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극장전]<고질라 vs 콩> 60년 만의 리턴매치
2021.03.29ㅣ주간경향 1420호
1933년, 대공황의 그림자가 어두운 장막을 드리우던 시간. <킹콩>이라는 거대 고릴라가 등장하는 괴수영화가 미국에서 개봉한다. 시대를 앞서간 스톱모션 특수효과와 함께 <미녀와 야수>를 변형한 이야기는 큰 성공을 거뒀고, 할리우드가 영화제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일익을 담당한다.
<고질라 vs 콩> 포스터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1954년, 제2차 세계대전 패망의 기억이 남아 있던 일본에선 <고질라> 시리즈 첫 번째 영화가 개봉한다. 고대 공룡의 후예가 태평양 핵실험에 의한 돌연변이로 거대해진 괴수 고질라가 일본에 상륙해 도쿄를 초토화시킨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투하와 전쟁 말 도쿄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든 미국의 대공습을 괴수의 방사능 화염으로 재현한 고질라는 세대를 초월한 괴수물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다.
할리우드 영화가 초강대국 미국 문화의 상징으로 전 세계에 영향력을 전파하면서 <킹콩> 시리즈는 무수히 많은 리메이크와 아류작을 양산한다. 1976년과 2005년 공식 리메이크가 특히 잘 알려져 있다. <고질라> 시리즈 또한 30여편의 후속을 낳으며 일본의 전후 부흥과 함께 문화상품으로 세계적 인기를 구가한다. 국내에서도 1967년 사실상 해적판에 가까운 <대괴수 용가리>라는 시대를 앞선 괴수물이 등장했는데 오리지널 영화에서 고질라의 기원을 한국화해 괴수가 북쪽에서 한강을 향해 내려오는(!) 전개가 진행된다. 나름대로 원작을 제대로 재해석한 셈이다.
늘 소재에 목마른 할리우드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괴수 버전 ‘몬스터버스’를 창조한다. 1998년 최초 할리우드판 <고질라>는 미지근한 결과였지만 2010년대 이후 선보이는 몬스터버스 시리즈는 2014년 <고질라>, 2017년 <콩: 스컬 아일랜드>, 2019년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로 속속 이어진다(앞선 2편은 넷플릭스에서, <고질라: 킹 오브 몬스터>는 카카오페이지나 유튜브 관람 가능).
새롭게 탄생한 몬스터버스의 세계관은 괴수들을 대자연의 분노나 우주적 재앙의 상징처럼 다룬다. 이들은 인류 이전부터 자연의 각 영역을 책임지고 관리하는 ‘타이탄’이라는 신과 같은 능력과 지성을 가진 존재들이다. 각자 은신처에서 휴면 상태이던 이들은 새로운 타이탄의 탄생 (세계를 파괴할 힘을 손에 쥔 ‘인간’) 때문에 깨어나기 시작한다. 타이탄의 활약은 현대 영상예술로 구현된 가공할 스펙터클에 힘입어 압도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몬스터버스 세계관의 최강자들이 맞붙는 <고질라 vs 콩>이 3월 25일 개봉 예정이다. 지금껏 따로 활약하던 최강의 신적 존재들이 드디어 만난다. 실은 1962년 일본에서 둘이 맞붙은 바 있었기 때문에 이번 대결은 근 60년 만의 리턴매치인 셈이다. (아쉽게도 저작권사와의 판권계약이 곧 만료되기에 몬스터버스 시리즈의 마지막이 될 공산이 크다) 코로나 시국 탓에 몇차례 개봉 연기 후 끝내 OTT와 극장 동시개봉으로 선보이긴 하지만, 괴수들의 도시파괴를 즐기려면 가급적 극장에서 보는 걸 추천한다. 그전에 이전 시리즈 복습으로 심신을 단정히 하고 신들의 전쟁, 괴수대결전을 맞이해보자.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