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사제들'→'비밀의 정원'…상업 영화 발판되는 단편의 장편화
입력 2021.04.08 09:14 수정 2021.04.08 09:14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평행선' 장편화 작업 중
신인 감독들의 상업 영화 창구로 여겨지지만, 연출력 빈틈 채워야
'쏘우', '컨져링', '인시디어스', '애니벨' 시리즈로 할리우드 흥행 감독으로 사랑받는 제임스완 감독의 시작은 '쏘우'의 단편이었다. 2003년 리 워넬과 함께 만든 첫 단편 '쏘우'가 9분이란 짧은 러닝타임 안에 영화의 시그니처인 직쏘 인형을 등장시켜 누군가를 납치해 생존게임을 한다는 설정으로 높은 몰입감을 선사했다. 이후 2005년 개봉한 '쏘우'는 전세계적으로 1억 3000만 달러의 흥행 수익을 높였고 지금까지 7번째 시리즈가 만들어졌다. 또 스핀오프 버전인 '스파이럴'이 5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처럼 신선한 설정으로 연출력을 인정 받아 장편으로 확장시킨 감독들은 국내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검은 사제들'의 장재현 감독이다. '검은 사제들'은 '12번째 보조사제'를 장편화 한 작품이다. 장재현 감독의 '12번째 보조사제'는 엑소시즘을 소재로 13회 미쟝센 단편영화제에서 절대악몽부문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며 입소문을 탔다. 이후 강동원 김윤석 주연의 '검은 사제들'로 세계관을 확장해 만들었고 2015년 54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특히 장재현 감독은 공포가 비주류로 전락한 국내 영화계에 오퀄트 소재로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보여줘 작품성과 흥행성을 갖춘 감독임을 입증했다. 이후 장재현 감독은 '시간 위의 집' 각본을 쓰고 '사바하'의 메가폰을 잡으며 상업 영화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단편의 작품성을 인정받았다고 장편화가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이윤정 감독은 동명의 단편 '나를 잊지 말아요'를 정우성, 김하늘을 캐스팅해 상업 영화로 만들었지만, 이야기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반복된 이야기와 멜로 영화에서 흔히 쓰이는 뻔한 장치, 정리되지 못한 연출로 관객수 42만명에 그쳤다.
'판소리 복서'도 비슷한 오류를 범해 단편의 장편화 실패 사례로 손꼽힌다. 복서와 판소리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소재의 결합을 보여준 '판소리 복서'는 '뎀프시롤:참회록'을 장편화한 작품이었지만, 동어반복이 영화의 최대 단점으로 작용했다.
러닝타임을 늘리며 풍성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 아닌, 늘어진 전개와 굳이 없어도 되는 장면들이 추가되며 단편의 매력을 반감시켰다. 정혁기 감독은 단편에서 선보였던 재기발랄한 연출 톤을 유지했지 지루함을 해소하기에는 무리였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 '비밀의 정원'도 박선주 감독의 '미열'을 장편화 한 작품이다. 박선주 감독은 단편의 중점이었던 성폭행 당한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아내와 그의 동생, 엄마, 이모, 이모부 등 피해자의 가족에 초점을 맞췄다. 단편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시선들이 뻗어나갈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또 '미열'에서 주연이었던 한우연과 전석호를 장편에서 한 번 더 캐스팅하되 극중 직업을 바꾸며 이야기를 다시 만들어나갔다.
단편이 장편화 될 때, 눈도장을 찍을 수 있었던 장르와 소재는 유지된다. 이 때 감독들은 단편을 본 관객들이 새로운 지점을 발견할 수 있는 설정, 단편을 보지 않아도 이해가 가능한 보편성,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를 군더더기 없이 확장시켜야 한다. 장재현 감독은 이 모든 걸 조화롭게 연출해 흥행 감독 반열에 오르며 충무로의 메이저 제작사인 외유내강과 손을 잡고 이정재, 박정민 주연의 '사바하'를 만들 수 있었다.
신인 감독으로서 이같은 작업이 도약을 위한 발판이 될 수 있지만, 반면 독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긴 호흡을 채우지 못한 연출의 허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며 단편에 대한 호평과 영광도 바래질 수 있어 신중해야 한다.
극명한 장, 단점을 가지고 있는 작업이지만 올해도 눈도장을 찍은 단편들이 장편화돼 관객들과 만난다. 배두나, 공유, 이준 주연이 주연을 맡은 최향용 감독의 넷플릭스 '고요의 바다'는 동명의 단편영화를 시리즈한 작품이며 하반기 공개 예정이다. 영화 '평행선' 최경현 감독은 영화 '7번방의 선물', '역모-반란의 시대'의 김황성 작가와 함께 '평행선'의 장편화 작업을 시작했다. '평행선'은 칸 단편 영화제 경쟁 부문 출품, 뉴욕 필름 페스티벌 경쟁, 더 할리우드 쇼케이스 경쟁 부문에 출품돼 평단의 호응을 이끈 작품으로 어느 때보다 기대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