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영화의 넷플릭스 버전, OTT와 같으면서 다릅니다”
- 기자명 이로운넷=양승희 기자
- 입력 2021.03.29 05:30
[인터뷰] 조일지 사회적기업 퍼플레이컴퍼니 대표
여성 창작자에게 기회 주고 성평등 문화 만들어
2.0 서비스로 새로운 도약, 사회공헌 활동 나선다
‘7.9%’ 영화진흥위원회가 2019년 발표한 ‘2018 한국 영화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2014~2018년 개봉한 상업영화 평균 편수 총 76편 가운데, 여성감독이 연출한 작품은 단 6편이었다. 2014년 3편, 2016년 8편, 2018년 10편으로 여성감독의 참여는 조금씩 늘어났지만, 여전히 산업 현장에서 영화감독은 남성의 직종이라는 선입견이 뿌리 깊게 박혀있다.
여성영화는 사회적 편견, 투자 부족 등 이유로 제작부터 개봉까지 관객들을 만날 기회가 턱없이 부족하다. “내가 보고 싶은 다양한 여성영화를 원하는 때에 쉽게 볼 수 없을까”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된 기업이 있다. ‘넷플릭스의 여성영화 버전’이라 불리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퍼플레이’를 운영하는 퍼플레이컴퍼니다.
퍼플레이컴퍼니는 지난 2017년 ‘콘텐츠를 통한 성평등한 문화 조성’을 미션으로, 고용노동부의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되면서 설립했다. 이듬해 여성가족형 예비사회적기업 인증을 받고 2020년 여성가족형 우수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선정됐으며, 2021년 고용부의 첫 인증 사회적기업 명단에 오르면서 차근히 성장 중이다. 조일지 대표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퍼플레이컴퍼니의 소셜미션과 목표 등을 들어봤다.
2021년 첫 사회적기업 인증, OTT 업계 최초
창업은 “좋아하는 영화를 볼 수 없다는 갈증”에서 비롯됐다. 여성영화제에서 관람한 좋은 작품을 지인에게 추천했으나 볼 수 있는 곳이 없다는 경험에서 아이디어가 나왔다. 조 대표는 “2016년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페미니스트 친구 6명이 모여 여성영화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한 구상을 진행했다”며 “뻔한 여성 캐릭터와 스토리, 남성 중심의 비슷비슷한 영화가 판치는 시장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색 ‘퍼플(purple)’과 ‘플레이(play)’를 합쳐 ‘퍼플레이’라는 회사명을 만들었다. 여성감독이 만든 영화, 여성 캐릭터가 주체적으로 등장하는 영화, 젠더 이분법에 도전하고 성평등 가치를 담은 영화를 관객들에게 선보인다는 기업 신념에 따라, 해당 기준에 부합하는 작품을 찾아 제공하기로 했다. 이러한 작품이 많아질수록 우리 사회에 성평등한 문화가 자리 잡는데 일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법인 설립 후 2년간 자체 테스트를 거쳐 2019년 12월 말 ‘퍼플레이’ 서비스를 정식 출시했다. 이번 고용부의 인증으로 ‘국내 OTT 기업 중 사회적기업 1호’라는 수식어도 얻었다. 조 대표는 “사실 OTT와 사회적기업은 어떻게 보면 잘 안 어울리는 단어”라면서 “현재 대부분의 OTT는 유통자 친화적인 구조다. 소비자가 늘어날수록 유통사가 성장하기 때문에 유통하는 입장에서는 대작, 더 재밌는 작품, 자극적 시리즈 등을 선보이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유통사 아닌 창작자에 중점…숨은 여성영화 발굴
하지만 퍼플레이는 창작자에게 수익의 70%를 돌려주고, 이를 기반으로 더 좋은 작품을 만드는 선순환 구조를 지향한다는 점에서 여타 OTT 서비스와 다르다. 조 대표의 말대로 “여성감독의 재능을 알리고 더 많은 여성창작자들이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한편, 관객들이 좋은 작품을 보다 쉽게 관람 가능한 서비스를 통해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타 플랫폼에서 서비스하지 않는 독점 콘텐츠가 전체의 80%를 차지한다는 것도 차별점이다. 특히 독립‧단편영화의 수가 많은데, 여성영화는 장편 제작이 많지 않은 데다 성공한 작품은 대형 OTT에서 이미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퍼플레이는 숨은 여성영화를 발굴하고 상영해 여성감독에게 관객과 만나는 기회를 늘리는 역할에 방점을 찍었다.
퍼플레이는 홈페이지에서 전용 포인트인 ‘퍼니’를 충전해 개별 콘텐츠를 결제하고, 72시간 내 관람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건별 결제 시스템으로 가격은 무료부터 500~4000퍼니 사이로, 소비자들이 ‘필요할 때 원하는 콘텐츠만 결제’하도록 했다. 일반극장에서 상영하지 않아 보기 어렵거나, 내가 보고 싶은 주제에 맞게 큐레이션된 영화를 골라 볼 수 있다.
회원 90% 20~40대 여성, 적극적 지지와 응원 보내
다양한 장점 덕분에 퍼플레이는 서비스 시작 후 1년 만에 회원 2만명을 돌파하고, 누적 플레이 수도 2만건을 넘어섰다. 회원의 약 90%가 20~40대 여성으로, 이들은 적극적인 문화 소비층이자 사회 변화에 주의를 기울이고 변화를 선도하는 세대라는 특수성을 공유한다. 최근 사회적 분위기에 따라 여성영화에 관심을 갖는 남성들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퍼플레이는 오는 4월 중 기존보다 세분화한 큐레이션, 결제 불편함을 최소화한 충전, 관람 후 리뷰 쓰기, 친구에게 관람권 선물하기 등 기능을 추가한 2.0 서비스를 선보이며 새로운 도약에 나선다.
3월 독립‧예술영화 유통배급사 인디그라운드, 4월 전주국제영화제 등과 협업을 진행하며, 여성영화를 활용한 콘텐츠 제작, 성인지 감수성 디자인물 제작, 온라인 영화제 상영, 영화 모임 사업 등도 지속적으로 진행한다는 목표다. 사회적기업으로 인증된 만큼, 지난해 수익금 일부를 십대여성인권센터에 기부한 것과 같은 사회공헌 활동에도 적극 나설 예정이다.
“글로벌 OTT 기업의 막대한 자본력‧기술력‧인력에 비하면, 작은 기업에 불과할지 몰라요. 하지만 퍼플레이는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고 싶다는 진정성과 자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성감독들의 재능을 알려서 작업을 이어나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어요. 많은 관객들께서 퍼플레이를 찾아 좋은 여성영화를 관람하시고 지인들에게 소개해주신다면, 이 목표는 좀 더 빨리 이룰 수 있을 거예요.(웃음) 여성영화에 대한 많은 관심과 지지를 부탁드립니다.”
1. 강유가람 감독 ‘시국페미’: 2016년 강남역 10번 출구 사건을 시작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광장까지로 이어진 ‘페미니즘 리부트’를 조명하며 현장에서 목소리를 낸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새롭게 점화된 ‘뉴 페미니즘’의 시작과 과정 등을 명료하게 정리해주는 작품으로 ‘페미니즘 입문작’으로 꼽히기도 한다.
2. 퍼플레이 오리지널 ‘#그려서_만든_세상: 여성 애니메이션 감독 컬렉션’: 자신만의 언어로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구축해온 애니메이션 감독들에 주목해 기획했다. 주요 필모그래피를 이어서 감상할 수 있으며, 퍼플레이가 묻고 감독이 답하는 인터뷰 영상이 함께 제공된다. 현재 김소윤 감독, 우진 감독 2편이 제작됐으며, 많은 관객들이 애니메이션 감독의 작품 세계에 한발짝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
3. 신체의 변화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를 귀여운 애니메이션으로 잘 표현한 ‘겨털소녀 김붕어’,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아름답게 진행된 레즈비언 커플의 결혼식을 따라간 정소희 감독의 ‘퍼스트 댄스’도 주목할 만하다. 이밖에 임순례, 이경미, 김보라 감독 등 유명 여성감독들의 초기작을 찾아보는 재미 역시 쏠쏠하다.
이로운넷=양승희 기자 yang@erou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