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단 한화 이글스가 왓챠와 손잡고 스포츠 다큐 만드는 이유는? [엠스플 KBO]
- 기사입력 2021.03.26 04:00:04 | 최종수정 2021.03.25 23:58:43
-한화 이글스, 왓챠와 손잡고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제작
-코로나19로 멀어진 팬과 거리 좁히려는 노력…“구단 변화 과정 생생하게 팬과 공유”
-정상급 플랫폼 왓챠와 공동 제작, 유명 프로듀서와 감독 영입해 프리미엄 콘텐츠로 제작
-팬에 대한 믿음과 존중이 바탕…“마지막 장면은 팬으로 꽉 찬 대전구장 됐으면”
한화가 왓챠와 함께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사진=한화)
[엠스플뉴스]
프로야구단 한화 이글스가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 왓챠(WATCHA)와 손잡고 스포츠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프로야구단 프런트와 선수들의 일상, 구단 내부의 의사결정 과정, 팬들의 반응까지 생생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스포츠 다큐 역사상 최고 명작으로 꼽히는 ‘죽어도 선덜랜드’의 한국야구 버전이 기대된다.
왓챠는 한화 이글스의 2021시즌을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로 제작한다고 3월 23일 발표했다. 올 시즌 대대적인 팀 리빌딩을 선언한 한화 이글스의 변화를 담아낸다는 목표로 콘텐츠 제작 독점 계약을 맺고, 내년 상반기 공개를 목표로 지난 2월부터 촬영을 시작했다.
“코로나19로 멀어진 팬과의 거리, 다큐멘터리 통해 다시 단단하게 묶는다”
다큐 제작팀이 연습경기 기간 박찬혁 대표이사를 촬영하는 모습(사진=엠스플뉴스)
프로야구가 주업인 야구단 한화 이글스가 왜 OTT 업체와 손잡고 다큐 제작에 나선 것일까. 한화 관계자는 “코로나19로 멀어진 팬과의 정서적 거리를 디지털 마케팅을 통해 조금이나마 좁히려는 노력”이라 설명했다.
구단 디지털 마케팅팀 서우리 파트장은 “코로나19 이후 팬들이 구장에 오지 못하게 되면서 야구단과 팬의 거리가 멀어진 게 아쉬웠다. 이 거리를 어떻게 하면 좁힐 수 있을지 구단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고 밝혔다.
야구장에서 직접 경기를 보여줄 수 없는 환경에서는 디지털 마케팅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연습 경기와 청백전 전 경기를 ‘이글스 TV’ 자체 중계로 제공한 것도 이런 노력의 일환이었다. 단순히 경기 장면을 보여주는 수준을 넘어 전문 캐스터와 해설자를 섭외하고, 구단이 추구하는 방향성과 고민을 팬들에게 안내하는 데 공을 들였다.
한화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구단이 변화하는 과정과 거기 담긴 스토리를 팬들에게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걸 목표로 삼았다. 한화 관계자는 “팬들의 반응은 정직하다. 작위적인 마케팅 기법이나 어설픈 미화, 프로파간다는 통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진솔하고 투명하게 다가갈 때 팬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했다.
서우리 파트장은 “시청자가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연습생의 성장 과정을 지켜보고 응원하는 것처럼, 팬들 역시 우리 팀 선수들과 프런트 한 명 한 명의 스토리와 변화 과정을 알게 되면 심적으로 더 가깝게 느낄 수 있다. 정서적인 끈으로 단단하게 묶여 끊을 수 없는 관계가 형성된다”며 “그렇게 되면 올해뿐만 아니라 2022년, 2023년 우리 구단이 가는 방향을 더 공감하고 믿어주실 거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구단이 변화하는 방향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이 없으면 시도하기 힘든 기획이다. 또 한화 팬들에 대한 믿음도 있었다. 서 파트장은 “지난겨울 구단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박찬혁 대표이사 선임부터 외국인 감독과 코칭스태프 구성, 외국인 선수 영입까지 뚜렷한 방향성과 전략을 갖고 진행한 변화다. 이 변화가 긍정적 변화라는 확신이 있었고, 이걸 어떻게 팬들에게 보여드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첫 단계였다”고 했다.
처음 한화에서 떠올린 장르는 ‘스토브리그’, ‘머니볼’ 같은 드라마 형식이었다. 하지만 드라마나 영화엔 극적 효과를 위해 실제와 다르게 묘사하거나 과장한 대목이 있게 마련이다. 그보단 진짜 프런트가 일하는 모습, 치열하게 고민하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자는 공감대가 있었고 그 고민 끝에 “모든 걸 다 보여주자”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화 관계자는 “다큐 제작 발표가 나온 뒤에 넷플릭스 다큐 ‘죽어도 선덜랜드’ 얘기가 많이 나오는데, 사실 그 다큐를 보면 그대로 한화 이글스로 바꿔도 될 만큼 비슷한 부분이 많다”고 했다. 서 파트장은 “구단의 고민과 변화 과정을 숨기지 않고 다 보여드린다면 팬들도 더 많이 공감하고 이해해주실 거라고 믿었다”고 밝혔다.
“처음엔 카메라 어색해하던 선수들, 이제는 전혀 의식 않고 자연스러워졌다”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촬영을 마치고 이동하고 있다(사진=엠스플뉴스)
다큐멘터리 제작을 결정한 뒤 한화는 국내외 여러 플랫폼과 접촉했다. 한화 관계자는 “다큐멘터리 제작은 많은 자본과 기술이 필요한 프로젝트다. 구단 자체 제작 콘텐츠보다 훨씬 높은 프리미엄급 퀄리티를 목표로 삼았다. 기술력과 매체 파워를 모두 고려해 다양한 플랫폼 업체와 논의했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가장 적극적으로 다가온 곳이 왓챠였다. 서우리 파트장은 “우리 구단의 변화와 방향성을 설명했을 때 왓챠에서 크게 공감해주셨다. 이 스토리에 많은 대중이 공감해줄 거라는 데 동의해주셨기에 왓챠와 공동으로 기획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번 한화 다큐멘터리는 왓챠가 처음으로 제작하는 오리지널 콘텐츠다. 왓챠와 한화 이글스가 공동으로 기획, 투자하고 왓챠 플랫폼을 통해서만 독점 공개한다. 왓챠가 내건 가장 중요한 조건은 한 가지. “구단의 입맛대로만 만들지는 않겠다”는 조건을 내세웠다. 단순히 한화 구단 홍보용 콘텐츠에는 머물지 않겠단 의지가 강했다. 한화도 여기에 흔쾌히 동의했다.
프리미엄급 콘텐츠를 뽑아내기 위해 제작진 선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로 각종 국제영화제 상을 휩쓴 한경수 PD가 총괄 프로듀서를 맡고, 20년 경력에 다수의 지상파 휴먼다큐를 연출한 김정훈 PD가 메가폰을 잡는다. “1년 동안 선수, 스태프 가까이에서 촬영하며 대화를 끌어내야 하는 역할이라 인터뷰 스킬이 뛰어나고 야구를 잘 이해하는 분을 총감독으로 모셨다”는 설명이다.
본격적인 촬영을 앞두고 한화는 전 선수단을 대상으로 다큐멘터리 촬영의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시간을 가졌다. 서 파트장은 “다큐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중요한 출연진인 선수들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했다”며 “거제 스프링캠프에서 다큐를 주제로 선수들에게 브리핑을 진행했다”고 했다.
한화는 다큐 기획 의도와 촬영방식, 예상되는 결과물에 대해 설명하고 선수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요청했다. 최상의 장비와 인력을 투입해 국내 정상급 OTT 플랫폼을 통해 제작하는 콘텐츠라는 점을, 선수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한순간을 간직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회라는 점도 설명했다.
서 파트장은 “선수들 반응이 굉장히 호의적이었다. 어떤 선수들은 그날 저녁 바로 ‘죽어도 선덜랜드를 봤다’며 ‘정말로 다큐에 이런 장면도 나오는 거냐’며 관심을 두고 흥미로워했다. 촬영 시작 후에도 선수들이 잘 협조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처음엔 어색했던 카메라와 마이크도 스프링캠프와 연습 경기를 거치면서 매우 익숙해졌다. 이제는 카메라가 앞에 있어도 전혀 의식하지 않고 평소대로 말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할 정도가 됐다.
팬에 대한 믿음과 존중이 다큐 원동력…“팬들로 꽉 찬 야구장이 마지막 장면 되길 기대”
활력 넘치는 한화 더그아웃(사진=엠스플뉴스 김도형 기자)
한화는 최근 다큐멘터리 제작 외에도 다양한 영상 콘텐츠 제작에 의욕적으로 나서는 중이다. 연습경기 자체 중계는 물론 KBO리그 최초 ‘유료 콘텐츠’까지 선보이며 변화를 선도하고 있다. 시즌 중에도 각종 비하인드 영상을 유료 회원에게 공개할 예정이다. 시즌 개막에 맞춰 대전구장 내에 대규모 콘텐츠 제작 스튜디오도 만든다. 야구를 플랫폼으로 삼아 콘텐츠 기업으로 발돋움하려는 큰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보인다.
프로구단 마케터 출신인 김경민 4DREPLAY 책임은 “프로야구단은 이제 야구만 해서는 생존하기 어렵다. 야구를 중심으로 다양한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하려는 시도가 필요하다. 구글이 검색만 제공하는 업체가 아니고, 카카오가 메신저 업체에서 벗어난 것처럼 야구단도 야구를 메인에 놓고 다양한 가치를 생산할 수 있다”고 했다. 야구단의 영역을 넓히려는 한화의 시도가 프로야구에 가져올 신선한 변화가 기대된다.
한 야구 관계자는 “다큐멘터리를 통해 구단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발상 자체가 그간 KBO리그 관행을 생각하면 파격”이라고 지적했다.
“그동안 구단들은 방어적인 홍보와 마케팅에 머물렀다. 보도자료와 기사를 통해 구단에 유리한 부분,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공개하고 그 외의 영역은 굳이 팬에게 알려주려 하지 않았다. 말로는 팬 퍼스트를 외치지만 실제로는 팬을 성적만 나오면 만족하는 단순한 존재로 얕잡아 보는 경향이 있었다.” 이 관계자의 말이다.
한화는 이번 스토브리그부터 전혀 다른 길을 추구하고 있다. 구단이 추구하는 방향을 최대한 팬들에게 가감 없이 전달하고 궁금증을 해소하려는 노력이 돋보인다. FA(자유계약선수) 정수빈 영입에 실패했을 때도 비판을 감수하고 구단이 제시한 조건과 의사결정 과정을 상세하게 알렸다. 미디어 요청이 없어도 팬들이 궁금해할 만한 정보가 있으면 구단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알린다.
다큐멘터리 제작도 마찬가지. 한화 관계자는 “일각에서 ‘선덜랜드는 다큐 촬영을 시작한 뒤 2부리그에서 3부로 떨어졌다. 혹시라도 다큐를 찍는데 성적이 안 나오면 어떡하냐’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며 “하지만 우리 다큐의 목적은 팀이 우승하거나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는 결말을 담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구단이 만들어내는 많은 변화와 그 과정을 담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당장 올 시즌 기대한 만큼의 성적을 거두지 못해도, 구단이 어떤 고민과 과정을 통해 결과에 도달했는지 팬들에게 진심을 다해 전달한다면 팬들도 공감하고 이해해줄 거라는 확신이 있다. 그 과정에서 구단과 팬의 신뢰가 더 공고해지고, 끈끈한 관계로 하나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 기본적으로 팬에 대한 믿음과 존중이 있기에 가능한 시도다.
한국 프로스포츠 사상 전례없는 시도가 될 한화 이글스 다큐멘터리는 오는 10월 말에서 11월 초까지 촬영해, 편집을 거쳐 내년 상반기 공개 예정이다. 서우리 파트장은 “결말을 정해놓고 찍는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올해 9월 이후부터 메인 테마를 정하고 스토리도 구성하게 될 것”이라 했다. 시간 순서에 따라 선형적으로 진행되는 에피소드가 아닌,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풍부하고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질 전망이다.
아직은 어떤 엔딩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지만, 한화가 바라는 마지막 장면은 언제나 똑같다. 선덜랜드 팬들보다 더 열정적인 한화 팬들로 가득 찬 대전야구장을 비추며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면 더는 바랄 게 없다. 서 파트장은 “코로나19로 인해 아직은 꽉 찬 야구장을 찍을 수 없는 게 아쉽다. 팬들의 입장이 가능해지면 많은 팬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한분 한분의 스토리를 담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 밝혔다. 한화는 다큐멘터리의 진짜 주인공인 ‘팬’을 기다리고 있다.
배지헌 기자 jhpae117@mbcplu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