느 날 마차로 제시를 칠 뻔했다. 동생이 다칠 뻔해서 화가난 비는 왕자님 비서에게 마구 퍼붓는다. 기 센 여자인 비의 행동을 보고 ‘나한테 이러는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를 느낀 왕자님은 반해버린다. 지역에 대한 단서로 ‘Duck and Quiver’라는 펍 이름만 외워서 돌아간다. 다시 비를 찾아와 틴에이저 수사대에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로맨스는 덤. 리오는 왕실에서 배운 지식을 십분 활용하여 셜록이 남긴 저서를 꼼꼼히 공부하여 친구들에게 들려준다. 황금여명회에서도 비와 함께 라틴어를 해석하며 퍼즐을 풀어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궁정에서의 의무에 시달리며 거지왕자 게임을 끝내야 할 때가 온다. 난생 처음 평민들과 어울리며 친구도 만들고 재미있었지만 왕자에게는 짧은 여행으로 끝나게 된다.
비가 가장 아끼는 동생 제시는 악몽을 꾸는 일이 잦아진다. 알고 보니 제시는 기억을 보고 사람의 마음을 조종할 수 있는 입시시무스(Ipsysymus)였다. 아직 능력을 제대로 다루지 못해서 불안한 상태가 계속되었다. 꿈속에서 흰옷을 입은 린넨 신사(Linen Man)를 만나 멘토링을 받으며 조금씩 성장한다. 제시의 능력을 탐내는 자들이 있어 제시는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기게 된다.
비는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계속 의문을 가지고 있으며 왓슨과도 가까웠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진실을 알고 있지만 밝히지 않는 왓슨을 압박하며 셜록까지 찾아낸다. 엄마가 이 세계를 지키려고 틈을 막으면서 빨려 들어간 사실을 알고 셜록과 왓슨을 미워하게 된다. 비의 엄마도 입시시무스였고 능력이 있었지만, 셜록과 함께 도망쳐서 평화롭게 살고 싶어 했다. 그리고 아이들을 셜록에게 맡겼지만, 앨리스(비의 엄마)를 잃은 셜록은 슬픔으로 아이들을 돌보지 못했다.
▲ 사진 제공= ⓒ IMDb
비와 제시는 아버지인 셜록에게 너무 화가 났고 엄마에 대한 거짓말로 신뢰를 하지 못한다. 심지어 셜록이 마약을 끊도록 도운 것은 비다. 여기서 누가 어른이고 누가 아이인가. 어른보다 더 책임감 있고 성실한 비를 보면 어른이라는 것이 부끄러울 지경이다. 머리가 좋다고 돈이 많다고, 유명하다고 해서 좋은 어른은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든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 어른이다.
자신의 이론이 맞는 것에 집착하던 셜록은 앨리스의 사건으로 완전히 무너진다. 앨리스가 그런 선택을 한 이유를 찾지 못하고 그녀를 그저 그리워하게 된다. 오히려 그녀가 떠났을 때 더 깊이 사랑하게 되어버린다.
결국은 모두 힘을 합쳐 틈을 막아내기로 한다. 틈이 발생한 ALD STATION에서는 모두 다 두려워하는 것에 대한 악몽을 꾸게 된다. 각각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고통받다가 린넨 신사가 죽음을 맞이하자 해방된다. 친한 친구들이지만 각자 전혀 다른 괴로움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다.
다시 만나게 된 엄마 앨리스는 죽음의 공간에서 만들어진 틈을 없애지 못하게 한다. 우리 모두 함께 할 수 있다면서 비와 제시를 설득한다. 셜록은 보자마자 앨리스 말이 다 맞다면서 논리적인 판단을 하지 못한다. 다행히 제시의 설득으로 틈을 막기는 했지만, 셜록과 앨리스는 저 너머로 사라지고 만다. 틈이 닫히면서 모든 미스터리는 사라지게 된다. 모든 상황은 정리되고 리오는 나라를 위해서 친구들의 안전을 위해서 자신은 궁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이별을 고한다. 비와 왓슨은 마음속에 이별의 상처라는 큰 틈을 가지게 된다.
미스터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볼만한 사건들이 나오지만, 에피소드 주인공들의 당위성이 조금은 약한 편이다. 미스터리와 공포 사이의 강도로 나오는 장면들이 많이 있기에 보는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다. 사건들로만 엮어갔으면 더 재밌었을 것 같다.
후반부에는 비와 제시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집중이 되는 면이 있어서 재미가 조금 시들해지기도 한다. 게다가 입시시무스인 제시는 무슨 사건이 일어나기만 하면 투덜거리면서 운다. 자신은 못 한다며 괴로워하는 장면이 자주 나오기에 조금 거슬리기도 한다. 대신에 비는 친구들 개인 면담까지 해가면서 어른이건 아이건 이해하려고 다가가고 도와주려고 한다. 비가 사건들은 모두 잘 마무리 지었지만 리오에게 마음을 주고 상처로 되받은 것이 슬프다. 왓슨과 셜록은 잘못된 만남이었다. 앨리스는 셜록의 여자가 되기에는 너무 똑똑했다. 왓슨은 셜록을 사랑하기는 했지만, 순간의 잘못된 생각으로 온 세계를 망쳐버렸다.
캐스팅은 굉장히 좋았다. 다만 셜록이 제일 아쉬웠던 것 같다. 캐릭터 자체가 전형적인 셜록 캐릭터가 아닌 데다가 히피다운 셜록이기에 더욱더 아쉽게 느껴졌다. 오히려 왓슨역을 맡은 배우는 유니크한 왓슨 캐릭터로 나온 것 같아서 좋았다. 7화에서 스파이크가 빌리는 근육, 제시는 영혼, 비는 심장, 리오는 머리를 담당한다고 설명하는 부분이 제대로 된 설명 같다. 스파이크는 대변인 역할로 생각했지만, 본인은 골격이라고 우기는 부분도 귀여웠다. 인종차별로 유명한 영국에서 동양인 여자가 주인공으로 나와서 신선하기도 했다.
미스터리와 셜록은 아주 잘 어울린다. 거기에 로맨스까지만 더했으면 좋았을 뻔했다.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부담감에 온갖 장르라는 모둠 사리를 추가한 이레귤러스는 방향을 못 잡고 프랜차이즈 맛집이 되어버렸다. 이레귤러스는 미스터리 범죄에 SF와 틴에이저, 로맨스까지 더해진 이 맛도 저 맛도 아닌 흔한 맛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시즌 2에서 미스터리 범죄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더 재밌을 것 같다. 틴에이저 미스터리물은 언제나 흥미로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