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로봇개 따라 만든” 살인로봇 SF영화라니… [왓칭]
넷플릭스 SF 드라마 ‘블랙미러-사냥개’편
제작자 “보스턴 다이내믹스 로봇개 보고 만들어”
현대차, 무서운 개 입양한 이유는?
입력 2021.03.19
넷플릭스 '블랙미러 시즌4 사냥개 편'에 나오는 살인 로봇개(왼쪽)와 현대차가 인수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개 '스폿'
지난달 23일 미국 뉴욕 브롱크스의 한 아파트. “무장 강도가 인질을 붙잡고 있다”는 신고를 받은 뉴욕경찰국(NYPD)이 로봇 경찰견 ‘스폿(Spot)’과 함께 현장에 출동했다. 스폿은 현대차그룹이 지난해 12월 인수한 로봇 전문 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대표 모델이다.
이날 스폿은 아파트에 들어가 용의자가 이미 범죄 현장을 떠났다는 것을 실시간으로 경찰에 알렸다. 32㎏의 본체에 카메라와 조명을 달고 있는 로봇개는 시속 5㎞ 속도로 이동하며, 계단도 오를 수 있다. 배터리 수명은 90분. 단순 임무 수행은 물론, 인공지능(AI)을 사용한 현장 대처도 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봇개 디스토피아?
경찰이 쓰는 로봇개,사생활 침해 우려를 자극하다.2월 27일 뉴욕타임스
로봇 경찰견 스폿의 활약에 최근 뉴욕타임스(NYT)가 보도한 기사 제목이다. 영국 가디언도 ‘디스토피아(암울한 미래)의 로봇개가 뉴욕시를 순찰한다. 이 같은 기술을 치안에 적용해선 안 된다’는 내용의 기고를 실었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민주당 연방 하원의원은 로봇개에 대해 “감시용 지상 드론”이라고 비난하고 나섰다. 로봇개가 ‘군사용’으로 개발될 경우, 인명 살상 무기로 악용될 가능성까지 우려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로봇개 공포증은 지난 2017년 넷플릭스에 공개된 유명 드라마 ‘블랙 미러(Black Mirror)’ 시즌4의 ‘사냥개(Metalhead)’ 에피소드에서도 잘 드러난다. 블랙 미러는 뉴미디어와 정보통신·인공지능 기술이 상식과 윤리, 법의 테두리를 뛰어 넘어 발전할 때 벌어지는 얘기를 다룬 공상과학(SF) 드라마다.
절친 남성 두 명이 실제 고통과 쾌락을 느낄 수 있는 VR(가상현실) 격투 게임에서 남녀로 만나 가상으로 사랑을 나누게 되는 ‘스트라이킹 바이퍼스’(5시즌 1편), 소셜미디어 평판에 따라 현실 사회의 계급이 나뉘는 사회를 그린 ‘추락’(3시즌 1편), 천재 프로그래머가 판타지 게임을 만들다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무너져 초현실적인 상황으로 빠져드는 인터랙티브 특별판 ‘블랙미러: 밴더스내치’ 등 상상력을 자극하는 내용이 많다.
그런 블랙미러 시리즈(총 19편) 중에서도 ‘사냥개’편은 가장 단순하면서 끔찍한 편으로 손꼽히는데, 스폿과 굉장히 비슷하게 생긴 살인 로봇개가 등장한다. 실제로 이 드라마는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초기 로봇개 ‘빅독(Bigdog)’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블랙 미러 제작자 찰리 브루커는 2017년 인터뷰에서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개 동영상을 보고 킬러 로봇개 에피소드를 만들었다”고 제작 배경을 밝혔다.
41분뿐인 짧은 러닝타임 내내 살인 로봇개는 거침없이 들판을 뛰어다닌다. 줄거리는 간단하다. 황량한 근(近)미래, 중년 여성 벨라는 죽음을 앞둔 아이에게 건넬 ‘무언가’를 찾아 버려진 물류 창고로 향한다.
로봇개의 습격으로 모든 생명체는 멸종 위기에 처했다. 벨라는 창고에서 로봇개를 맞닥뜨리고, 함께 온 일행은 모두 처참하게 살해된다. 그녀는 결국 ‘무언가’를 챙기지도 못한 채 외로운 탈주를 시작한다.
이 드라마는 대사가 거의 없고, 온통 흑백 화면이지만 공포를 뚜렷하게 전달한다. 로봇개가 달려오는 효과음, 개의 시선에서 찍은 라이다(Lidar) 스캔 화면이 스산하다.
한쪽 발이 뽑힌 로봇개가 부엌 칼을 장착하고 전동 드릴처럼 휘두르며 다가오는 장면, 위치 추적 기능이 있는 날카로운 금속 조각 수백개를 폭죽처럼 발사해 목표물을 쫓는 장면 등은 시청자를 몸서리치게 만든다.
◇현대차는 왜 입양했나, 로봇개 유토피아
드라마가 공개된 건 2017년 12월, 현대차그룹이 보스턴 다이내믹스를 인수한 시기는 지난해 12월이다. 이 회사 소유권은 구글(2013)과 소프트뱅크(2017)를 거쳐, 현재 현대차·소프트뱅크가 각각 80%·20%씩 지분을 갖고 있다. 특히 정의선 회장의 개인 지분만 20%(2400억원 상당) 투입됐다.
현대차는 회장이 사재(私財)까지 투자한 배경에 대해 “미래 신사업에 대한 책임 경영을 강화하고, 지속적 투자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정 회장은 로봇과 우주 공학 등 미래 과학 관련 ‘덕후’ 기질이 있다고 한다.
하필 이 무섭게 생긴 로봇개를 ‘그룹 반려견’으로 맞이한 이유는 뭘까. 현대차는 “기존 패러다임을 뛰어 넘는 완전한 자율 주행과 사물 통신을 활용한 미래 자동차 개발에 로봇 기술을 연계할 여지가 많다”며 “로봇개는 안전, 치안, 보건 등 공공영역에서도 인류를 위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보스턴 다이내믹스는 로봇경찰견뿐 아니라, 미국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와 함께 화성 탐사견도 개발 중이다.
현대차는 요즘 모빌리티와 로보틱스를 결합한 지능형 지상 이동로봇 ‘타이거’도 연구하고 있다. 현대차 미래 모빌리티 담당 조직 ‘뉴 호라이즌스 스튜디오’는 4개의 다리와 바퀴로 정글·극지방 이동이 가능한 콘셉트 로봇 X-1을 지난달 공개했다. 과학 탐사, 재난 상황에서 긴급 보급품 수송, 오지 물류 배송 등의 다목적 임무 수행에 적합하도록 설계한 로봇이다. 단순한 내연기관 자동차 회사가 아닌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회사로 체질 개선에 나선 것이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 16일 직원들과 가진 ‘타운홀 미팅’에서 로봇 상용화에 관한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미래에는 로보틱스가 산업이나 개인, 의료 여러 부분에 적용될 것입니다.예를 들면 저는 스마트폰 대신 로봇을 항상 데리고 다닐 것 같고...
미래 산업에 관심이 많다면, 아래 기사를 더 읽어봐도 좋다. 블랙미러 ‘사냥개’편이 실존 로봇에서 출발한 공포 영화라는 걸 알고 보면 한층 색다른 공포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기사보기] ①정의선 회장의 첫 M&A는 로봇회사…사재까지 투자